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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50년 단위로 계속 보수…국내와 달리 단청 공정도 훨씬 세분화

등록 2015-11-23 20:45

20일 도쇼쿠 경내 창고전 앞에서 닛코사사문화재보존회의 채색 전문 장인인 사와다 료지가 국내 전문가, 장인들에게 건물의 단청과 장식 수리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일 도쇼쿠 경내 창고전 앞에서 닛코사사문화재보존회의 채색 전문 장인인 사와다 료지가 국내 전문가, 장인들에게 건물의 단청과 장식 수리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본 ‘도쇼구’ 단청복원 현장 가보니
입이 쩍 벌어졌다. 삼나무 거목들에 둘러싸인 옛 일본 권력자의 무덤집 꼭대기 풍경은 이 세상 같지 않았다. 코앞에 튀어나온 처마 기와 밑 용과 사자의 세 겹 머리상들과 빛기운 가득한 금박 단청 장식들은 350여년 묵은 건물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했다. 일본 장인들이 수백년 수시로 단청, 옻칠을 덧입히며 관리한 결과다.

350여년 역사의 세계문화유산
현재 장인 10여명 수리복원중
이면의 배색까지 철저하게 작업
국내 단청 옻칠 전문가들 감탄
“국내 업계, 안보이면 건성 작업”

일본 도쿄 동북쪽 산간 소도시 닛코의 세계문화유산 도쇼구(동조궁)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빛을 뿜는 유적이었다. 지난 20일 오전 이곳을 찾은 한국의 단청 옻칠 전문가들은 예술적 광채 못지않게 현지 장인들의 치밀한 채색 공정과 정성에 감탄했다. 도쇼구는 17~19세기 일본 에도시대 최고 권력층인 도쿠가와 막부의 시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골을 봉안한 영묘이자 신사다. 이에야스 사후인 1636년 손자 이에미쓰가 당대 최고 예술가들을 동원해 지은 도쇼구는 수천점의 인물, 동물, 식물 부조와 그림들을 화려한 채색으로 경내 50여채 전각 곳곳에 수놓은 근세 일본 미술사의 백미. 조선통신사의 마지막 기착지인 이 명소는 2003년 이래 3차 수리계획에 따라 들머리의 요메이몬(양명문)을 비롯해 본전, 배전의 수리복원 공사가 수년째 진행중이다. 도쇼구와 바로 옆 거찰 린노지(윤왕사), 후타라산 신사를 60여년째 관리해온 닛코사사문화재보존회의 전문 장인 10여명이 300년 전 전통 기법을 지키면서 단청과 장식 시공 작업에 땀을 흘리고 있다. 국내 문화재보존학계 권위자인 이오희 전 한국전통문화대학 교수와 서울시무형문화재 ‘단청장’인 양용호씨, 손연칠(동국대), 곽동해(한서대) 교수 등이 꾸린 답사단이 이곳을 찾은 건 숭례문 부실 복원 파문 뒤에도 여전히 고민거리로 남은 전통 단청 안료의 복원과 견고한 채색법 등에 대해 일본 장인들의 경험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 도쇼구 요메이몬과 본전, 배전, 지붕 쪽에 올라가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복원 현장의 세부를 샅샅이 살펴볼 수 있었다.

보존회가 자체 고안해 써온 일본 단청의 단계별 색상표를 직원이 설명하고 있다.
보존회가 자체 고안해 써온 일본 단청의 단계별 색상표를 직원이 설명하고 있다.
단청 장인 사와다 료지가 안내한 요메이몬, 본전 지붕 밑 조각들은 금빛 기운이 가득했다. 도리와 공포, 기둥 사이로 장식된 용, 사자, 코끼리상, 단청무늬들은 대부분 몇차례씩 두껍게 발라 은은한 빛을 내는 옻칠과 금박이 바탕이었다. 안료를 겹으로 쌓아 부조 같은 효과를 내는 치상채색(置上彩色) 기법을 써서 입체감도 도드라졌다. 보존회 기술자들은 가설된 등불 아래 서까래, 들보의 옛 단청색깔을 벗기고 새 색깔을 입히느라 몰두하고 있었다. 산간 숲 특유의 질척한 습기가 느껴졌지만, 사와다는 “갖은 공법상의 노력으로 습기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삼국시대 한반도의 단청기법을 물려받은 일본은 그 뒤 1000여년 동안 옻칠과 금박에 바탕을 둔 독자적인 단청술을 만들어왔다. 이런 단청기술이 가장 만개한 곳이 바로 17~18세기 도쇼구이며, 이를 40~50년 단위의 색채보수 공사로 잇고 있는 곳이 21세기 도쇼구다. 치상채색 말고도 바탕에 옻칠한 뒤 무늬와 색을 입히는 평채색, 옻칠 바탕에 색을 입히는 생채색 등 10여가지의 채색기법이 있다고 한다. 보존회 건물의 단청공방에서 옻칠장인 사토 노리타케가 보여준 공정 색상표도 인상적이었다. 옻칠, 색을 입히는 채화, 색을 돋움하는 기법 등 영역별로 30단계 넘는 단청 공정의 색깔층 단면들이 길이 2m를 넘는 나무판 5개에 일목요연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이와 달리 국내는 장인들의 일반적인 단청제작공정이 10단계 미만에 불과해 정교하게 세분화한 공정 견본을 만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양용호 단청장은 “이면의 배색까지 철저하게 신경쓰며 작업 전엔 몸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는 일본 장인의 말에, 안 보이는 부분은 건성건성 작업하는 국내 업계가 부끄러워졌다”는 소감을 털어놓았다.

답사 말미에 이번 복원 공사를 끝으로 퇴임한다는 장인 사와다에게 공사의 가장 큰 원칙을 물었다. 그는 간결하게 답했다. “옛적 도쇼구를 지을 때 색깔을 입힌 장인이 있었을 겁니다. 과거의 그가 성심을 바쳐 만든 작업에 우리가 오류와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닛코/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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