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공간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 ‘대화’를 보며 얘기를 하고 있다. 뒷벽에 걸린 작품이 ‘대화’이다.
개관 보름 맞은 이우환 미술관
지난 22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부산시립미술관 앞마당 동쪽에 자리잡은 ‘이우환 공간’에는 관람객들이 붐볐다. 시립미술관 별관인 이곳은 유럽과 일본에서 활동중인 미술 거장 이우환(79) 작가의 국내 유일 상설 전시관이다. 이진철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지난 10일 이우환 공간 개관 이후 평일은 하루 평균 150여명씩, 주말은 300여명씩이 방문한다. 방문객이 평소보다 2~3배 늘어 요즘처럼 바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은 전문 미술인들부터 유치원 어린이까지 다양했다. 일부러 서울 등에서 이곳을 찾는 미술 애호가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23일엔 광주비엔날레 전시감독이었던 제시카 모건이 미국 뉴욕의 대표적 비영리 미술기관인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 관계자 4명과 함께 왔다.
마당과 건물 안에 전시된 24점의 작품 가운데 2층의 ‘대화’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 작가가 전시관 개관에 맞춰 가장 최근에 작업한데다 하얀 여백에 컵만 덩그러니 그려놓은 독특한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은 발걸음을 바로 떼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은 이우환 공간이 부산에 들어선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문아무개(59·부산 해운대구 우동)씨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언제든지 볼 수가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일부 관람객은 점·선의 미학적 개념을 추구해온 이 작가의 추상적 작품세계가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지혜(29·해운대구 우동)씨는 “돌을 왜 바닥에 뒀는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김기정씨는 “어린이들에게는 무척 어려운 주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이우환 공간의 작품들을 잘 보존하기 위해 학생과 관광객 등의 단체 예약을 받지 않고 5~10명 단위로 관람을 허용했다. 또 전시관 안에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도록 관람객에게 당부했다.
유럽·일본 활동중인 세계적 작가
시립미술관 내 상설 전시관 마련
마당·건물 안 24점…23점 기증 경남중학교 입학 부산과 인연
한국전쟁뒤 부친 심부름으로
도쿄 갔다가 일본서 화가의 길 시의 ‘이우환 미술관’ 유치 제안에
“마음속 고향…문화 교류 일조”
가가와현 나오시마섬 이어 두번째 시, 세계적 미술관 성장 바라
인근에 영화의전당·해운대 있어
지리적 이점…관광객 증가 기대 ■ 이우환과 부산 이우환 작가는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신문기자였고 어머니는 책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이우환 작가는 “어릴 때부터 책을 무척 많이 읽었다”고 했다. 기성 미술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화법을 생각하는 힘이 이때부터 길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학생 때 부산과 인연을 맺었다. 경남 진주의 농업중학교와 부산 경남중학교에 시험을 쳤는데 경남중학교에 합격했다. 그는 “고향과 가까운 진주 농업중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친구들 가운데 나만 떨어지고 시험이 더 어려운 경남중학교에는 나만 합격해서 이상했다. 아버지가 농업중학교에 불합격했다고 알려줬는데 진짜 그랬는지 지금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공부를 잘하던 아들을 큰 인물로 만들기 위해 농업중학교가 아니라 부산에 유학 보내려고 ‘농업중학교에 낙방했다’고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50년 4월에 경남중학교에 입학했다. 책방골목으로 유명했던 부산 중구 보수동 5촌 아저씨의 집에서 하숙을 했다. 경남중학교에 입학하고 두 달 뒤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왔지만 그는 세상물정 모르는 까까머리의 중학생이었다. 그는 “자갈치와 영도 등을 수없이 친구들과 돌아다녔어요. 구덕산에 식물 채집을 자주 하러 갔는데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고 돌아봤다.
그는 서울대 사범대 부속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야 서울로 가서 공부했다.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일본 도쿄의 삼촌에게 약을 전해주러 갔다가 서울대를 그만뒀다. 대학 입학 석달여 만이다. 그는 일본에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유럽 등을 돌아다니며 화가의 명성을 쌓았다.
