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현대건축가 장-미셸 빌모트가 설계한 대전 예술가의 집(왼쪽부터)과 1950~60년대 자유로운 실험을 거듭하며 한국 모더니즘 건축을 주도한 김중업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이화여대캠퍼스센터. 김중업이 1959년 설계한 ㈜유유산업 안양공장 건물을 활용한 김중업관(아래)에선 서산부인과의원 등 그가 설계한 주요 건축의 모형과 각종 자료를 상설전시한다. 김중업박물관 제공
김중업박물관 1돌 특별기획전
1971년 11월, 김중업은 쫓기듯 프랑스로 떠났다. 와우아파트 붕괴, 성남시 재개발 정책 등에 대한 날 선 비판에, 정부는 그를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어 강제출국시켰다. 부산대학교(1956)와 서강대학교(57) 본관 등 대학 건물의 정형을 만들고, 한국적 조형미를 형상화한 주한 프랑스대사관(1961~62), 성적은유를 담은 서산부인과의원(1965) 등 자유로운 실험으로 한국 모더니즘 건축을 이끌던 거장은 그렇게 고국을 등진 채 유배를 떠났다. 1979년 귀국해 육군박물관(81), 국제방송센터 IBC(85) 등을 설계하며 재기를 시도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말년에 파산지경에 이르러 장충동 집까지 내놓은 김중업은 낙심해 88년 66세로 눈을 감았다. 그와 함께 우리 근대건축을 이끈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 김수근이 ‘적절히 순응’하며 반공센터(63), 세운상가(66~68), 아르코미술관(77~79), 올림픽주경기장(77~84) 등 주요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건축계에 일가를 이룬 것과 대조적이다.
“천재란 원래 어디서나 시대를 앞서가는 기수이기에 박해가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나 이들을 이해하고 아끼는 이들이 소수일망정 앞을 내다보는 지성인들 속에 존재하여 겉보기보다는 외롭지 않다.” 김중업은 지난 1980년, 건축전문 격월간지 <꾸밈>에 이렇게 말했다.
르 코르뷔지에 사사 첫 한국인
정부 정책 비판뒤 ‘미운털’
71년 프랑스로 쫓겨나 유배생활 김중업 건축을 연결고리 삼아
프랑스 건축가 국내 프로젝트 살펴
‘김중업 장학금’ 유학생 작품 소개도
이제야 그의 천재성을 세상에 온전히 알릴 기회가 찾아온 것일까. 조국이 버린 그를 품어준 프랑스 건축계와 그의 ‘음덕’을 입은 주한 프랑스건축사회 소속 한국 건축가들이 김중업의 건축유산을 돌아보고, 프랑스 건축과 한국 건축의 교류 및 발전 과정을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중업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 ‘여기, 이어지다 : 한국·프랑스 건축전’이다.
전시는 50년대 프랑스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사사한 첫 한국인 김중업과 프랑스 건축을 연결고리 삼아 ‘시간, 사람, 건축’이 모두 김중업박물관으로 이어진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1부 ’시간, 이어지다’에서는 김중업박물관의 장소성에 주목한다. 신라 흥덕왕 2년인 827년 조성된 중초사지 당간지주, 고려·조선 시대 안양사가 터잡았던 곳에 김중업이 1959년 설계한 ㈜유유산업 안양공장이 들어서고, 안양시가 이 공장을 매입해 지난해 3월 국내 최초의 건축박물관으로 개관한 과정을 다룬다.
2부 ‘사람, 이어지다’는 주한 프랑스문화원과 한국프랑스건축사회가 2004년 만든 ‘장 프루베-김중업 건축 장학금’으로 프랑스에서 유학한 젊은 국내 건축가들을 통해 우리 건축의 미래를 살핀다. 1회 장학생인 천경환을 비롯해 최혜진 임상우 등 12명의 독특한 개성을 엿볼 수 있다.
3부 ‘건축, 이어지다’는 우리 건축에 스며든 프랑스의 영향을 폭넓게 조망하는 4개의 부속 전시로 꾸몄다. ‘01-공간 중심의 근대적 건축 정착’에선 자연을 활용해 공간을 창조적으로 구현한 김용미, 정재헌, 정진국과 로랑 살로몽의 작품이 전시됐다. 현대건축과 한옥을 결합해 하늘을 열어보인 김용미의 횡성 숲체원, 마당을 보리밭으로 만든 정재헌의 양평펼친집 등이 눈길을 끈다. ‘02-근대건축과 지역적, 유미적 형태의 결합’은 로랑 보두앵, 뱅상 코르뉴 등 프랑스 현대 건축가들이 한국에서 펼친 지역 프로젝트를 조명한다. 미술관을 산책로처럼 만든 대전이응노미술관(로랑 보두앵), 작가가 각각의 공간을 손으로 그린 투시도로 재현한 대림미술관(뱅상 코르뉴) 등이 볼거리다.
’03-새로운 디테일로서의 건축’은 인테리어 측면을 강조한 장-미셸 빌모트, 다비드-피에르 잘리콩, 김동진, 장순각의 작품을 살필 수 있다. 잘리콩은 예술의 전당 인근 아쿠아 아트 육교, 홍천군에 들어선 소노 펠리체 리조트 등의 상세 모형을 직접 제작해 전시했다.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의 설계를 맡았던 장-미셀 빌모트가 설계한 가나아트센터, 인사아트센터, 대전 예술가의 집 등을 통해 우리 안에 뿌리 내린 프랑스의 영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04-새로운 이미지, 하이테크 기반의 건축’은 이화여대의 모습을 바꿔놓은 캠퍼스센터를 설계한 도미니크 페로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계획안(2006년), 용산국제업무지구 블레이드타워 계획안(2012) 등 정치·사회적 논란 속에 끝내 현실화되지 못한 건축물을 첨단 이미지로 내부까지 보여준다. 5월 10일까지.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정부 정책 비판뒤 ‘미운털’
71년 프랑스로 쫓겨나 유배생활 김중업 건축을 연결고리 삼아
프랑스 건축가 국내 프로젝트 살펴
‘김중업 장학금’ 유학생 작품 소개도
김중업박물관의 김중업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