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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새순 돋고 이끼 끼는 ‘설치미술’의 일생

등록 2014-08-28 19:57수정 2014-08-28 21:16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백락사가 자연과 함께하는 설치미술 전시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평정심과 중용을 일깨우는 <인스턴트 니르바나>(박지훈). 홍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백락사가 자연과 함께하는 설치미술 전시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평정심과 중용을 일깨우는 <인스턴트 니르바나>(박지훈). 홍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문화‘랑’] 문화공간, 그곳
(25) 강원 홍천 주음치리 백락사

쓰러진 잣나무엔 날개 달아주고
소명 다한 솟대는 다시 자연으로
9년전 알음알음 시작한 미술전
이젠 국제초청전·복합문화행사
“절집도 옷 갈아입고 치장하죠”
음력 8월 초하루(8월25일)를 맞은 산사는 조금 부산하다. 법당에선 독경 소리 낭랑하고, 절을 싸고도는 계곡물은 그윽하고 청량하다. 대웅전에선 스님의 독경에 맞춰 나이 든 ‘보살님’들의 몸이 연신 오르내린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주음치로 210. 홍천강 변 자그만 산골 마을 주음치리, 갈마봉 무랭이골에 터 잡은 고즈넉한 산사 백락사. 부처님 앞에 평안을 기원하는 불자의 마음은 여느 사찰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풍경은 예사롭지 않다. 마을 길섶에는 수백개의 깃발이 만장처럼 펄럭인다. 백락사 초입 들판에선 감색 마대를 두른 황소 허수아비가 버티고 섰고, 산 중턱에는 천조각 인디언 텐트가 즐비하다. 속세와 불가를 가르는 작은 개울을 건너다 보면 어름치 산란탑 같은 큼직한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도리안 테소어루스. <계곡의 유동적 스트럭처>’ 작은 팻말이 외국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개울가에 흔하디흔한 돌무더기 형상이지만, 밤이면 은은한 조명 속에 물을 뿜는 분수로 변신하는 설치미술품이다.

개울을 건너 대웅전 앞뜰에 다다르면 범상치 않은 탑이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전제일 DANGER 위험’, 붉은색 경고 문구가 잇따라 적힌 테이프로 칭칭 감겨 애초 석탑인지 목탑인지, 아니면 올 장마에 붕괴 위험에 처해 임시방편으로 응급조치를 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떡 버티고 있다. 오가는 불자들은 언제나 그곳에 존재한 듯 무심경하지만 이것 역시 예술. (유거상)이다.

“불탑이 불자에게 신성한 신앙의 대상체지만, 탑도 맨날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보다 옷 갈아입고 치장도 한다는 생각으로 허락했어요. 예술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위험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것 같기도 하고… 보고 있으면 좋아요.” 합장한 백락사 주지 성민 스님의 입가에선 미소가 번진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백락사가 자연과 함께하는 설치미술 전시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시끄러운 세상에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고 호소하는 <이너 보이스>(최영옥). 홍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백락사가 자연과 함께하는 설치미술 전시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시끄러운 세상에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고 호소하는 <이너 보이스>(최영옥). 홍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단청이 아름다운 고즈넉한 절집을 상상했다면, 백락사는 다소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민 스님은 산사가 근엄하게 세상과 구분 짓는 별도의 공간으로 남기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보존과 계승을 얘기하는데, 시대에 맞춰 변형하는 것도 보존이에요. 절도 고정된 시선으로만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요.”

그의 생각을 반영한 듯 대웅전, 요사채, 삼성각 곳곳에는 미술품이 가득하다. 8월23일 시작된 ‘2014 강원환경설치미술 초대작가전’(9월13일까지)이 한창이다. 국내 작가 26명, 외국 작가 8명 등 34명이 백락사와 그 주변을 자연과 미술품이 한데 어우러진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대웅전 왼편에는 남루한 채색의 우스꽝스런 남녀 목조각이 놓여 있다. 붉은색 원피스에 핸드백을 든 여인과 ‘조폭적 인상’의 건장한 남성상. 언뜻 부부의 연을 맺은 사이 같기도 한데… <봄 “손님”>(김원근)이다.

