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윤 시인.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짬] 첫번째 ‘섬 사진전’ 여는 섬학교 강제윤 시인
12년 전 땅끝보다 더 남쪽 땅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보길도 시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뭍으로 떠난 지 20여년 만인 1998년 고향으로 돌아와 손수 지은 ‘동천다려’에서 오가는 길손들과 차와 시를 나누고 있었다. 얼핏 ‘안빈낙도’를 즐겼던 고산 윤선도의 맥을 잇는 듯 보였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는 결코 풍류객일 수가 없었다. 2003년 그는 고산 유적지를 비롯해 천혜의 자연을 훼손하려는 댐 건설 계획을 33일간의 1인 단식 끝에 막아내며 ‘보길도 지킴이’로 불렸다. 그렇게 고향에 터를 잡는 듯했던 그는 돌연 보길도를 떠났다. 귀향 8년 만에 정든 진돗개 봉순이·꺽정이·길동이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섬을 떠났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존재의 의미를 찾으러” 티베트로 간 그는 ‘구도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돌아온 그는 다시 섬으로 갔다. 그로부터 10년째 섬을 걷고 있다. 한반도 남쪽 섬 4400여개 중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 500개, 그 가운데 350개를 직접 발로 답사했다.
글로 책으로 담지 못한 이야기 무궁
22일부터 인사동서 ‘섬나라 한국’ 전시 고향 지키고자 싸웠던 ‘보길도 시인’
2006년 돌연 배낭 하나 메고 순례자로
‘섬 사랑’ 함께 고민할 섬연구소 준비 ‘섬순례자’ 강제윤(사진)씨가 모처럼 뭍으로 올라온다. 오는 22~29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강제윤 첫 개인전-섬나라, 한국’이란 제목으로 사진전을 연다. 그동안 꾸준히 발표해온 섬기행문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우리 섬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일상 풍경을 골랐다. ‘사진으로 쓴 섬택리지’인 셈이다. “보길도 지키기 활동을 하면서 난개발로 섬이 파괴되는 것을 많이 봤다. 섬의 원형이 사라지기 전에 섬의 자연과 고유한 문화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06년 10월 어느 날 ‘10년 대장정’에 나선 그는 첫 목적지부터 ‘삐끗’했다. 내가 나고 자란 완도 일대 섬부터 제대로 보고자 황제도를 선택했으나 폭풍주의보에 묶인 것이다. 대신 배가 빨리 뜬 덕우도가 ‘섬기행 1호의 영예’를 얻었다. “아주 작은 섬이었다. 섬의 허리는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이삼분밖에 안 될 정도로 작았다. 나 자신 ‘섬 촌놈’이지만 어떻게 이토록 작고 위태로운 섬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참으로 경이로웠다. 특히 잘 보존된 당산숲에서 어떤 신령함이 느껴졌다. 섬으로 오길 잘했구나 싶었고 섬을 계속해서 걸어야 할 이유를 찾은 듯했다.” 예정에 없던 낯선 섬의 첫날, 그는 섬기행의 모든 것을 깨달았다. “섬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낮에는 사람들을 만나고 구석구석 걸으며 기록했으니 괜찮았지만 밤이면 혼자였다. 그 막막함이 망망대해처럼 아득했다. 이게 진짜 섬이구나 싶었다.” 그 외로움은 이번 전시회에 선보일 사진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도 한두번쯤 후회하거나 포기하고 싶은 고비가 없었을까. “4년쯤 지났을 때 위기가 왔다. 답이 보이지 않았다. 2008년부터 <한겨레>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꾸준히, 부지런히 기행문을 싣고 책으로도 묶어냈지만 무관심해 보였다. 과연 내가 섬을 기록하는 것이 섬에 도움이 되는 걸까, 의미가 있는 걸까,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 1년 가까이 걸음을 멈추고 제주도에서 내내 술만 마셨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다시 섬이 그리워졌다.” 그러자 다행히 그의 섬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함께 섬을 걷고 싶어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2012년 3월 인문학습원 섬학교를 열고 교장이란 명함을 새로 얻었다. 교실이 따로 없는 ‘유랑 학교’였다. “혼자만으론 힘겨웠다. 많은 사람들이 섬을 직접 체험하게 만들고 싶었다. 섬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섬을 지킬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매달 한번씩 사람들과 답사를 하고 있는데 다음달이 벌써 38회째다. 연인원으로 1200명쯤 함께했다. 그 덕분인지 사람들의 섬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배 타는 것도 불안해하던 회원들이 스스로 섬의 자원을 보존해야겠다고 말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통영 동피랑의 예술인 레지던스에서 5년째 머물고 있는 그는 남해의 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토목자본과 결탁한 지방자치단체의 막개발 시도를 경계하는 감시자 노릇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일부 다도해를 거느린 지자체에서 섬을 큰 자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다. “전남도(지사 이낙연)에서 핵심 시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가고 싶은 섬 만들기’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토목 개발은 철저히 배제하고 섬의 고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섬을 생태관광 공간으로 가꾸겠다는 것이다. 기대할 만한 정책이다.” ‘유인도 500개 답사’가 머지않은 지금, 그의 다음 구상이 궁금하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섬을 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섬을 사랑하도록 섬을 가꾸는 단체를 만들 생각이다. ‘섬연구소’(가칭)가 그 하나다. 이번 사진전도 그 뜻에 동참할 사람들을 모으고자 기획했다.” 섬연구소를 통해서 그가 하려는 일은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가는 섬의 문화자원을 보존하는 것이다. “섬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을 수 있는 최적의 사유 공간이다. 반도의 고립에서 오는 배타성을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섬들을 사랑하고 섬으로 가야 할 이유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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