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동 2가 10번지 43호-가져온 풍경들>.
서울역과 아현동, 공덕동이 지척이고, 날이 좋으면 멀리 한강까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달동네 서울 마포구 만리동. 환일고등학교 정문부터 만리배수지 공원을 휘감아 도는 고지대 골목은 오래전 벽화가 줄지은 ‘지붕없는 동네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그 길을 따라 오르면 닿는 막다른 정상, 만리재로 27길 69번지에 층마다 서로 연결된 5층 건물 세 동이 최근 터잡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예술가 집단 주거단지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M.A Coop·막쿱)이다.
막쿱은 지난 2013년 SH공사가 예술가를 위한 집단 주거 공간을 구상한지 2년만에 완성됐다. 1인 가구용 1개동, 2~5인 가구용 2개 동이 층별 보행로로 연결된 이곳은 모두 29세대가 거주할 수 있다. 지난 3월 입주를 시작한 뒤 1일 현재 24세대, 70여명이 입주했다. 미술, 설치, 건축, 영화, 영상, 연극, 문학, 출판, 음악 등 입주 예술가들의 활동 분야도 다양하다.
예술가들이 모인 만큼 건물 전체가 공연장이고, 전시공간이다. 1인 가구동인 제 2동 옥상에선 입주를 기념해 이색 전시가 마련됐다. 깨지고 패인 문짝과 붉은 벽돌, 작은 나무 창틀, 빛바랜 문구점 간판, 가스배관 파이프…. 한때 누군가에게 소중했을, 그러나 버려지고 잊혀진 물건들이 빼곡하다. <만리동 2가 10번지 43호-가져온 풍경들>. 김정현, 박원형, 이은서 등 막쿱 입주작가들이 조합결성 직후인 2013년 1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재개발로 버려진 동네 빈집을 돌며 주어온 물건을 예술품으로 바꾼 것이다. 유리창엔 화이트로 ‘포크레인과 중장비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오랜 시간들, 곧바로 세워진 수직의 건물들, 그 속에서 변하고 버려진 공간을 기억하는 방’이라고 적혀있다. 전계동 작가가 찍은 만리동 개발 현장을 담은 흑백 사진도 곳곳에 붙어있다. 제대로 된 주거공간이 없어 어려움을 겪던 예술가들이, 이제 안식처를 제공받은 행복한 마음을 담아 여전히 재개발이 한창인 달동네 만리동의 시간과 기억을 더듬은 것이다.
옥상뿐이 아니다. 2~5인용 주거 공간인 1동, 1~2층 계단 벽면엔 커다른 밥상 위에 우리의 산하, 주택, 그리고 숟가락 젓가락을 그려넣은 수묵담채화 <진미>, <산해진미>가 걸려있다. 입주작가 조광익의 작품이다. 4층으로 오르는 계단엔 영화 <누나> 메인포스터, 4,5층 계단에도 만평같은 클로즈업한 인물 수채화 <양귀비> <연꽃처럼> <애도> 등의 작품이 잇따른다. 또 다른 입주민 이원식 감독, 조은만 작가의 작품이다. 복도엔 이태영 등 조각가들의 작품이 빼곡하고, 김도영 작가의 집 현관문 옆 쪽창에선 텔레비전을 활용한 비디오 영상작품이 방문객을 맞는다. 이렇듯 막쿱은 계단과 복도, 건물 안팎이 전시공간이다. 건물 곳곳에서 50여점의 작품이 보는 이의 눈을 호강시킨다.
물론, 막쿱은 예술가들 주거 및 생활 공간이라, 일반에 상시 공개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의 입주를 기념해 오는 7일까지 한시적으로 열어보일 뿐이다. 이제 막 입주한 예술가들의 집단주거 실험이 어떻게 발전할지 알 수 없다. 다만, 홍보이사를 맡은 이은서 작가는 “대다수 예술가에게 주거는 절박한 문제”라며 “주거공동체 막쿱을 잘 살려, 다른 예술가들도 혜택을 볼 수 있는 롤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초의 실험이 성공해 예술가들의 집단 주거 공간이 널리 확산될 수 있게 하겠다는 다짐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