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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화동은 근대문화유산의 보고…주민들 자부심 주고파”

등록 2015-06-11 19:25수정 2015-06-11 22:15

최홍규 총괄감독. 사진 김경애 기자
최홍규 총괄감독. 사진 김경애 기자
[짬] ‘이화동 마을박물관 전시회’ 끝낸 최홍규 총괄감독
‘멘토’. 인생에서 뒤따를 만한 사람을 단 한명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운이 좋았죠.” 한우물을 파서 성공하거나 꿈을 이룬 사람들에게 비결을 물었을 때 흔히 나오는 답이다. 하지만 ‘운 좋게 멘토를 만나 성공한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그래서 늘 궁금하다. ‘최가철물점’ 주인으로 먼저 알려진 최홍규(59·사진) 쇳대박물관장도 그런 인물의 하나다.

최근 한달 동안 ‘이화동 마을박물관 2015’ 전시회를 총괄감독한 그는 행사 마지막 주말인 지난 6일에도 빈집 개조 공사를 마무리하느라 작업복 차림으로 이화동 계단 골목을 분주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쇠쟁이 40년간 늘 ‘내가 좋아하느냐’가 선택의 기준이었고, 그런 만큼 책임을 지고자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이화동 프로젝트도 시작은 내가 좋아서 했지만 마을공동체에서 주인정신을 갖고 자율적으로 이끌어갈 때까지 길잡이 노릇을 다하고자 합니다.”

19살 재수 시절 ‘철물점 알바’ 시작
‘권오상 사장님’ 평생 멘토 ‘행운’
쇠쟁이·수집가에서 철물디자이너로

2000년 자물쇠 ‘쇳대박물관’ 개관
이화동과 첫 인연 “아름다운 보물”
마을재생 프로젝트 4년째 ‘주민 공감’

그가 ‘선생님’으로 부르는 멘토는 1976년 19살 때 아르바이트했던 철물점 순평금속의 고 권오상 대표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영세한 동네 철물점이 아니라 유통과 제조도 가능한 ‘철물공장’이었다. 개성 출신의 엘리트였던 권 대표는 탁월한 소통 능력으로 미군 군납을 뚫었고, 그 밑에서 다양한 철물 공법을 배울 수 있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대학 진학’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재수생에게 권 대표는 ‘멋지고 존경스러운 본보기’가 됐다. 군대를 다녀온 뒤 철물점에 본격적으로 취직을 한 그는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열심히 일했다. 마침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강남 개발 열풍이 불면서 신축건물용 갖가지 철 부품과 장식물 주문도 몰려들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심 공부를 다 못했다는 ‘콤플렉스’가 있었죠. 한가지라도 최고가 되자는 생각으로 철물에 몰입을 하기 시작했어요. 혼자서 황학동, 인사동 골목을 뒤지고 다니며 고물이든 골동품이든 무작정 끌리는 대로 수집을 했죠.”

80년대 중반 예술의전당 공중전화 부스와 휴지통 제작에 참여해 호평을 받는 ‘또 한번의 우연한 기회’를 얻은 그는 89년 10여년 경력을 바탕으로 ‘강남금속’을 차려 독립했다. 이어 ‘최가철물점’ 이름으로 주문제작을 넘어 디자인 개념을 넣은 철물 작품을 창작해 전시에 출품하면서 그는 작가의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그사이 우연히 발견한 ‘낡은 자물쇠’의 매력에 꽂힌 그는 5천개에 이르자 2000년 대학로에 쇳대박물관을 지어 개관했다.

“바로 쇳대박물관 뒤편 언덕이 낙산공원과 서울성곽 사이 이화동입니다. 이때만 해도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여서 허름했지만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저한테는 친숙하고 아름답게 보였어요.”

하지만 그땐 이화동 일대가 재개발 예정지역이어서 마을 주민들 대부분은 ‘로또복권’ 같은 보상금과 이주의 기대에 들떠 있었기에 그가 꿈꾼 ‘마을박물관’은 말조차 꺼낼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서울시와 종로구에서 2006년 시작한 ‘낙산공공미술 프로젝트’는 그에게 또 한번의 행운을 안겨줬다. 70여명의 벽화 작가 가운데 한명으로 참여한 그는 직접 빈집을 사서 개조하고 주민으로 이주했다.

“마을을 들여다볼수록 구석구석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널려 있는 보물이었습니다. 무궁무진한 창작의 보고예요.”

특히 이화장 뒤편의 2층짜리 연립주택단지는 애초 일제 때 적산가옥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이화장 입주 때 대대적인 주택개량사업에 따라 건설된 국내 최초의 타운하우스로 근대건축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로 확인됐다. 마을 자체를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로 결심한 그는 2012년 개인 갤러리 ‘수작’을 비롯해 지금까지 무려 6채의 빈집을 직접 개조해 박물관으로 변신시켰다. 평소 교분이 있던 문화예술인들도 하나둘 “꾀어” 20여명의 건축가, 화가, 금속공예가 등이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작업공간인 최가철물점 대장간과 출판디자이너 홍동원(글씨미디어 대표)씨의 책공방 등 6곳은 상설전시한다.

‘이화동 마을재생 10년 프로젝트’ 4년차인 올해 전시회에는 15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지난해 박원순 시장이 직접 참관해 지원을 약속한 덕분에 서울시 소유의 공가 가운데 한 채를 마을주민협의회 공간으로 개조해 활용하게 됐고, 토박이 주민들의 생활소품과 살아온 이야기를 소개하는 마을갤러리도 생겼다.

“50년 넘게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의 인식이 저 같은 외부인들이 들어와 불쑥 얘기한다고 쉬 바뀌진 않아요.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죠. 10년 구상으로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재개발 계획이 무산된 후유증이 가라앉으면서 주민들이 서서히 ‘우리 마을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보이고 있고, 저를 ‘맥가이버’라 부르며 이웃으로 받아줘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마을 공동 게스트하우스와, 음식 조리나 금속공예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공방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고 수익도 얻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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