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무늬
전 경주박물관장 김성구 “귀신”
“고려초~조선후기 즐겨쓴 용어
일본학자 먼저 썼다고 폐기해서야… ”
선배 강우방 “용” 주장 전면반박
“고려초~조선후기 즐겨쓴 용어
일본학자 먼저 썼다고 폐기해서야… ”
선배 강우방 “용” 주장 전면반박
이 땅의 옛 기왓장에 유난히 많이 새겨진 이 괴물, 괴수의 정체는 무엇일까? 용인가? 귀신인가? 도깨비인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조선시대까지 선조들이 다채롭고 독특한 모양새로 기와에 새겼던 괴수, 괴물의 실체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참이다. 학계에서는 이 괴수 문양 기와들을 무서운 귀신처럼 생겼다고 하여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이 골라 쓴 귀면와라는 말로 오랫동안 불러왔다. 그러나 2000년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 경북 경주 안압지 출토 녹유 괴수기와의 용모를 분석해 용의 정면상을 펼친 문양이라는 학설을 내면서 박물관 등에서 용면와란 명칭을 섞어 쓰기 시작한 게 현재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강 전 관장의 ‘용면’ 설이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무리한 주장이란 반론이 후임 관장이자 기와 연구자인 김성구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에 의해 제기됐다. 문화재 메카 경주의 국립박물관장 선·후임자 사이에 옛 기와 이름을 놓고 입씨름판이 펼쳐지게 된 셈이다.
김 전 관장은 이달 부산박물관이 펴낸 도록 <부산의 기와>에 ‘한국기와의 연구와 주요과제’란 논고를 실어 “귀면은 귀면이고 용은 용일 뿐”이라며 기존 괴수무늬 기와는 모두 귀면이며 용면은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는 우선, 강우방 전 관장이 귀면은 일본 학자들 주장을 따른 용어로 우리말이 아니라고 한 데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고려사절요>나 조선시대 문헌설화집 <해동잡록>, 판소리 ‘수궁가’ 소설 <박씨전> 등에 무수히 ‘귀면’이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고려 초부터 조선 후기까지 즐겨 썼던 용어라는 것을 밝혔다. 일본 학자가 먼저 사용했다고 고려 초부터 비롯된 우리말인 귀면을 폐기하고 용면으로 대체하려는 주장은 크게 잘못됐다는 얘기다.
또 기와 문양에서도 귀신과 용은 반드시 따로 묘사됐다는 게 그의 견해다. 귀신 문양의 뿌리로 간주되는 중국 전국시대 기와의 도철문을 보면, 귀신격인 도철은 정면을 보는 얼굴로, 쌍룡은 긴 몸체가 측면에 보이도록 새겨졌다. 또 충남 부여 외리에서 출토된 유명한 백제의 귀신문 전돌은 귀신을 서 있는 자태로 새겼으나, 함께 출토된 용무늬 전돌은 디자인과 얼굴이 전혀 별개인데다 역시 측면에서 꿈틀거리는 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통일신라 괴수 기와들의 경우도 동국대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일부는 기와 아래 좌우측에 발이 새겨져 있는데, 매 발톱과 비슷한 용 발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띤다고 한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일부 괴수무늬 암막새는 중심에 귀신 얼굴을 새기고 좌우측으로 귀기를 내뿜는 모습으로, 용의 옆모습이 좌우 대칭으로 배치된 용무늬 암막새와는 한눈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경복궁에 있는 청유용문수막새처럼 청기와에다 용의 몸 전체를 새겨 넣은 사례는 있어도 몸 자체를 생략하는 경우는 없다는 게 김 전 관장의 지적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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