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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벼랑 끝에서 끌어올린 나의 ‘진짜 첫 영화’예요

등록 2015-07-27 21:50

전재홍 감독.
전재홍 감독.
영화 ‘살인 재능’ 전재홍 감독 인터뷰
이 재능은 위험하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살인 재능>의 주인공 민수는 회사에서 무능하다고 쫓겨난 뒤 이리저리 치이다가 드디어 좋아하며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그게 하필 살인이다. 서울 통의동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전재홍(38) 감독은 일의 의미를 살인이라는 독한 소재로 묻는 이 영화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했다.

‘풍산개’로 주목…제작 좌절 잇따라
영화 포기하려다 “한번만 더” 도전

3500만원으로 혼자 각본·감독·제작
“처음으로 내 경험 담아…첫 영화 같아”

“줄곧 한쪽 뇌로 짜왔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전 영화들은 알지 못하고 듣기만 했던 사회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쌓아 올렸다면 <살인 재능>은 처음으로 내가 경험한 것을 썼기 때문에 내 첫 영화 같기도 하다.” 30살에 김기덕 감독 연출부에서 영화를 시작한 그는 입봉작 <아름답다>(2008년)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프랑스 도빌영화제 등에 초청됐고, 2011년 개봉한 <풍산개>로 주목받는 감독이 됐다. 그러나 자부심과 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영화 제작이 몇번 좌절된 뒤엔 집에 틀어박혀 홈쇼핑 방송만 봤다. 어느날 이제 영화를 못 찍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남은 돈을 다 털어 홈쇼핑에서 추천하는 꿈같은 여행지를 가려고 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전 들른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른 신인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이대로는 못 그만두겠다 싶었다. 한번만 더 해보고 싶었다. 여행자금 3500만원은 <살인 재능> 제작비가 됐다.

주인공 민수는 세상에 대한 복수로 살인에 몰입하는 게 아니다. 대리운전이나 닭공장은 그가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하게 된 일들이지만 살인은 유일하게 능동적으로 택하는 일이다. 쓸데없이 모욕당하기 일쑤였을 땐 눈빛도 불안했던 그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자 당당하고 안정된 분위기다.

전재홍 감독은 모멸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했다고 한다. 생계 때문에 스타들을 쫓아다니며 인터뷰하는 일을 맡았을 땐 자신의 영화에 나온 배우들을 찾아가야 했던 적도 있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면 땀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피하는 기색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런 감독은 “(주인공 민수의) 살인은 본인을 위한 유일한 사치였다. 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 중간중간 피우는 담배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또 얼마나 도덕파멸적인 주장인가. <살인 재능>은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 어떤 사람들에겐 사치이거나 허무맹랑한 거짓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영화다.

전 감독은 정작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성악가였기 때문이다. 서양화가 고 김흥수 화백의 손자인 그는 어릴 때 말 더듬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성악을 시작해 오스트리아 빈시립대에서 성악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풍산개>에 이어 이번 영화에도 자신의 노래를 삽입했다. 민수의 헤드셋을 통해 흘러나오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은 감독이 성악을 하며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다.

음악은 물론 각본, 감독, 제작까지 혼자 하면서 적은 예산으로 <살인 재능>을 완성한 덕분에 전 감독은 영화를 계속 만들 힘을 얻었다고 했다. “예전엔 더 큰 영화를 만드는 꿈을 좇았다.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올라가고만 싶었다. 이젠 이 정도의 돈으로 영화를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살인 재능>은 그런 뜻에서 진짜 입봉작인 셈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인디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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