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조원 1관의 바닥에 투사된 이케다 료지의 바코드 영상물 ‘테스트 패턴’. 드넓은 전시공간을 단독 작품으로 갈무리해 시간, 비용을 아끼고 1관의 첨단 전시설비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고른 작품이라고 한다. 사진 노형석 기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핵심전시 살펴보니
“이 어마어마한 공간이 오직 전시와 작업을 위해 주어졌다는 건 믿기 힘들다. 정말 잘 활용해야 한다.”
다니엘 올리비에 주한 프랑스문화원장을 비롯한 외국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이구동성이었다. 11년간의 진통 끝에 지난 9월 부분개관에 이어 25일 공식개관한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놓고 외부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된 건 거대 인프라였다. 1만평에 육박하는 전시 아카이브 공간과 다양한 각도에서 공연, 전시공간을 투사할 수 있는 조명과 이동식 무대, 전시가 가능한 특수 수장고 시설들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연면적 4만8000여평으로 아시아 최대일 뿐 아니라 영국 바비컨센터나 프랑스 퐁피두센터 같은 서구 예술센터를 능가하는 규모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들 했다.
공식 개관한 25일 저녁 전당 뒤뜰 리셉션장에서도 외국 미술인들의 덕담이 넘쳐났다. 아시아 문화 중심을 표방한 거대 공간이 지방도시에 생겼다는 놀라움과 그 파격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등이었다. 이 거대 공간에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국내외 작가들을 불러모아 꾸려낸 전시·공연 콘텐츠의 질에 대한 평가들은 인프라에 묻혀 그다지 언급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문화창조원 전시들이 ‘핵심’
1관 바닥 ‘디지털 물결’ 압권
주로 아시아 문화적 성격 성찰
광주 비엔날레 확장판 같기도
전시형식·정체성 등 비슷해
협업땐 시너지 효과 예측 많아 사실 문화판에서 개관을 앞두고 관심이 쏠린 대목은 전당의 5개 원 가운데 핵심 콘텐츠 생산기지인 문화창조원의 전시들이다. 2800여평의 6개 복합전시관으로 이뤄진 창조원은 창·제작 센터 기능까지 갖고 있는 유례없는 실험적 조직이다. 이곳의 첫 전시는 전당의 정체성과 방향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9월엔 준비 부족으로 4관 ‘신화와 근대, 비껴서다’전만 열었던 창조원은 이번에 대여공간 6관만 비워둔 채 1~5관에 모두 콘텐츠를 채웠다. 올 1월 이영철 전 감독을 돌연 해임해 세계 문명사를 조명한다는 기존 전시구상을 뒤엎은 이래 7~8개월 만에 아시아성과 미디어아트를 위주로 차린 전시다. 그 시작은 복합 1관 전시장 바닥을 흐르는 디지털의 물결이었다. 길이 50여m, 넓이 100평을 훨씬 넘는 전시장 바닥에 디지털 기호로 작동하는 바코드 영상의 강물이 현란한 전자음 속에 흘러간다. 끊겼다가 선을 이루며 흐르는 디지털 강물 위로 철퍼덕 주저앉은 사람들,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 엎드린 사람들이 보인다. 복합 1관 바닥을 홀로 채운 일본 작가 이케다 료지의 거대한 바코드 영상물 ‘테스트 패턴’은 전당이 지닌 거대한 인프라를 과시하는 상징적 작품으로 인상에 남았다.
2, 3, 4관 전시는 아시아의 문화적 성격에 대한 여러 측면의 시각적 성찰이지만, 전임 이영철 감독의 잔여 구상 일부와 현재 감독진인 정준모·목진요 기획자의 구상들이 각기 따로따로 간다는 인상을 준다. 재미 건축가 박경씨가 맡은 복합 3관의 건축전시 ‘새로운 유라시아 프로젝트’는 난해하지만 만듦새가 치밀한 수작이다. 360도 돌아가는 원형 파빌리온 안에 유라시아의 도시들 풍경을 오버랩 시킨 360도 파노라마 영상이 돌아간다. 파빌리온 벽을 뚫고 불룩불룩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유라시아 개별 도시들의 땅 모양들이 유럽, 아시아는 인위적인 지정학적 구분일 뿐 실은 한 세상임을 은유한다.
