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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술익는 마을·대숲 마을 ‘예술마을’로 살아났네

등록 2015-02-03 19:50수정 2015-02-04 14:31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진행된 전남 담양군 향교리와 경북 상주시 함창읍 곳곳에는 다채로운 예술 작품이 가득하다. 사진은 향교리 마을지도가 그려진 농가.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진행된 전남 담양군 향교리와 경북 상주시 함창읍 곳곳에는 다채로운 예술 작품이 가득하다. 사진은 향교리 마을지도가 그려진 농가.
함창·담양 바꾼 ‘마을미술프로젝트’
함창바탕골의 세창양조장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처음 문을 열었다. 경북 상주시 합창읍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누룩내음이 진동했다. 하지만 여느 농촌처럼 지역 경제가 쇠락하고 인근 문경막걸리와 경쟁에서도 밀리면서 2004년 문을 닫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지난 10년 동안 지붕은 서서히 내려앉았고, 천덕꾸러기가 됐다.

흉물스레 방치됐던 양조장이 갤러리로 변신했다. 술·시간갤러리, 라울섬유갤러리, 김석환·있다 갤러리, 요아킴·추이아갤러리, 금상천화, 그리고 예술카페 ‘술도가’…. 무려 6개의 갤러리가 터잡았다. 저마다 양조장의 태생 근거인 술과 한 때 전국에 명성이 자자했던 함창 명주실을 모티브로 한 설치, 인형, 만화, 토용, 벽화 등 다양한 작품을 전시한다.

쇠락한 농촌마을을 예술마을로
6년전 시작…전국 76개 마을 변화
‘반세기 역사’ 양조장 건물 갤러리로
마을 곳곳엔 정감어린 시절 그려

담양 할머니들은 ‘아트타일’ 만들어
인생사 풀어 담장 곳곳에 붙이기도

함창읍 내 허물어져가는 건물 모퉁이를 활용한 인물화.
함창읍 내 허물어져가는 건물 모퉁이를 활용한 인물화.
갤러리로 변신한 함창 세창양조장.
갤러리로 변신한 함창 세창양조장.

함창읍의 변신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2014 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4월부터 올 1월까지 마을미술프로젝트추진위원회와 경북 상주시가 국비 3억원, 지방비 4억원을 들여 ‘함창예고을-금상첨화(錦.上.添.畵)’를 주제로 쇠락한 함창을 예술마을로 바꿨다. 21명의 작가·팀이 참여해 함창역을 영상아트 ‘터‘(육근병) 등 예술품이 공존하는 아카이브 공간으로 변모시킨 것을 비롯해 가야마을, 함창전통시장, 함창바탕골 등 4개 지역에 입체, 설치, 사운드아트 등 다양한 미술품을 설치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화랑가나 유명 예술인 마을과 견주는 건 아직 무리다. 하지만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며 마을의 부흥을 갈망하는 주민의 정성이 곳곳에 배어있다. 갤러리는 6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양조장의 골조를 최대한 살리며 내려앉은 잔해 더미에서 쓸만한 목재를 찾아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곧 무너질 듯 보였는데, 구조진단을 해보니 안전하다는 거예요. 미술관을 만들테니 무상으로 땅과 건물을 내달라고 양조장 소유주를 설득했죠. 처음엔 고개를 갸웃하던 흔쾌히 내주더라구요.” 김해곤 마을미술프로젝트추진위 총괄감독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벽화가 그려진 함창전통시장 공중화장실
벽화가 그려진 함창전통시장 공중화장실
지난달 29일 찾은 함창읍은 주인 떠난 빈집들 만큼이나, 많은 미술작품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5일장이 열리는 함창전통시장의 공중화장실엔 물레로 명주실을 뽑는 여인의 모습 등 고단했지만 정감어린 시절이 담긴 벽화 ‘명주이야기’(이강준)가 그려졌다. 녹슨 가스통과 철문이 방치된 허름한 벽에는 씨름 장면이, 빈집 마당엔 설치미술 작품이 들어섰다. 발길에 채일 듯한 건물 모퉁이 틈새와 수챗구멍을 활용한 작품도 눈에 띈다. 함창초등학교와 함창중앙초학교에는 이 지역 출신 예술가 13명의 작품을 전시하는 학교미술관이 조성됐다.

주민 김현태씨는 “과거 상주시 지방세의 60%가 함창에서 나왔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전국 야구대회가 함창에서 열렸다. 쇠락하고 사람들이 떠나간 지금 그 시절을 상상할 수 있겠냐”며 “마을미술프로젝트로 함창이 다시 번성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벤치와 조명 등 설치작품이 터잡은 향교리 마을회관
벤치와 조명 등 설치작품이 터잡은 향교리 마을회관
전남 담양군 향교리. 향교를 둘러싼 대나무 숲 ‘죽녹원’과 천연기념물 366호 관방제림이 자랑인 이곳도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예술이 숨쉬는 공간이 됐다. 함창에 견줘 규모는 작다. 하지만 마을 할머니들과 이곳에 터잡은 대담미술관이 함께했다.

마을회관 옥상에선 도자기로 만든 대나무와 엘이디 조명이 어우러진 ‘향교리 대숲 속 빛의 하모니’(진시영)가, 마을 어귀 허름한 농가의 거친 시멘트 벽면에선 아트타일을 활용한 ‘향교리 이야기 마을지도’(오상문, 윤준성)가 반긴다. 한 때 무당집이었던 폐가는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전시장 겸 커뮤니티 공간 ‘향교리 대나무 정원’(정명숙, 김혁 등)으로 다시 태어났다.

방치된 양조장을 활용한 아트카페 ‘술도가’
방치된 양조장을 활용한 아트카페 ‘술도가’
할머니의 아트타일로 단장한 향교리 주택
할머니의 아트타일로 단장한 향교리 주택
무엇보다 향교리를 정감있게 만드는 예술품은 담장 곳곳을 장식한 할머니들의 아트타일 작품이다. 꽃 나무를 살갑게 그린 뒤 ‘나는 이렇게 박에 못해’라고 쓴 이순덕 할머니, 흐드러진 붉은 꽃을 심은 화분을 새기고 ‘꽃다운 내청춘이 어느새 반백이 돼여 버렷네’라고 적은 박정순 할머니, ‘화가믄 여기 있겠어? 잘 그리믄 요놈으로 입에 풀칠허지’라는 익살까지…. 진시영 작가는 “3년동안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가르친 게 마을미술프로젝트로 현실화됐다”고 자랑했다. 마을에 터잡은 대담미술관의 아트컨테이너 공간에서 할머니들과 그리고 구워낸 아트타일로 마을을 꾸민 것이다.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가 공동주최하고 마을미술프로젝트추진위와 자치단체가 공동주관하는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작가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예술뉴딜정책’의 일환으로 2009년 처음 시행됐다. 지난 6년동안 전국 76개 마을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함창, 담양/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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