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의 정류장’ 대표 김이찬. 사진 박미향 기자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
16일 안산서 ‘공동체’ 후원의 밤
16일 안산서 ‘공동체’ 후원의 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에서 제8회 이주민영화제가 열렸다. 영화제 마지막날에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특별전이 열려 짧게는 2분, 길게는 18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6편이 상영됐다. 상영을 마치고 영상에 등장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5명이 단상에 올라와 저마다의 사연을 얘기했다. 얘기가 길어질수록 카메라로 기록하는 이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 김이찬(49·사진)씨다. 지구인의 정류장은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비디오 제작 교육 등을 하는 쉼터다. 김씨는 2009년 말 지구인의 정류장을 만들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시민도 주민도 아니잖아요. 외국인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지구인’이라 하고, 이곳이 계속 머무는 곳이 아니니깐 ‘정류장’이라고 했죠.”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특별전의 상영작은 모두 지구인의 정류장이 제작했다.
김씨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실상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캄보디아 등에서 온 노동자들은 농축산농가에서 애초 계약서와는 달리 12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렸다. 성희롱은 다반사고, 마치 현대판 노예처럼 다른 농가로 ‘대여’됐다. 김씨는 교육생으로 온 이들의 사연을 들어주다가 그들을 만났다. 캄보디아어까지 익혀 법률적 대안을 제시했다. 조금씩 그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2011년에는 잘 곳 없는 여성 노동자들이 대거 찾아왔다. 현재 20여평이 좀 넘는 연립주택 두 채에 갈 곳 없는 남녀 노동자 70여명이 머물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사법고시를 보지 않았다. “권력을 가진 자와 아닌 자 사이에서 부품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대학생활 내내 야학활동을 했다. 노동자(학강)를 선생(강학)으로 만나 교류했다. 인기 좋은 ‘기타 치는 야학오빠’였다. 한때 케이블방송사에서 피디로 4년간 근무하면서 50편이 넘는 단막극도 연출했다. “재미가 없어서” 사표를 내고 본래 하고 싶었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섰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의 얘기를 다룬 <데모크라시 예더봉>(2000)은 그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을 탔다. “낯선 땅에 사는 이방인들의 삶을 알고 싶었어요. 알고 싶은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사귀고 싶었죠.” 감독에서 이주노동자 지킴이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노무현 정권 말 안산 지역에 생긴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비디오교실을 열면서부터다.
지구인의 정류장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있다. 지역생활공동체로서 꿈을 펼칠 생각이다. 오는 16일 오후 5~7시 안산의 카페 ‘작당’(다문화1길 4)에서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을 연다. 그는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채소 등이 어떤 과정으로 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고용허가제는 고쳐야 하고 근로기준법 63조(근로시간, 휴식, 휴일 등에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예외 근로자’를 정한 법)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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