대웅전 오른편에는 나일론에 은박 알루미늄을 입힌 사슴과 소 형상의 구조물이 설치됐다. 스페인 작가 마리아 호세 마르코스의 <잡상, 열역학을 수호하다>. 궁궐 전각에 올라 귀신으로부터 사람을 지켜온 토기 인형인 잡상(雜像)을 모티브로 저주받은 환경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킨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백락사가 자연과 함께하는 설치미술 전시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23일 백락사에서 열린 ‘2014 강원환경설치미술 초대작가전’ 개막 기념 음악회. 뒤쪽에 테이프로 감긴 탑은 욕심을 쌓아가는 위험사회를 풍자한 <dot, dot, dot>(유거상)이다. 홍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백락사가 자연과 함께하는 설치미술 전시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23일 백락사에서 열린 ‘2014 강원환경설치미술 초대작가전’ 개막 기념 음악회. 뒤쪽에 테이프로 감긴 탑은 욕심을 쌓아가는 위험사회를 풍자한 (유거상)이다. 홍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곳에서 미술전이 열린 게 벌써 9년째다. 출발은 단순한 아이디어였다. “2006년 봄이었어요. 절을 찾은 한 보살님이 ‘설치미술 장르가 각광받고 있는데 한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초봄, 그 보살님 남편이 알음알음으로 모은 작가 20명의 작품을 시험삼아 설치했는데, 새순이 돋고 주변의 생명체들이 변하면서 미술품도 매일 변하는 거예요. 그 모습이 보기 좋아 계속하게 됐죠.”

백락사의 행사는 절이 터 잡은 주음치리 주민, 화촌면이 참여한 행사로 커지면서 홍천군이 지원에 나섰고, 아홉 해를 거치며 이제 강원도까지 합세했다. ‘청년작가전’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전시회는 최근 외국 작가들까지 참여한 국제초청전으로 확대됐고, 개막식에 맞춰 음악회와 사생대회까지 곁들인 복합문화행사로 치러진다.

그렇게 아홉 해를 거듭하는 동안 설치된 미술품은 나름의 컬렉션이 됐다. 물론 유명작가의 작품을 영구소장하는 대형 갤러리와는 개념부터 다르다. 애초 백락사의 자연과 함께 생성, 조화, 소멸의 과정을 밟아갈 작품을 선택해 작품의 수명은 제한적이다.

실제 사찰 앞 실개천, 뒷산 오솔길 등에는 올해 새로 설치된 작품과 오래전 설치돼 소멸 과정을 밟고 있는 작품이 공존한다. 요사채앞 연못에 지난해 서정국 작가가 설치한 스테인리스 대나무 16주처럼 내구성이 강한 작품조차 시간의 흔적이 쌓이면서 연못에 피어난 부들과 분간조차 어려워진다.

또 페인트 등 자연을 해치는 미술재료를 배제하면서, 산사 주변 폐목 등을 활용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주변에 버려진 잔가지를 태극모양으로 펼친 뒤 눈감은 새를 거꾸로 매달아 세월호 희생자의 극락왕생과 환생을 기원한 <옐로 버드>(김용민), 지난해 폭설에 쓰러진 잣나무에 버섯이 솟아나듯 날개를 붙인 <부활>(정하응), 화전민들의 주거공간을 그대로 활용한 <터>(하정수), 농협창고를 철거하면서 나온 목재로 솟대를 세우고 인간을 위해 소명을 다한 목재가 자연으로 돌아가길 기원한 <다시 숲에 서다>(박형필)까지.

“사찰 자체가 친환경적이고 살아있는 공간이에요. 이곳엔 농부의 삶, 노동자의 삶이 골고루 섞여 있죠. 이곳을 행복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누군가 그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세상도 좀더 좋은 곳이 되지 않겠어요?” 22년 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폐허의 땅에 백락사를 일군 성민 스님은 9년째 지속되는 절집 전시회가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한다.

홍천/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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