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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한 손엔 기타, 다른 손엔 카트리지를 든 남자

등록 2014-12-14 18:59수정 2015-01-09 16:55

기타리스트·카트리지 디자이너 이현 씨.
기타리스트·카트리지 디자이너 이현 씨.
[짬] 기타리스트·카트리지 디자이너 이현씨
2012년 초여름 독일 베를린 중심가의 정부청사. 재독 클래식 기타 연주가인 이현(47)씨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당시 오디오 턴테이블에 들어가는 모노 카트리지를 4년째 제작·생산중이던 이씨는 독일 정부의 면허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당 관청을 찾아갔으나 담당자는 30분째 ‘노’만을 연발하며 요지부동이었다. “카트리지는 저전류 전기제품인데 공대는 나왔느냐”는 담당 공무원의 질문에 “동베를린 음대를 나왔다”고 하니까 “공대를 들어가서 자격요건을 갖추고 오든지, 아니면 그냥 취미로만 제작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발길을 돌리려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지고 있던 자신이 제작한 카트리지 샘플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이 담당공무원은 정교한 만듦새에 놀라며 “이게 뭐냐? 아, 전축바늘”이라며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건성으로 대답하던 공무원은 이씨의 면허발급 상담에 진지하게 응했다. “세상에 다 예외 규정이 있다. 46살이 넘는 숙련된 기술자의 경우 기술사협의회에서 치르는 간이시험에 통과하면 면허발급이 가능하다”며 당시 45살이던 이씨에게 “한국에서는 태어나자마자 한살을 먹는다고 하던데 46살로 인정해주겠다”고까지 했다.

대학 기타과 졸업뒤 독일 유학
생계 위해 제작 나섰다 전문가 변신
2012년 베를린서 자격증도 따
음질 인정 받고 애호가 늘어나

최근 다시 기타 잡고 교육자 꿈
실내악단 만들어 공연도 펼쳐

결국 기술사협의회 시험을 통과해서 ‘카트리지 디자이너’라는 자격증을 발급받던 날 그 공무원은 “내가 알고 있기론 베를린에서 (디지털 음원 등장 이후) ‘카트리지 디자이너’(카트리지 제작·설계자)라는 자격증을 신규 발급받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연주회를 위해 지난달 일시 귀국한 이씨는 지난 8일 “1984년 콤팩트디스크(시디) 등장 이후 레코드를 트는 턴테이블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오디오 선진국인 독일에서도 카트리지 제작자의 신규 면허 발급이 중단된 것”이라고 말했다.

카트리지는 레코드의 골에 담긴 녹음 음악 정보를 미세한 다이아몬드 바늘로 수집하는 아날로그 소리의 입구에 해당한다. 그만큼 제작공정이 까다롭고 복잡한 카트리지는 ‘아날로그의 꽃이자 완성체’라고 불리기도 한다. 레코드 골의 소리를 제대로 뽑아내는 정교한 카트리지의 경우 천만원대 제품도 있다. 최근 몇년 새 미국·유럽 등지에서 디지털 기기에 밀려 뒤안길로 밀려났던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아날로그 오디오가 다시 각광을 받으면서 텐테이블과 카트리지 붐이 일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유럽 최대 오디오쇼인 뮌헨 오디오 박람회에서 20개 턴테이블 신제품이 출품될 정도로 유럽에서는 아날로그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카트리지는 내년 4월 마지막주에 열리는 뮌헨 오디오 박람회에 정식 출품된다. 이씨의 모노 카트리지인 ‘테데스카’는 오르토폰 에스피유(SPU) 시리즈, 이엠티 티에스디(TSD) 등 1950~1970년대에 나온 고가의 빈티지 카트리지의 명성에 한참 못 미치지만, 오디오파일(오디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그 음질을 인정받고 있다. 이씨는 다이아몬드 바늘 부착 등 70여개에 이르는 까다로운 작업공정을 일일이 혼자서 수작업으로 완성을 한다. “제가 외골수 기질이 있어서인지 하루에도 몇 시간씩 현미경을 들여다본다”는 이씨는 이 때문에 한해에 50여개 정도밖에 생산을 하지 못한다. 2009년 첫 제작 이후 150여개가 판매됐다고 한다. 개당 3천유로가 넘는 고가품인데도 이씨의 카트리지를 세 종류나 보유하고 있는 국내 애호가도 생겨났다.

지난 4월 뮌헨 오디오쇼와 10월 독일 오디오 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독일과 스위스 오디오 제작 업체 관계자들이 그의 카트리지 소리를 듣고 “그전에 오르토폰 에스피유 시리즈 카트리지나 하이엔드 카트리지를 들었을 때는 막이 쳐진 느낌이었는데 네 것으로 들으니 막이 걷히는 기분”이라는 후한 평가를 내리고 내년 뮌헨 행사 때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 친구들 역시 스테레오 이전에 나온 1940~50년대 모노 음반을 제대로 재생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인데 제 소리를 듣고 공통분모를 찾았던 것이죠. 투명하고 색채감 없이 중립적인 소리 성향을 들려준다고 평가를 하더군요. 무엇보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은 게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 당시 유일하게 4년제 기타과가 있던 피어선대학을 졸업한 뒤 1995년 독일로 유학해 동베를린 대학과 대학원 최고연주자 과정을 이수한 이씨는 촉망받던 기타 연주자였다. 독일 예술고등학교 3곳에 출강하고 독일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는 등 직업 연주자로서 경력을 차곡차곡 쌓던 중 1999년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의 연주 인생에 큰 전기를 맞이했다.

미숙아로 태어나 심장박동기를 달고 생활해야 했던 아이가 언제 병원으로 이송될지 몰라 1년간은 자면서도 바지를 벗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동안 취미로 했던 오디오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2001년 독일인 친구와 턴테이블·톤암 제작 회사를 차린 뒤에는 9년간 기타를 아내의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한번도 손에 잡지 않았다. 2009년 회사 정리 뒤 턴테이블과 톤암을 제작했던 경험을 살려 홀로 카트리지 연구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2년 전부터 늦었지만 기타 연주를 다시 시작하고, 강단에 설 계획도 세우고 있다. 실내악 연주자들의 모임인 ‘콜레기움 뮤지쿰 서울’(서울음악가모임)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지난달 19일 서울 포니정홀에서 창단공연도 개최했다.

한 손엔 기타, 한 손엔 카트리지, 가슴엔 음악 교육가라는 꿈을 간직한 사람에게 현실의 벽은 열정보다는 높지 않은 것 같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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