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망명객 홍세화, 독일 유학생 진중권,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가 1990년대에 등장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주의’가 지식인과 운동권의 머릿속을 파고들기도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홍세화, 강준만, 진중권, 박노자, 안토니오 그람시, 질 들뢰즈, 루이 알튀세르, 위르겐 하버마스. <한겨레> 자료사진
[광복 70년, 책읽기 70년] (15) 세기말 서점가
서울대 앞 인문사회과학서점 ‘전야’. 경영 악화로 1994년 폐업했다가 동문들의 모금으로 이듬해 다시 문을 열었지만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겨레> 자료사진
앎과 독서문화 전체를 뒤흔들어
때마침 불어온 경제위기
독자는 줄고 나눌 파이도 줄고
대학가 사회과학서점 사멸 돌아온 망명객 홍세화와 함께
톨레랑스와 서유럽 담론 물밀듯
박노자 진중권 강준만 줄이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엔
신자유주의 괴물이 어른어른 ■ 진보의 새로운 표상과 ‘톨레랑스’ 무역회사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그렇게 망명자가 된 이후 여행가이드와 택시운전사 등의 직업을 전전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망명생활을 했다. 그런 그의 사연과 생각이 국내에 소개됐고, 원래 문학에 소질 있던 그의 글은 순식간에 독자들을 끌었다. 그렇게 홍세화는 1995년에 나온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통해 조국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곧 30만부급 베스트셀러가 되고 홍세화는 활발한 문필활동을 펴 새로운 진보 언론인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가져다준 것은 남민전의 사상은 아니었다. 책은 파리에서의 경험과 회상 등으로 이뤄진 에세이집인데, 서문에서부터 좀 ‘달달한’ 문체에 여행자를 위한 팁과 파리의 명소 사진 등도 싣고 있어 마치 파리 여행안내서 같은 느낌도 준다. 아마 편집자는 분명 ‘파리와 망명객’에 뭔가 ‘고독’과 ‘낭만’ 같은 것을 불어넣고 싶었던 것이라 보인다. <빠리의 택시운전사>같은 책이 그렇게 많이 읽힐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시대의 맥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각각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상징적인 제목의 책으로 등장한 독일 유학생 진중권이나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가 1990년대 말에 지식계의 새로운 대표처럼 등장한 맥락과도 다르지 않은 것이라 보인다. 첫째, 그것은 90년대 중후반의 해외여행과 유학(어학연수)의 대중화에 따른 ‘이국 취향’의 확산과 유관한 것이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이국 취향이며, 90년대식 한국의 ‘자유-민주화’와 복합적으로 연관된다. 홍세화의 글에서 프랑스 사회는 근대성·합리성, 그리고 진보성의 어떤 모델로 나타났다. 즉 그것은 ‘진보’에 관한 참조점이었다. 이는 말끝마다 ‘선진국에서는’ 운운한 지배 담론과 유사한 면도 갖고 있었는데, 선진국 담론은 한편 한국 사회의 ‘후진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내재하지만, 다른 한편 서구중심주의나 콤플렉스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홍세화의 프랑스는 평등과 사회주의, 그리고 ‘톨레랑스’의 나라였다. ‘톨레랑스’는 곧 중고생들도 다 아는 유행어처럼 될 정도였는데, “다른 남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또는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목숨을 다해 지키겠다” 같은 명제는 여전히 반공주의·지역주의 그리고 극우적 가부장제가 사회를 지배하던 한국 사회에서의 현실을 환기하고 상대할 수 있어 의의를 가진 것이었다. 물론 이는 다원주의나 자유주의의 표어로 얼마든지 인용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둘째, 이런 독서의 사회적 맥락을 진보 담론의 우경화 또는 연성화와 연관시킬 수도 있다. 1991~92년의 대몰락(또는 대전환) 이후 도래한, 그리고 요청된 새로운 ‘문화적 거점’이나 ‘심성’은 확실히 이전과 다른 것이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와 후기구조주의 및 ‘포스트주의’가 지식인과 운동권의 혼란한 머릿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소련과 동독산 공식 이데올로기에 의해 ‘수정주의’니 ‘개량주의’ 같은 욕을 먹던 사상·이론들이 새삼 재발견된 것이다. 이제 멋진 자동차와 명품을 생산하는 서유럽 선진국의 사상이 유입되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와 하버마스는 독일산, 푸코·라캉·알튀세르·들뢰즈 들은 프랑스산, 그람시·네그리 등은 이탈리아산이었으며 페리 앤더슨·레이먼드 윌리엄스·버밍엄학파는 영국산이었다. 대신 제3세계산, 즉 중국산 마오이즘, 남미를 기반으로 한 종속이론은 세가 급격히 약해졌다. 다만 한반도의 특수성 때문에 북한산 김일성주의는 공안 세력과 일부 민족주의자에게는 여전히 인기가 있었다. ■ 지성의 재편 요컨대 이러한 진보 담론은, 민주화를 이뤄내고 두 차례 연속 ‘민주정부’가 집권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두터움을 가졌음에도 언제든(지금 보는 것처럼) 극우세력의 힘이 막강하고 사회가 ‘후퇴’하여 파시즘화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시민적’ 입각점으로 수용되었다. 이제 청년·학생들은 80년대식 사회과학 서적과 마르크스-레닌-김일성의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홍세화·진중권·박노자 그리고 강준만의 책을 읽으면서 ‘진보’의 논리와 입장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90년대 이후 인문·사회과학적 교양과 책 읽기는 여성주의와 생태주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신사회운동’과 대중문화와 일상에서의 ‘문화정치’에 주목하는 문화주의, 그리고 언론개혁운동과 연관된 맥락 아래서 재구성되었다. ■ 신자유주의, 그리고 세기말 그리고 우리 모두는 ‘신자유주의’라는 새 괴물을 상대해야 했다. 처음엔 괴물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새로운 계단을 만들 정도의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는 세계 전체를 집어삼킬 새로운 경제-삶의 논리로서 모든 시공간을 영토화하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기에 편승하느냐, 아니면 못 하는가에 ‘기업’뿐 아니라 ‘나’들의 흥망이 걸려 있는 듯했다. 전혀 다른 전략과 적응이 필요하다는 실제적 상황과 과장된 고함이 뒤엉켰다. 150만부나 팔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그런 주·객관적 정황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경제·경영서, 자기계발서, 재테크 책은 이전과는 완전히 그 위상과 위력이 달라졌다. 더구나 출판계는 마침 들이닥친 디지털혁명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파도를 맞아야 했다. 독자는 점점 줄고 나눌 파이는 작아지기 시작했다. 책 읽기는 세기말적 상황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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