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밤 서울 광진문화원의 한 연습실에서 직장인들이 모여 뮤지컬 <맘마미아>의 ‘생큐 포 더 뮤직’에 맞춘 춤과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 이날 연습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11명. 대학생, 공익근무요원, 회사원, 초등학교 교사까지 면면이 다양하다.(위부터 1∼3번사진).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시도된다(위에서 4번째 사진). 맨 아래 사진은 한상희씨와 이영석씨가 연출가 이동선(멀리 한가운데)씨의 지도에 따라 연기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
[100℃르뽀] 시끌 시끌 우당탕 밤9시에 도떼기시장 따로 없네
지난달 29일 밤 9시, 서울 광진문화원의 한 연습실. 창작 뮤지컬 <평강 이야기>의 대본이 돌고 있다.
“대사를 장단, 고저로 마음껏 변주해서 표현해 보세요. 그냥 읽는 것만 빼고, 뭐든 괜찮아요.” 연출가 이동선(36)씨가 ‘뮤지컬 배우’들에게 ‘부탁’한다.
누군가 창을 하듯 대사를 맛깔스럽게 뽑는다. 누구의 대사는 구연 동화를 닮았다. 젊은 사내는 유격 훈련에서나 들어봄직한 고함 소리로 대사를 토해낸다. “뒤.죽.박.죽.굴.러.가.는.세.상.속.에.어.무.이.랑.나.랑.니.캉.내.캉.둘.이.서.니.캉.내.캉.알.콩.달.콩~”
그때 ‘불친절한’ 동선씨, 또 ‘부탁’한다. “한 사람이 대사를 읽을 때 다른 분들은 그 내용을 몸으로 표현해 보세요.”
대사가 읊어질 때마다 절룩이는 사람, 한걸스레 팔짱을 끼어보는 사람으로 가닥스럽다. 누구는 겅중겅중 뛰기도 하는데 좁은 연습실, 도떼기시장이다.
광진문화원 강좌로 1주 두번
그러다 난데없이 나온 대사는 이렇다. “물이 물길을 만들고 돌이 그 물길을 더 단단하게 물길은 그 돌로 인해 더 커지고 그 돌은 물길로 인해 동글동글 예뻐진다.”
‘에잉, 이걸 어떻게 표현하느냐고요?!’ 죄다 그 표정인데, 한바탕 터져 나온 웃음이 도심의 밤으로 새어나간다.
세상은 서서히 침묵하거나 잠자리를 펴는, 밤 9시가 틀림없다. 집으로 가자니 아직 옅은 어둠이 낯설고, 어스름 밤 기분을 내자니 8시간 노동으로 몸은 너무 낡아져 어영부영 버려졌던 불모의 시각. 하지만 이들은, 이때 다시 깨어난다. 활력과 환희가 넘친다. 이 곳에서만은 ‘뮤지컬 배우’가 되는 직장인들이다. 지난 6월부터 20여명의 직장인들이 모여 창작 뮤지컬 <평강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광진문화원이 마련한 문화 강좌인 셈인데, 오는 11월11일 공연(서울 어린이회관 무지개극장)에 맞춰 일주일에 두 차례씩 모여 연기, 춤, 노래 따위를 연습해왔다. 한 주의 피로가 꼭지점으로 치닿는 목요일 밤 8시, 일요일 다 가는 소리가 가장 끔찍하게 들리는 일요일 낮 3시부터다. 가치를 따지자니, 영락없이 뮤지컬에 죽고 사는 이들인 듯 한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배워서 학생들한테 가르치고 싶었다”는 초등학교 교사 김미경(26)씨, 좀더 활달해지려고 문을 두드렸다는 자칭 “소심한” 취업 준비생 한상희(25)씨,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이곳에서 이어가고 있는 공익근무요원 이영석(23)씨까지 그야말로 사연은 다양하다. 연령도, 배경도 천연색. 대학생 5명을 빼곤 모두 직장에 다니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하다 보니 “생활의 축이 목, 일요일로 옮겨진다.”(진형우·33·시민 활동가) “목요일 수업을 빠지면 스트레스를 받는” 이(심근향·25·교통방송 리포터)도 생겨난다. 피곤했는데 피곤할줄 모르겠네요 교수법 운위하던 김 선생님, 결국 이렇게 말한다. “막상 노래하고 춤추고 함께 어울리니까 제가 너무 즐거워서 피곤한 줄 몰라요. 제 별명이 원래 ‘10시에 자는 소녀’였는데 친구들이 의아해 하죠.” 뮤지컬의 힘인지, 모임 뒤 한데 어울리는 뒤풀이의 힘인지 기자는 헷갈린다. 하지만 이들은 애써 따져 묻질 않는다. 지난 8월 춤과 노래가 섞인 뮤지컬 세 꼭지를 강변 테크노마트 야외 무대에서 올렸을 때, 뮤지컬의 흥도, 뒤풀이의 흥도 마을 전체의 것이 되었다. “잘 하고, 못 하고 중요치 않아요. 참여하는 자체가 의미 있거든요. 굳이 감동적이진 않더라도 함께 즐기면서 날 발견하는 그 과정이 값져 보여요.”회사원 이지은(31)씨가 정리한다. <평강 이야기>(극 이지현)에는 구수한 입담과 해학으로 덧씌운 평강과 온달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난해 시작한 <사랑은 비를 타고> 10돌 기념 공연(대학로 인켈아트홀)을 올린 이동선씨가 연출한다. 