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스케스의 걸작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을 공포에 질린 채 비명을 지르거나 일그러진 모습으로 변형한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를 본뜬 습작’ 연작.
프랜시스 베이컨(1909~ 1992년)의 작품은 좀 엽기적이다. 갈기갈기 찢긴 채 썩은 고깃덩이, 내장이 드러난 채 피가 뚝뚝 흐르는 인체, 흠씬 두들겨 맞은 듯 왜곡된 얼굴을 한 자화상과 초상화들…. 예수 그리스도를 푸줏간의 고깃덩어리로 묘사한 ‘십자가 책형 습작’ 연작, 벨라스케스의 걸작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을 공포에 질린 채 비명을 지르거나 일그러진 모습으로 변형한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를 본뜬 습작’ 연작 등 사회적 논란을 부른 작품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컬렉터들은 그의 그림에 열광한다. 지난 2003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선 친구였던 화가 루시안 프로이트를 그린 ‘루시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가 1억4240만 달러(약 1528억원)에 낙찰됐다. 그전까지 가장 비쌌던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뛰어넘으며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예술세계는 난해하고, 괴기스럽다.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디자인하우스)은 베이컨의 육성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미술 평론가이자 그의 오랜 친구인 데이비드 실베스터가 25년동안 9차례에 걸쳐 진행한 베이컨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베이컨은 자신의 삶과 그림에 대한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1년 만에 퇴학당해 전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부모와의 불화로 열네살 때 집에서 쫓겨난 뒤 하인, 요리사, 잡부로 떠돌던 10대, 동성애 파트너와 런던, 베를린 뒷골목을 전전했던 밑바닥 인생을 그대로 드러낸다. 피가 뚝뚝떨어지고 형체조차 애매한 일그러진 그림에 대해 그는 “그저 또 다른 그림이 되는 것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지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며 “내 그림을 보다 더 인위적으로, 보다 더 왜곡되게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또 난해한 자신의 그림에 대해 “나조차 내가 한 작업에 상당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누군가 내 작품을 구입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흥분시키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며 자유로운 해석을 주문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디자인하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