그가 부산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11년이다. 조일상 부산시립박물관장이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과 함께 이 작가를 만나러 일본으로 갔다. 허남식 전 부산시장이 조 관장을 특사로 보내 이우환 미술관을 만들자고 설득했지만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미술관은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당시 부산시는 일제강점기 경마장과 한국전쟁 뒤 미군부대로 사용되다가 100여년 만에 미군으로부터 돌려받은 부산진구 하얄리아를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도심공원으로 만들려고 했다. 2014년 5월 완공된 부산시민공원에 이우환 미술관을 유치하면 부산시민공원의 대표 명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우환 미술관’ 제안을 거절하던 그는 2013년 마음을 바꿔 부산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고향을 떠나 처음으로 간 곳이 부산이어서 그런지 항상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 해맑게 뛰어놀던 부산의 모습이 객지를 떠돌면서도 기억에 또렷했다. 나에게는 부산은 늘 마음속의 고향이어서 부산시의 제안을 마냥 뿌리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부산에 개인 미술관을 두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는 “부산은 국제도시다. 문화 교류에 일조를 하고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조금이나마 문화적 안식처 혹은 정신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명 예술관이 몰려 있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자신의 미술관을 둬서 지역 미술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 이우환 미술관의 힘은?
이우환 공간은 일본 가가와현 나오시마섬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 이우환 개인 미술관이다. 대구·광주 등에서도 이우환 미술관을 유치하려 했지만 이 작가는 부산을 선택했다. 특히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 24점 가운데 23점을 이례적으로 무상으로 기증했다. 부산 미술계는 이우환 공간에 전시된 작품 가치를 최소 100억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산시는 이우환 미술관을 통해 부산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0년 개관한 일본 나오시마섬의 이우환 미술관에 연간 50만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이우환 공간에서 직선 2㎞ 거리에 국제회의가 열리는 벡스코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전당, 세계 최대 백화점인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연간 1000만명이 찾는 해운대해수욕장 등이 몰려 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면 관광객과 이우환 공간 관람객이 함께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부산시는 조선업이 쇠락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기차역이었던 오르세 미술관, 쓰레기 폐기물이 있던 일본 아오시마섬이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이우환 공간도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부산 미술계는 이우환 공간이 지역 미술계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양화가인 유진재 부산예술대 교수는 “이우환이란 현대 미술 거장의 전시관을 부산에 유치한 것이 자랑스럽다. 이를 시작으로 부산이 미술도시뿐만 아니라 문화도시로 발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 갤러리서린스페이스의 서지연 대표는 “당장 지역 미술계가 뜨겁게 반응하지 않겠지만 이우환 작가의 전시관이 부산 미술계에 두루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일상 부산시립박물관장은 “시립미술관 안에 개인 미술관을 두는 것은 국내에서 이우환 공간이 처음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부산시와 부산시민들이 더 열정을 쏟아야 이우환 공간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전문 학예사를 증원하고 부산시립미술관 주변을 관람객들이 접근하기 좋은 곳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시립미술관 내 상설 전시관 마련
마당·건물 안 24점…23점 기증 경남중학교 입학 부산과 인연
한국전쟁뒤 부친 심부름으로
도쿄 갔다가 일본서 화가의 길 시의 ‘이우환 미술관’ 유치 제안에
“마음속 고향…문화 교류 일조”
가가와현 나오시마섬 이어 두번째 시, 세계적 미술관 성장 바라
인근에 영화의전당·해운대 있어
지리적 이점…관광객 증가 기대 ■ 이우환과 부산 이우환 작가는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신문기자였고 어머니는 책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이우환 작가는 “어릴 때부터 책을 무척 많이 읽었다”고 했다. 기성 미술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화법을 생각하는 힘이 이때부터 길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학생 때 부산과 인연을 맺었다. 경남 진주의 농업중학교와 부산 경남중학교에 시험을 쳤는데 경남중학교에 합격했다. 그는 “고향과 가까운 진주 농업중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친구들 가운데 나만 떨어지고 시험이 더 어려운 경남중학교에는 나만 합격해서 이상했다. 아버지가 농업중학교에 불합격했다고 알려줬는데 진짜 그랬는지 지금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공부를 잘하던 아들을 큰 인물로 만들기 위해 농업중학교가 아니라 부산에 유학 보내려고 ‘농업중학교에 낙방했다’고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우환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딴 ‘이우환 공간’에서 전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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