그 또한 “뮤지컬을 위해 모이긴 했지만 춤, 연기는 연습하면 되는 것”이라며 “스스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느끼는 시간을 즐겼으면 한다”고 설명한다. 뮤지컬의 힘? 뒤풀이 힘? 다섯 명을 빼곤 모두 여성이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평강 누가 될까요?” “당연히 저겠죠!”(심근향) “다들 속으로 계산하고 있지 않을까요? 하하.”(이지은) 눈치가 <아이다>의 ‘아이다’를 경쟁하는 것만큼 예리(?)하다. 이들의 우애도 여기서 끝나는 것일까? 물론 그럴 리 없다. 어린이와 주부들만의 지역 문화센터를 비로소 일반인의 것으로 확장한, 광진문화원의 첫 사업을 성공시켜야 할 책무도 있기 때문이다. 본 공연에 앞서, 오는 8일 강변 테크노마트 야외 무대에서 그들만의 끼를 다시금 소개한다. ‘밤 9시, 생활의 발견’은 그렇게 계속 이어진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세상은 서서히 침묵하거나 잠자리를 펴는, 밤 9시가 틀림없다. 집으로 가자니 아직 옅은 어둠이 낯설고, 어스름 밤 기분을 내자니 8시간 노동으로 몸은 너무 낡아져 어영부영 버려졌던 불모의 시각. 하지만 이들은, 이때 다시 깨어난다. 활력과 환희가 넘친다. 이 곳에서만은 ‘뮤지컬 배우’가 되는 직장인들이다. 지난 6월부터 20여명의 직장인들이 모여 창작 뮤지컬 <평강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광진문화원이 마련한 문화 강좌인 셈인데, 오는 11월11일 공연(서울 어린이회관 무지개극장)에 맞춰 일주일에 두 차례씩 모여 연기, 춤, 노래 따위를 연습해왔다. 한 주의 피로가 꼭지점으로 치닿는 목요일 밤 8시, 일요일 다 가는 소리가 가장 끔찍하게 들리는 일요일 낮 3시부터다. 가치를 따지자니, 영락없이 뮤지컬에 죽고 사는 이들인 듯 한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배워서 학생들한테 가르치고 싶었다”는 초등학교 교사 김미경(26)씨, 좀더 활달해지려고 문을 두드렸다는 자칭 “소심한” 취업 준비생 한상희(25)씨,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이곳에서 이어가고 있는 공익근무요원 이영석(23)씨까지 그야말로 사연은 다양하다. 연령도, 배경도 천연색. 대학생 5명을 빼곤 모두 직장에 다니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하다 보니 “생활의 축이 목, 일요일로 옮겨진다.”(진형우·33·시민 활동가) “목요일 수업을 빠지면 스트레스를 받는” 이(심근향·25·교통방송 리포터)도 생겨난다. 피곤했는데 피곤할줄 모르겠네요 교수법 운위하던 김 선생님, 결국 이렇게 말한다. “막상 노래하고 춤추고 함께 어울리니까 제가 너무 즐거워서 피곤한 줄 몰라요. 제 별명이 원래 ‘10시에 자는 소녀’였는데 친구들이 의아해 하죠.” 뮤지컬의 힘인지, 모임 뒤 한데 어울리는 뒤풀이의 힘인지 기자는 헷갈린다. 하지만 이들은 애써 따져 묻질 않는다. 지난 8월 춤과 노래가 섞인 뮤지컬 세 꼭지를 강변 테크노마트 야외 무대에서 올렸을 때, 뮤지컬의 흥도, 뒤풀이의 흥도 마을 전체의 것이 되었다. “잘 하고, 못 하고 중요치 않아요. 참여하는 자체가 의미 있거든요. 굳이 감동적이진 않더라도 함께 즐기면서 날 발견하는 그 과정이 값져 보여요.”회사원 이지은(31)씨가 정리한다. <평강 이야기>(극 이지현)에는 구수한 입담과 해학으로 덧씌운 평강과 온달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난해 시작한 <사랑은 비를 타고> 10돌 기념 공연(대학로 인켈아트홀)을 올린 이동선씨가 연출한다. 그 또한 “뮤지컬을 위해 모이긴 했지만 춤, 연기는 연습하면 되는 것”이라며 “스스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느끼는 시간을 즐겼으면 한다”고 설명한다. 뮤지컬의 힘? 뒤풀이 힘? 다섯 명을 빼곤 모두 여성이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평강 누가 될까요?” “당연히 저겠죠!”(심근향) “다들 속으로 계산하고 있지 않을까요? 하하.”(이지은) 눈치가 <아이다>의 ‘아이다’를 경쟁하는 것만큼 예리(?)하다. 이들의 우애도 여기서 끝나는 것일까? 물론 그럴 리 없다. 어린이와 주부들만의 지역 문화센터를 비로소 일반인의 것으로 확장한, 광진문화원의 첫 사업을 성공시켜야 할 책무도 있기 때문이다. 본 공연에 앞서, 오는 8일 강변 테크노마트 야외 무대에서 그들만의 끼를 다시금 소개한다. ‘밤 9시, 생활의 발견’은 그렇게 계속 이어진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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