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갤러리와 중국 삼상당대미술관이 중국 항저우에서 여는 ‘한국현대미술: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 개막전에서 전시회를 기획한 윤재갑 상하이 ‘하오아트뮤지엄’ 대표가 전시회 취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한국현대미술전’에 중국 미술계 관심
백남준·이우환·홍경택·권순관 등
거장 아우른 12명 작품 발길 잡아
중 “중국미술에 많은 자극돼”
한 “예술교류 증진 출발점 되길”
백남준·이우환·홍경택·권순관 등
거장 아우른 12명 작품 발길 잡아
중 “중국미술에 많은 자극돼”
한 “예술교류 증진 출발점 되길”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떠올린 생각을 담았다. 먹음직스런 만찬이 때론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 …” 한지에 호분과 구아슈, 먹으로 전통 수묵화의 질감을 살려내며 누군가 한바탕 질펀하게 먹어치운 뒤 원탁 위에 남겨진 포도주와 커피, 과일을 가득 그린 <어떤 만찬> 앞에 선 유근택(49)은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이건 6자회담 등 정치적 영역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한국화에 ‘공간’과 ‘일상’이라는 소재를 도입해 현대적 삶의 의미를 성찰해온 중견작가의 이야기에, 순간 중국인들의 눈은 작가의 입과 캔버스 사이를 바삐 오간다. 뭔가를 수첩에 적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8월29일, 중국 현대미술의 발원지로 평가받는 항저우의 대표적 사립갤러리 삼상(三尙)당대미술관에는 중국미술학원 교수 등 미술 전문가와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학고재갤러리와 삼상 당대 미술관이 오는 28일까지 여는 ‘한국현대미술: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 개막전을 보려는 것이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작가 중 최고가를 기록한 홍경택(46)을 비롯해 오윤석(42), 권순관(41), 김기라(40), 박지혜(33), 장종완(31) 등 전시회에 작품을 내건 작가들은 상기된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섰다. 그리고 서양화, 한국화, 사진, 영상 등 각 장르를 대표하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문화혁명, 천안문 사태 등 파란을 겪은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늦게 현대미술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이끌며 1990년대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 소개된 쟝사오강, 팡리쥔, 왕광이, 웨민쥔, 마류밍 등 1950~60년대에 출생한 작가들이 각종 전시회에서 명성을 쌓았고, 이제 소더비 등 세계적인 미술 경매 시장에서 10억원 이상의 높은 가격에 작품이 거래되기도 한다. 이를 두고 세계 경제의 ‘슈퍼파워’로 도약중인 중국의 잠재적 구매력을 염두에 둔 미술 투자자들이 만든 ‘거품’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중국은 물론 전세계 유명 갤러리와 컬렉터들까지 그들의 작품에 여전히 큰 관심을 기울인다.
이에 견줘 1960~70년대 미국·유럽 미술계에 발을 들이며 일찌감치 백남준, 이우환(78) 등 거장을 배출한 한국 현대미술은 아직 국제 미술 시장에선 ‘변방’이다. 특히 세계 미술 시장의 ‘큰손’이 된 중국인 컬렉터들에게는 낯설다. 그들에게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는 일상의 문화지만, ‘케이 아트’는 제대로 접할 기회조차 없는 생소한 영역이다.
‘한국 현대미술: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은 거대한 중국 미술 시장에 한국 현대미술의 존재를 온전히 각인시키는 작업의 일환이다.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로 전설이 된 백남준(1932~2006)의 초기 텔레비전 설치작품들, 돌과 철판을 소재로 한 <관계항> 시리즈로 거장 반열에 오른 이우환의 작품을 비롯해 서양화, 한국화,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중인 중견, 청년 작가 12명의 작품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전세대를 아우른 것도 이런 까닭이다.
전시를 기획한 윤재갑 상하이 ‘하오아트뮤지엄’(how art museum) 관장은 “항저우는 베이징의 중앙미술학원과 함께 중국의 양대 미술학원으로 평가받는 중국미술학원이 있는 곳이다. 사회주의리얼리즘 중심의 중국 미술에서 현대미술의 분기점이 된 ‘85 미술 신조류’도 항저우에서 시작됐고 황융핑, 차이궈창 등 대표적인 중국 현대미술가도 이곳 출신이다. 이번 전시는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탁기에 <중국회화사>와 <간추린 근대회화사>를 2분간 돌린 뒤 나온 펄프 덩어리를 <세계미술사>로 명명하며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이끈 황융핑, 아시아인으로 백남준에 이어 두번째로 200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차이궈창을 배출할 만큼 중국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큰 항저우를 ‘케이 아트’의 중국 공략 교두보로 삼겠다는 얘기다.
전시장을 찾은 100명의 중국 쪽 미술전문가와 취재진은 일단 높은 관심을 표출했다. 중국미술원 왕둥링 서예과 원장과 관화이빈 설치미술원 교수는 “1950~60년대는 물론 한국의 가장 현대적인 작가들이 전시를 한다는 사실이 흥분된다” , “중국과 한국은 정치·사회적으로 다르지만, 동양사상 측면에서 맞물리는 지점도 많은 것 같다”고 호평했다. 월간 <예술 당대>의 쉬커 부주간은 “한국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재대로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 전시가 한국 미술을 듣기만 하고 보지 못한 사람들, 컬렉터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케이 아트’의 수요를 촉발하는 계기로 작용할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두번의 시도로 ‘케이 아트’가 중국에 새로운 한류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학고재 갤러리의 우찬규 대표도 “이번 전시가 한-중 예술교류를 증진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며 “앞으로 그룹전뿐 아니라 좋은 작가가 있다면 개인전도 지속적으로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제 시작이라는 얘기다. 학고재는 우선 오는 12일부터 상하이 전시공간에서 백남준 개인전 ‘백남준을 상하이에서 만나다’를 열기로 했다.
전시를 연 천쯔징 삼상당대미술관장은 좀 색다른 기대를 드러냈다.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서 중국 미술가들은 조급하다. 한번에 모든 것을 이루고 빨리 인정받고 성공하려 한다. 백남준부터 오랫동안 다양한 실험을 해온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보여준 이번 전시가 중국 미술가들에게도 많은 자극이 될 것이다.” 보수화, 상품화되는 중국 미술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항저우/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유근택의 <어떤 만찬>,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우환의 <관계항>. 학고재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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