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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즐기려 먹거나, 허기를 채우려 먹거나

등록 2014-12-19 21:01수정 2015-10-23 18:09

<먹는 존재>(아래)의 유양과 <술도녀>(위)의 세 주인공은 서로 다른 욕망의 방식으로 음식을 먹는다.
<먹는 존재>(아래)의 유양과 <술도녀>(위)의 세 주인공은 서로 다른 욕망의 방식으로 음식을 먹는다.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술꾼도시처녀들>의 미깡 작가, <먹는 존재>의 들개이빨 작가
2주 전부터 진행한 연말 ‘나홀로’ 웹툰 시상식, 이번 주에는 ‘올해의 발견’ 부문(지난해 수상자 <수업시간 그녀>의 박수봉 작가)이다. 공동 시상으로 악명 높던 문화방송에서도 올해는 공동시상을 지양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올해의 발견’ 부문에 대해서는 <술꾼도시처녀>(이하 <술도녀>)의 미깡 작가와 <먹는 존재>의 들개이빨 작가를 공동 시상하려 한다. 두 사람 모두 올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한 두 작품은 서로의 이야기를 보완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술도녀>에 대해서는 이미 이 지면을 통해 식탐 자극 만화의 맥락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먹는 존재>의 주인공 유양 역시 에피소드마다 음식을 먹고 허기를 채운다. 하지만 두 작품이 먹는 행위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는 각기 다르다. “그저 배고픔이 양아치지”라고 말하는 유양은 임신한 친구 예리에게 자신이 더는 그의 1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하며 순댓국으로 허기를 채우고, 자신에게 잘해준 아주머니의 장례식에서 육개장을 먹으며 ‘간만에 식욕이 참 면목 없게 느껴’진다고 독백한다. 반면 <술도녀>의 리우는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킨 뒤 무슨 일 있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맛있어서”라고 답하며, 정뚱은 양주를 먹고 있는 친구들의 술자리에 가기 위해 초고속으로 일을 마친다. <먹는 존재>의 먹는 행위가 결핍을 채우는 행위라면, <술도녀>의 그것은 좀 더 탐미적이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단순히 음식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는 아니다. 시니컬한 유양에게 세상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남자친구 호적 조사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친구 예리는 직장 상사에게 폭력에 가까운 모욕을 종종 당한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고픔을 채우는 건 이 지랄맞은 세상에서 그나마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나마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방식이다. 그에 반해 <술도녀>의 세 주인공들은 세상의 지랄맞음을 견뎌내기 위해 술을 마시기보다는 마음에 맞는 친구끼리 모여 오늘밤을 즐긴다. 하지만 가끔 그들의 직장생활에 대한 암시에서 드러나듯 <술도녀>의 주인공들에게 유양 같은 지랄맞은 경험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술도녀>가 굳이 담아내진 않는 어둡고 씁쓸한 술자리가 <먹는 존재>에 담겨 있다고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세상이 원하는 얌전한 스테레오타입이 되지 못하는 젊은 여자들에게 세상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먹는 존재>가 그 지난함을 허기를 통해 말한다면, <술도녀>는 그럼에도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긍정적 에너지를 술자리를 통해 보여준다. 각기 다른 방식의 두 작품이, 그럼에도 동시대 여성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는 건 둘 모두 삶의 서로 다른 면을 비추는 유의미한 시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히 ‘올해의 발견’이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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