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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화랑시장 파국 알린 신호탄 “이제라도 다시 가리자” 목소리

등록 2015-11-06 19:36수정 2015-11-07 10:52

[토요판] 커버스토리 / 미인도 위작 논란
1991년 4월4일 ‘국립현대미술관 가짜 모른채 소장’이란 제목으로 나온 <조선일보> 문화면 기사는 천경자의 말년을 숱한 논란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몰고 간다. 국립미술관이 ‘움직이는 미술관’전을 추진하면서 <미인도> 소장품의 복제품이 유통되는 것을 알게 된 천 화백이 미술관에 있는 문제의 작품 실물을 보고 가짜임을 확인했다는 기사 내용이 보도되자 미술판은 발칵 뒤집혔다.

당시 천 화백은 머리카락의 붓질 형태나 윤곽, 어깨 위에 그려진 나비 형상, 머리 위의 흰 꽃 등이 자기의 필력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미술관 쪽은 10·26 사건의 주모자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집에서 압수한 소장품으로 진품 감정을 받아 들여왔다고 밝혔고,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도 세 차례나 감정한 끝에 진작 판정을 내렸다. 이 그림은 1990년 1월 출간된 <한국근대회화선집> 11권 ‘장우성/천경자’편에 흑백도판으로 실려 있고, 작가의 전용 표구사였던 동산방 화랑의 상호명이 그림 뒤쪽에 쓰여 있어 작가가 사전에 보고 진작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논리였다. 작가가 증거로 지적한 부실한 표현기법도 과거 작가의 진작 속에 모두 나타난다는 근거도 제시됐다. 작가의 눈이 언제나 정확하며 최고의 잣대가 될 수 있느냐를 놓고 언론의 대서특필 속에 격한 공방이 벌어졌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과학감정과 화랑협회의 안목감정을 내세운 미술관 쪽이 진품 결론을 굳히자 천씨는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있느냐며 절필 선언을 하고 화랑과의 인연을 끊었다.

최근 천 화백 타계를 계기로 잠복해 있던 미인도 위작 논란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유족이 기자회견과 추모식을 통해 고인의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미술관 쪽의 판정 재고를 촉구한 데 이어 99년 구속된 뒤 천 화백의 가짜 그림을 그렸다는 증언을 했던 위조범 권춘식씨, 당시 수사 검사 최순용 변호사 등이 위작 주장을 새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권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1978년 한 화랑 주인의 위조 부탁을 받고 <장미와 여인> 등천 화백의 진작을 참고해 미인도를 그렸다고 주장했다. 천 화백이 쓰는 비싼 석채 대신 자신은 분채를 썼으며, 눈동자도 금분이 아닌 노란 분채로 그렸으며, 머리카락이나 화관 등도 조악하게 그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지낸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시사저널> 기고 등에서 이를 반박하면서 진작이 맞다는 견해를 폈다. 그는 “99년에는 84년 위조했다고 했던 권씨가 80년에 미술관 수장고에 들어온 문제의 미인도와 시기가 맞지 않으니까 말을 번복해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20여년 전 화랑협회와 미술관이 댔던 근거들을 대부분 들면서 진작설을 옹호했다. 화랑가 일각에서는 천 화백이 실제로는 지인들에게 진작임을 알고 있었다고 실토했지만, 당시로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는 등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풍문들까지 나돌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인도 진위작 논란은 양쪽의 입장을 뒤흔들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채 91년 논쟁을 거의 그대로 재연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99년 당시 위조범의 번복된 증언이 언론 보도를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양상이지만, 확실한 설득력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진품이란 견해를 지켜온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세간의 눈길도 의뭉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미술관은 공식 견해와 달리 실제 보이는 행보에서 진품을 확신한다는 심증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소장품을 전혀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유족의 요청이라며 데이터베이스에 공개되어야 할 도판 목록에서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공식 결론이 났다고 해도, 모든 전문가와 당사자가 모여서 24년 전의 진위작 감정 공방 자체에 대해 평가하는 학술세미나나 품평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작가와 미술관, 화랑가에 모두 상처를 입힌 미인도 논란은 한국 미술시장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됐다. 화랑시장의 부실한 감정시스템이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으며, 이런 문제가 두고두고 시장과 작가의 갈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는 2000년대 이중섭, 박수근 위작 논란에서 재현됐다. 미인도 위작 시비는 국내 화랑시장의 파국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셈이다. 노형석 기자

▶관련기사: 천경자 죽음은 왜 감춰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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