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는 여자들이 침실에서 겪는 당혹감을 적나라하게 말한다. 여성의 욕망과 신체를 긍정하는 내용을 담아 전복적이라는 평을 받은 <섹스 앤 더 시티>(사진)도 ‘날씬하고 유순한 신체’를 강조한다. 태원엔터테인먼트 제공
벨 훅스 ‘사랑 3부작’ 완결판
연인이 구원해주지 않지만
사랑 없이는 자유도 없다
사랑은 사치일까?
벨 훅스 지음, 양지하 옮김
현실문화·1만5000원
연인이 구원해주지 않지만
사랑 없이는 자유도 없다
사랑은 사치일까?
벨 훅스 지음, 양지하 옮김
현실문화·1만5000원
“비극적이게도 우리는 사랑에 침묵함으로써 반동세력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여기서 ‘우리’란 페미니스트들, ‘반동세력’은 가부장제를 지지하며 사랑을 힘들게 만드는 이들을 가리킨다. <사랑은 사치일까?>는 미국의 여성학자, 문화비평가, 운동가인 벨 훅스 뉴욕시립대 교수가 <올 어바웃 러브> <구원>에 이어 2002년 펴낸 ‘사랑 3부작’ 완결판이다. 1952년 미국 중남부 흑인 격리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겪은 지은이가 50대에 이르러 털어놓은 사랑 이야기, 인생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보다 권력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선배들의 경험과 실패담을 들려주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저술가이지만 그는 자기 세대 동지들의 ‘패착’을 먼저 찌른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자유를 확장시켰을지 몰라도 사랑에 대한 강박을 바꾸지도 못했고, 사랑을 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사유 방식을 제시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1960~70년대, 페미니즘과 성해방 운동에 투신하는 “대범하고 멋지고 야하고 예쁜 젊은 여성”이 대거 등장했을 때부터 문제의 싹이 보였다. 남자들은 환호작약했지만 여성들은 ‘침실 혁명’을 완성하지 못했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조차 상대 남성이 떠날까 저어하며 구강성교 같은 남성의 요구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설상가상 페미니즘 운동의 결과로 권력을 쥔 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페미니즘에 등을 돌려 남성들의 호감을 사려고 했다. 여전히 대부분의 여성은 사랑보다 섹스를 말해야 주의를 더 끌 수 있는 존재로 붙박여 있다. 여성은 가부장적 세계 안에서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그럴수록 사랑에 집착하며, 매번 실패하면서 자신감을 잃어갔다.
실제 사랑의 가능성을 막은 구조는 가부장제에 있다. 이는 우선 여성을 본능적으로 사랑이 많은 존재로 그려 편견을 강화했으며 ‘사랑’과 ‘돌봄’을 동의어로 만들었다. ‘모성본능’으로 세계 모든 여성을 압박하며 환상을 자극한 것은 물론이다. 돈을 벌려고 나간 여성들은 집 밖에서 일도 하고 집 안에서 사랑도 하는 ‘완벽한’ 가정을 위해 더욱 무리해서 일했다.
젊은 여성들이 열광한 사랑의 자기계발서들도 남녀 성역할을 고착화했다. 존 그레이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성별 고정관념으로 남자들의 정서적 무심함을 정당화했다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난 모르겠어’라며 대화를 차단하고 수시로 ‘동굴’에 처박히려는 남자의 행위조차 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여자의 잘못이라고 환원했기 때문이다. “성별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가 내재한다는 주장은 가부장적 사고의 핵심이었다.” 여성이 변화하면 남자도 헌신하리라는 생각은 성차별적 전제이며, 사랑을 주고받길 원하는 여성이라면 이런 성차별적 전제를 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지은이는 책 전반을 통해 가부장제를 지탱하고 이성간 또는 동성간 ‘연대’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맹렬하게 몰아붙인다. 사적 영역에서 여성들과 공정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 진보 남성들, 가부장적 남자를 본떠 ‘쎈’ 페르소나를 가지면서 “쌍년 카테고리”에 안주하려는 여성들, “모성적 사디즘”으로 자녀를 지배해 결국 폭력적이고 정서적으로 무감각한 아들과 자신의 복제품인 딸을 만드는 가부장적 엄마들이 그들이다. 이렇게 가부장제와 결탁한 남녀들은 “성차별주의적 여성 혐오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직 한명의 여성만 간택하도록 해 ‘소녀’들을 서로 왕따, 배척, 회피하게 하는 논리도 ‘여성 혐오’에 기반한다고 그는 본다. “가부장제의 시선에서 여성은 결핍된 존재이며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오직 경쟁을 통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왓 위민 원트>에서 보듯 ‘쌍년’으로 보일까봐 염려하는 커리어우먼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처럼 ‘네 몸을 사랑하되 날씬함을 유지하도록 굶주리라’고 여성 신체를 혐오하는 문화도 문제다. 남자가 떠날까 두려워 자기실현을 멈추는 여자들이 있지만, 남자를 위해 희생하고도 홀로 남을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러니 곳곳에 암초가 도사린 그 사랑, 가부장제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진정 영원히 자신을 떠나지 않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뜻이다.
이 책의 원제는 ‘연대’(Communion)로서, 동성애와 자매애, 모녀관계, 두 비혼여성이 장기간 동거하는 ‘보스턴 결혼’, 여성과 남성의 연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남성 개개인을 비난하지 않지만 각자 이런 구조를 성찰하며 연대에 뛰어들 것을 권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여성(남성)은 결코 부정적 카테고리를 힘의 상징으로 포용하지 않고, 남을 억압하지 않으며, 연대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와 성차별주의자를 모두 들었다 놨다 불편하게 하는 책이지만 ‘사랑 없이 자유도 없다’는 핵심 주장 앞에 심리적 저항은 힘을 잃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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