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전시장에서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과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이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사진 앞에 나란히 서 있다. 노형석 기자
간송 컬렉션과 백남준이 시공을 초월해 만난다. 내년부터 혜원 신윤복의 걸작 미인도와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명작들이 세계적인 거장 백남준(1934~2006)의 미디어아트와 함께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미술사의 명가인 간송의 명품컬렉션과 현대미술거장 백남준의 미디어아트컬렉션의 관계자들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사장 전성우)과 백남준아트센터(센터장 서진석)는 최근 공동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공동기획전시와 작품의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12일 밝혔다.
공동양해각서는 전인건 간송문화재단 사무국장과 서진석 센터장 사이에 체결됐으며 두 관계자는 내년 7~8월께부터 간송, 백남준 컬렉션의 공동기획전시를 개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공동기획전은 간송이 전시중인 디디피에서 일단 개최하는 것이 유력하다. 조선시대 그림 거장들의 작품과 백남준의 ‘티브이 촛불’‘티브이 붓다’ 등의 대표적인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미술사, 사상적인 맥락을 깔고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이는 학술과 대중 전시의 결합을 모토로 내세우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두 기관 관계자들은 올초부터 서 관장과 전 국장을 중심으로 계속 접촉하면서 백남준과 간송 컬렉션의 공동전시와 공동 학술연구에 대해 가능성을 타진해왔으며, 최근 장기적인 공동사업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최고 컬렉션 사이에 빅딜이 성사된 셈이다. 미술계는 두 컬렉션이 국내 미술계에서 최고의 권위와 위상을 지닌만큼 두 컬렉션 기관의 공동전시와 관련 사업들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백남준 센터 관계자는 “내년 백남준의 10주기를 맞아 차별화된 기획이 필요했고, 좀더 대중적인 관객 동원도 요구되는 상황에서 현대미술과의 협업 등 새 활로를 찾는 간송문화재단과 서로 지향점이 맞아 공동전시 등의 협업에 이르게 됐다”며 “서로 시대와 양식이 크게 다르지만, 백남준의 예술세계가 불교, 노장사상 등 우리 전통, 동양사고를 기반에 깔고 있어 간송 고미술 명품의 전통사상적 배경과도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준 센터는 2008년 창립된 이래 매년 정기 기획전과 백남준 미술상 수상전, 특별전 등을 벌여왔으나 변두리인 경기도 용인에 자리잡고 있어 관객 확보에 한계가 있고, 경기도의 지원도 열악해 근본적인 운영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간송문화재단도 지난해부터 40여년간의 성북동 간송미술관 시대를 접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소장품 특별전인 간송문화전을 시작했으나, 명품에 걸맞지않은 이질적인 디자인전시공간의 문제와 소장품 돌리기식의 진부한 기획 때문에 새로운 전시 청사진을 짜야한다는 지적이 거듭되어 왔다. 두 기관의 협업이 성사된 건 이런 상황에서 단독 전시 기획의 한계를 벗어나 관객 동원을 위한 흥행성을 확보하려는 현실적 과제와 변화하는 시대에 좀더 유연한 모습으로 변신하려는 의지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간송컬렉션은 국내 미술사학계에 조선시대 성리학 정신을 대변하는 간송학파를 형성할 만큼 오랫동안 독보적인 권위와 한국학 보고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백남준 미디어아트와의 협업이 이런 간송의 정체성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며 진행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