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60명으로 구성된 독도지킴이 ‘독도 문화 의병’이 23일 오전 독도를 방문해 ‘역사와 의식, 진경전’행사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천만 가슴에 품을 창작의 셈이어라”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37, 지난달 5일부터 민간인 입도가 허용된 독도. 우리땅으로 가는 발걸음을 가로막는 것은 더 이상 한국 정부가 아니었다. 애초에 자격이 없는 일본 정부는 더더욱 아니었다. 22일 새벽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의 ‘전국 60인의 문화의병’을 자처하며 ‘역사와 의식, 독도진경전’을 위해 독도 땅을 밟으려던 미술가 60명은 4m가 넘는 파도에 발목을 붙들려 독도에서 92Km 떨어진 울릉도에서 기약 없는 하룻밤을 더 보내야했다.
전국 60명 손맞춰 15m 화폭 수놓아
‘역사와 의식 담긴 독도전경’ 탄생
걸게그림 앞에서 해돋이춤 한마당도 높은 물결 때문에 입도는커녕 독도 선회조차 불가능할 거라고 예상됐던 23일 오전 6시반. 낭보가 날아들었다. 기상 여건이 좋아져 선회 정도는 가능할 거라는 소식이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아침을 챙겨먹은 미술가들은 이날 오전 8시 500톤급 동해 해양경찰서 503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너울을 따라 심하게 흔들리던 배안은 이내 배멀미하는 작가들의 신음소리로 가득했다. 마침내 이날 오전 11시25분, 좀처럼 그 문을 열지 않던 독도가 문화의병들의 힘겨운 첫 걸음을 허락했다. 깃발이 찢겨 날아갈 듯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지만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과 섬을 감싼 포근한 구름이 배멀미로 지친 문화의병들의 어깨를 감쌌다. 지난 1977년 화가로는 처음으로 이 섬에 들어와 그림을 그렸고,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아 문화의병들을 이끌고 다시 독도를 찾은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오늘 독도가 우리를 받아주었다”며 “독도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으니, 오늘을 기해 우리도 독도를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자”는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미술가들의 ‘독도 문화의병 선서’가 이어졌다. 이들은 “우리는 정치, 외교적 현안으로만 인식되어 오던 독도에 문화를 심고 7천만 민족의 가슴 속에 영원히 보듬어야 한다”며 “독도를 예술의 꽃이 활짝 피고, 문화의 열매가 풍요롭게 열리는 창작의 원천지이며, 예술의 요람지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독도에 묻었다. <역사와 의식, 독도진경전> 본 행사가 막을 올렸다. 독도 포구 앞에 펼쳐진 × 폭의 광목천 3장 앞에 60명의 미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첫 번째 화폭에 모여 든 강원·제주 지역 미술가 20명은 먹물과 유화물감을 뒤섞어 구상성을 살린 독도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세 번째 화폭을 차지한 전라·경상 지역 화가 20명도 빨강과 파랑의 유화물감으로 태극의 색감을 살린 독도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경기·충청 지역에서 온 20명의 작가들은 빗자루만큼이나 큰 붓으로 먹 선을 살리고 색색의 유화물감을 광목천에 흩뿌리며 추상성이 강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재호 한남대 미대 회화과 교수는 “‘독도는 우리 마음속의 섬’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작가들의 개인적인 느낌을 살린 작품을 만들었다”며 “개성과 조화가 한 데 어우러진 독도의 이미지를 그려냈다”고 말했다. ×짜리 광목천 세 개를 이어붙인 거대한 화폭에 독도 그림이 수놓아지자, 이번엔 이애주 한춤공동체의 ‘독도 해돋이춤’ 마당이 이어졌다. 푸른 바다에서 벌건 기운이 올라오며 해가 솟는 것을 시작으로 춤패들이 앞장서 감긴살, 맺힌살, 땅살, 하늘살, 나라살, 독도살 등 온갖 살을 풀어내자 문화의병들은 물론 운동본부 진행요원들까지 어우러진 춤마당을 벌였다. 이날 행사에는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를 포함해, 박광진 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오승윤 전 전남대 미대 교수, 정치환 영남대 미대 교수, 김금중 경원대 미대 교수, 양창보 전 제주대 미대 교수, 선학균 관동대 미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이 그린 대형 걸개그림은 올 11월께 서울 평창동 서울 옥션 하우스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독도/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역사와 의식 담긴 독도전경’ 탄생
