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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버려졌던 산골 폐교, 지역문화 중심으로 거듭나다

등록 2014-10-02 20:51수정 2014-10-02 21:33

문화예술 기획자로 일하던 이선철씨는 강원도 평창의 산촌 폐교를 지역 문화공간인 감자꽃스튜디오로 탈바꿈시켰다. 서정민 기자, 감자꽃스튜디오 제공
문화예술 기획자로 일하던 이선철씨는 강원도 평창의 산촌 폐교를 지역 문화공간인 감자꽃스튜디오로 탈바꿈시켰다. 서정민 기자, 감자꽃스튜디오 제공
[문화‘랑’] 공간과 사람

문화공간, 그곳
(29) 평창 감자꽃스튜디오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이곡리, 산촌에 작은 학교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평창국민학교 노산간이학교로 문을 연 이 학교는 지난 세월 부침을 거듭했다. 한때 노산공립국민학교로 승격했다가 학생수가 줄면서 평창초등학교 노산분교로 다시 격하됐다. 1999년 9월, 소규모학교 통폐합계획에 따라 본교로 통합되면서 폐교된 노산분교는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졸업생 수는 292명에서 멈췄다.

하지만 이곳은 더이상 버림받은 폐교가 아니다. 지난 2005년 ‘감자꽃스튜디오’로 거듭났고, 어느덧 지역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악, 밴드, 연극, 무용, 아카펠라, 사진, 영상, 디자인, 미술, 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지고, 마을 주민들이 그 문화를 향유한다. 마을 청소년들이 밴드 연주를 하고, 해마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축제도 열린다.

변화는 노산분교 폐교 3년 뒤인 2002년, 이곳으로 찾아든 한 남자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교실 한 칸을 방으로 꾸며 그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디서 뭘 하다 어떤 연유로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된 걸까?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선철(48)씨는 어릴 때부터 예술가를 꿈꿨다. 고3 때 잡지 <객석>의 특집기사를 보고 문화예술 기획자로 꿈을 바꾸게 된다. 연세대 사회학과로 진학한 그는 공연, 축제 등을 쫓아다니며 문화기획의 세계를 접했다. 클래식 공연 기획 등을 하더니 대학 4학년 때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인연을 맺고 기획 일을 시작했다.

문화예술 기획자 이선철씨 주도
학생들에게 악기연주 등 가르치고
계절따라 다양한 축제행사 열어
“지역경제 도움되게 새도약 준비”

고 이종호 건축가는 2층짜리 학교 건물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더해 새단장했다. 감자꽃스튜디오를 정면에서 보면 현대적 건물 같다. 서정민 기자, 감자꽃스튜디오 제공
고 이종호 건축가는 2층짜리 학교 건물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더해 새단장했다. 감자꽃스튜디오를 정면에서 보면 현대적 건물 같다. 서정민 기자, 감자꽃스튜디오 제공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꼬박 10년을 함께했는데, 도중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나온 그는 1996년 음반기획사 난장커뮤니케이션즈를 차렸고, 얼마 뒤 투자를 유치해 폴리미디어로 발전시켰다. 자우림, 긱스, 롤러코스터, 노영심, 어어부프로젝트, 불독맨션 등 음반을 제작하고 공연기획도 했다.

1999년 이승환과 전국투어를 돌던 그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110㎏의 거구인데다 오랜 기간 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 건강이 악화된 것이다. 다행히 병상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몸을 추스리기 위해 귀촌을 결심했다. 회사를 정리하면서 적합지를 물색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노산분교를 발견한 그는 평창교육청에 문의해 임대했다. 그리고 2002년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매일 산에 오르고 먹는 것도 자연식단으로 바꿨다. 마음 편히 먹고 자연친화적으로 살다 보니 1년 만에 30㎏이 빠졌다. 지인들이 놀러오기도 하고, 이남영 동화작가는 아예 같이 생활했다. 2003년 이남영 작가의 동화 <감자꽃>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이를 계기로 교실을 활용해 어린이도서관을 만들던 중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가 이곳을 찾았다. 김 도지사는 폐교를 지역 공공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고, 이씨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매년 겨울 감자꽃스튜디오에선 송년잔치인 ‘성탄극장’이 펼쳐진다. 서정민 기자, 감자꽃스튜디오 제공
매년 겨울 감자꽃스튜디오에선 송년잔치인 ‘성탄극장’이 펼쳐진다. 서정민 기자, 감자꽃스튜디오 제공
평창군청이 평창교육청으로부터 폐교를 매입했다. 이씨는 친분이 있던 고 이종호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이종호 건축가는 2층짜리 학교 건물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더해 리모델링했다. 이남영 작가의 동화 제목에서 따와 ‘감자꽃스튜디오’라는 이름을 붙이고 2005년 정식 개관했다. 이씨는 대표를 맡았다.

이 대표는 고민했다. 평소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는 지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문화예술교육과 문화복지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먼저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에 집중했다. 자신이 20~30대 시절 일했던 경험을 살려 학생들에게 사물놀이, 밴드, 관악반 활동을 하도록 가르쳤다. 학교별 방과후 교실도 하고, 동아리를 만들어 학생들끼리 자체 운영하도록 했다. 지역 청년들도 밴드를 만들었다. 이제는 이 대표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여러 장르의 작가와 예술강사들이 관련 단체와의 협업이나 공공 정책지원 사업을 활용해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꾸린다. 이 대표는 “지역 주민들이 전문가를 초청해 문화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마을갤러리’라 이름 붙인 새 공간을 신축했다. 요즘 이곳에선 매주 금요일마다 ‘실버난타’라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인근 교회에서 운영하는데, 마을 노인들이 플라스틱 통으로 만든 북, 장구 등을 두드리며 문화도 즐기고 건강도 챙기는 1석2조 프로그램이다. 이곳 문예교실에서 한글을 깨우친 할머니들의 시와 그림을 전시하는 시화전도 마을갤러리에서 열 예정이다.

감자꽃스튜디오에서는 1년에 네 차례 큰 행사가 열린다. 봄에는 마을축제인 ‘봄소풍’, 여름에는 청소년예술캠프인 ‘분교캠프’, 가을에는 생태걷기대회인 ‘가을운동회’, 겨울에는 송년잔치인 ‘성탄극장’이 펼쳐진다. 사이사이 ‘감자꽃 자연영화제’ 같은 행사도 열린다.

이곳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방문자들도 늘었다. 대학이나 기업, 단체에서 이곳으로 워크숍을 오거나 일반 시민들이 탐방을 오기도 한다. 이 대표에게는 원칙이 있다. 워크숍 등을 위해 장소를 빌려주는 건 얼마든지 하되, 숙식 제공 서비스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주민들이 운영하는 펜션, 식당, 찻집들을 연계해 소개해준다. 지역 문화공간이 지역 주민들의 생계 활동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공생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이 대표는 더 나아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의 진화를 머릿속에 그린다. 개관 10주년을 맞는 내년을 기점으로 이 공간이 향후 10년간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감자꽃스튜디오는 그 첫걸음으로 최근 시행되기 시작한 마을종합개발사업의 권역본부도 겸하고 있다. 오랜 기간 학교였다가 지역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이곳은 이제 또다른 도약을 꿈꾸고 있다.

평창/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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