지하 수장고를 개조한 1관 옆 ‘볼트 전시장’에는 원색의 빛들과 도형들이 명멸하는 국내외 소장 미디어아트 작가들의 작품들로 채워졌고, 양지윤 책임 큐레이터가 짠 2관은 ‘플라스틱 신화’라는 제목 아래 30개의 셀(프로젝트 방) 안에 작가 30여개팀이 만든 아시아 현대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각양각색 미디어 설치물들이 나왔다. 독일 기획자 안젤름 프랑케가 만든 4관의 전시 ‘신화와 근대, 비껴서다’는 베트남의 물길과 땅에서 역사의 갈등과 화해를 읽은 작가 트란티 민하의 영상 작업과 지구촌의 폭력과 악행의 역사를 우주, 신과 인간의 정신적 관계와 연기론의 관점에서 파헤쳐 들어간 대만 작가 인주 첸의 성찰적 도상 작업이 눈길을 끌었다.
전체적으로 창조원 전시는 아시아 담론을 강조해온 광주 비엔날레의 확장판에 다름 아니다. 다기한 미디어아트의 기법과 메시지를 선보여온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가 출장전시를 온 듯한 느낌도 준다. 창조원만의 콘텐츠 차별성을 구현했느냐는 질문은 또다른 광주의 문화 자산인 비엔날레와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로 향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 문화 발신기지를 표방하는 비엔날레와 문화전당 콘텐츠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미 문화판에 나오기 시작했다. 전시 형식은 물론 추구하는 정체성과 콘텐츠 등이 비슷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란 예측이 근거다. 게다가 전당에는 창조원 콘텐츠를 충실히 뒷받침하는 라키뷰(전시+아카이브) 얼개의 정보원도 틀을 갖췄다. 건축가 조민석씨는 “전당 쪽이 광대한 전시공간을 지속적으로 채울 콘텐츠 생산력을 자체적으로 계속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향점과 정체성이 비슷한 비엔날레와 전당이 어떻게든 협업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광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1관 바닥 ‘디지털 물결’ 압권
주로 아시아 문화적 성격 성찰
광주 비엔날레 확장판 같기도
전시형식·정체성 등 비슷해
협업땐 시너지 효과 예측 많아 사실 문화판에서 개관을 앞두고 관심이 쏠린 대목은 전당의 5개 원 가운데 핵심 콘텐츠 생산기지인 문화창조원의 전시들이다. 2800여평의 6개 복합전시관으로 이뤄진 창조원은 창·제작 센터 기능까지 갖고 있는 유례없는 실험적 조직이다. 이곳의 첫 전시는 전당의 정체성과 방향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9월엔 준비 부족으로 4관 ‘신화와 근대, 비껴서다’전만 열었던 창조원은 이번에 대여공간 6관만 비워둔 채 1~5관에 모두 콘텐츠를 채웠다. 올 1월 이영철 전 감독을 돌연 해임해 세계 문명사를 조명한다는 기존 전시구상을 뒤엎은 이래 7~8개월 만에 아시아성과 미디어아트를 위주로 차린 전시다. 그 시작은 복합 1관 전시장 바닥을 흐르는 디지털의 물결이었다. 길이 50여m, 넓이 100평을 훨씬 넘는 전시장 바닥에 디지털 기호로 작동하는 바코드 영상의 강물이 현란한 전자음 속에 흘러간다. 끊겼다가 선을 이루며 흐르는 디지털 강물 위로 철퍼덕 주저앉은 사람들,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 엎드린 사람들이 보인다. 복합 1관 바닥을 홀로 채운 일본 작가 이케다 료지의 거대한 바코드 영상물 ‘테스트 패턴’은 전당이 지닌 거대한 인프라를 과시하는 상징적 작품으로 인상에 남았다.
창조원 3관에 있는 ‘새로운 유라시아’ 프로젝트의 원형 파빌리온. 박경 건축가의 3개년 프로젝트 첫 전시를 상징하는 설치물이다. 사진 노형석 기자
4관 ‘신화와 근대…’전에 나온 대만작가 인주 첸의 미디어 설치물 ‘와해도’. 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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