걸게그림 앞에서 해돋이춤 한마당도 높은 물결 때문에 입도는커녕 독도 선회조차 불가능할 거라고 예상됐던 23일 오전 6시반. 낭보가 날아들었다. 기상 여건이 좋아져 선회 정도는 가능할 거라는 소식이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아침을 챙겨먹은 미술가들은 이날 오전 8시 500톤급 동해 해양경찰서 503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너울을 따라 심하게 흔들리던 배안은 이내 배멀미하는 작가들의 신음소리로 가득했다. 마침내 이날 오전 11시25분, 좀처럼 그 문을 열지 않던 독도가 문화의병들의 힘겨운 첫 걸음을 허락했다. 깃발이 찢겨 날아갈 듯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지만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과 섬을 감싼 포근한 구름이 배멀미로 지친 문화의병들의 어깨를 감쌌다. 지난 1977년 화가로는 처음으로 이 섬에 들어와 그림을 그렸고,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아 문화의병들을 이끌고 다시 독도를 찾은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오늘 독도가 우리를 받아주었다”며 “독도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으니, 오늘을 기해 우리도 독도를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자”는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미술가들의 ‘독도 문화의병 선서’가 이어졌다. 이들은 “우리는 정치, 외교적 현안으로만 인식되어 오던 독도에 문화를 심고 7천만 민족의 가슴 속에 영원히 보듬어야 한다”며 “독도를 예술의 꽃이 활짝 피고, 문화의 열매가 풍요롭게 열리는 창작의 원천지이며, 예술의 요람지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독도에 묻었다. <역사와 의식, 독도진경전> 본 행사가 막을 올렸다. 독도 포구 앞에 펼쳐진 × 폭의 광목천 3장 앞에 60명의 미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첫 번째 화폭에 모여 든 강원·제주 지역 미술가 20명은 먹물과 유화물감을 뒤섞어 구상성을 살린 독도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세 번째 화폭을 차지한 전라·경상 지역 화가 20명도 빨강과 파랑의 유화물감으로 태극의 색감을 살린 독도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경기·충청 지역에서 온 20명의 작가들은 빗자루만큼이나 큰 붓으로 먹 선을 살리고 색색의 유화물감을 광목천에 흩뿌리며 추상성이 강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재호 한남대 미대 회화과 교수는 “‘독도는 우리 마음속의 섬’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작가들의 개인적인 느낌을 살린 작품을 만들었다”며 “개성과 조화가 한 데 어우러진 독도의 이미지를 그려냈다”고 말했다. ×짜리 광목천 세 개를 이어붙인 거대한 화폭에 독도 그림이 수놓아지자, 이번엔 이애주 한춤공동체의 ‘독도 해돋이춤’ 마당이 이어졌다. 푸른 바다에서 벌건 기운이 올라오며 해가 솟는 것을 시작으로 춤패들이 앞장서 감긴살, 맺힌살, 땅살, 하늘살, 나라살, 독도살 등 온갖 살을 풀어내자 문화의병들은 물론 운동본부 진행요원들까지 어우러진 춤마당을 벌였다. 이날 행사에는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를 포함해, 박광진 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오승윤 전 전남대 미대 교수, 정치환 영남대 미대 교수, 김금중 경원대 미대 교수, 양창보 전 제주대 미대 교수, 선학균 관동대 미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이 그린 대형 걸개그림은 올 11월께 서울 평창동 서울 옥션 하우스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독도/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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