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문화재단과 교보문고가 함께 복간한 훈민정음 해례본. 사진 교보문고 제공
15세기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뒤 자음과 모음의 원리, 용례 등을 풀이해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이 한글날을 맞아 원본 그대로 복간돼 나왔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하 간송재단)과 교보문고는 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훈민정음> 해례본을 원본대로 재현해 복간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연구용 영인본(단순 복사본)은 나온 적이 있지만 원본에 쓰인 한지의 촉감을 살리면서 오염, 손상 부분까지 살려 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완성한 뒤 1446년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한글의 원리와 사용방법을 한문으로 설명한 해설서다.
간송재단이 소장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식민지 시기인 1940년 수장가 간송 전형필이 경북 안동에서 거액을 주고 사들인 것이다. 해례본은 2008년 경북 상주의 한 소장가가 공개한 ‘상주본’이 한권 더 있으나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원본 상태와 전문을 확인할 수 있는 판본은 간송재단이 소장한 해례본이 유일하다.
복간본은 해례본과 한글 해설서(영문포함) 2권으로 구성했다. 사진 교보문고 제공
이번 복간은 1년이 넘는 작업 끝에 마무리되었다. 고서의 촉감을 살려 한지에 전문을 인쇄하며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제작했고, 제본을 할 때는 고서처럼 책등을 끈으로 묶었다. 교보문고 출판의 허균 편집장은 “변색이나 퇴색된 상황을 반영해 한지에 그대로 재현하는 ‘현상복제’ 방식으로 제작했으며, 책 뒷장에 낙서가 적힌 부분까지 세심하게 지우는 보정작업을 거쳤다”고 밝혔다. 책을 묶을 때도 원본과 똑같이 4개의 구멍을 뚫어 고정시키는 ‘4침 안정법’을 사용했다.
간송재단과 교보 쪽은 복간된 해례본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쉽게 보고 읽을 수 있도록 해설서도 함께 엮었다.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한글의 탄생과 역사>의 집필자인 김슬옹 미국 워싱턴글로벌대 교수는 “세종대왕의 고민, 훈민정음에 대한 사대부들의 생각을 담았고 특히, 간행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해례본을 일제암흑기에 어떻게 간송 전형필 선생이 발견했는지 그 과정을 소상히 밝혔다”고 말했다. 해설서에는 또한 원본의 한문을 지금 우리말로 풀이한 국역본과 영어 번역본도 실려있다. 감수는 원로 국어학자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간송의 손자인 전인건 재단 사무국장은 “할아버지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에 맞서 우리 문화재를 지키고 연구하며 민족의 문화적 자긍심을 잃지않으려 했고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훈민정음 해례본에 얽힌 이야기”라며 “오랜 난관 끝에 이 책을 소장했지만, 일제 치하였으므로 소장 자체가 알려지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복간된 해례본은 연구자들을 위한 영인본이 아니라 대중서인 만큼, 국민 모두가 손에 들고 넘겨가며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조선의 찬란한 문화수준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초판 3000부를 제작한 복간본은 두권이 한 세트로, 가격은 25만원이다. 교보문고쪽은 “제작비용을 정확하게 밝히긴 어렵지만 판매 가격의 50%이상이 들어갔다”며 “앞으로 일반인들이 더욱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보급판 제작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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