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문학 등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맡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정치적 검열을 규탄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문화연대, 한국작가회의, 서울연극협회, 언론개혁시민연대, 한국문화정책연구소, 대학로X포럼 등은 5일 오후 6시 서울 대학로 SH아트홀에서 ‘검열과 파행’이라는 제목으로 예술인 연대포럼을 열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창작산실 우수작품 제작 지원,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등 사업 결과를 발표하면서 심사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특정인을 선정 지원에서 제외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지원 대상을 멋대로 축소하는 등의 전횡을 저지른(
▷ 관련기사 : [단독] 100점 맞고 1등 해도…정부 입맛에 안 맞으면 ‘탈락’) 데 대한 대응책 마련 차원이었다.
포럼에서 문학평론가 서영인(한국작가회의 대변인)은 이번 사태가 지난해 논란이 된, 신은미씨의 책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우수문학도서 선정 취소 결정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았다. 공공장소에서 테러를 당한 지은이 신씨를 강제출국시킨 일과 규정에도 없는 ‘사후 취소’ 결정을 내린 일은 “국가가 문화예술을 검열하고 규제하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조장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예고’했다는 것이다.
서영인 평론가는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은 통상 10월에 지원을 받고 11월, 12월에 심사를 거쳐 1월이나 2월에 결과를 발표했는데 올해의 경우 문학과 연극 분야에서는 3월31일에 결과를 발표했고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은 7월에야 그것도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무시하고 갑자기 지원 대상을 줄여서 발표했다”며 “턱없이 늦은 심의 결과에 대해 어떤 해명도 사과도 들을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우수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의 경우에도 사업 공고에는 지원 대상 규모가 40종 안팎이라 되어 있었으나 최종 지원 대상 종수는 14종으로 갑자기 축소되었다”며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위해 편성된 예산 중 축소된 30편의 작품 지원에 해당하는 예산과 우수문예지 지원사업 예산 중 축소분 약 30종의 지원 예산 등 애초 예술인들에게 지원하기로 했다가 취소한 예산이 줄잡아 10억원에 이르는데 그 쓰임새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염신규 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은 “박근혜 정부는 문화재정 2% 확충 공약을 내놓았으나 문화융성정책과 관련한 국책 사업에 문예진흥기금을 가져다 쓰면서 오히려 문예진흥기금 고갈 속도가 전보다 더 빨라졌다”며 “문예진흥기금을 통한 예술 지원은 안정적인 기금 운용 구조를 만드는 한편 예술의 다양성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사업의 폭을 확장해야 하는 두가지 요구에 맞닥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인자 전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은 “검열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정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며 “1960년대 이후 군사 정권 아래에서 정립된 ‘불온’의 개념이 ‘반공’과 손을 잡고 유구한 ‘전통’을 형성했다”고 비판했다. 기조발제를 한 고연옥 극작가도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며 논란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며 “정부가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검열하고 금지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와 헌법에 위배되는 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예술인들은 성명서를 채택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 현장 예술가들과 대화 자리 마련을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한국문화예술위원장, 10인의 예술위원은 이번 검열과 파행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자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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