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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룡사 역사문화관이 왜 말썽이냐고요?

등록 2016-01-14 22:35수정 2016-01-15 08:51

황룡사터 서쪽 외곽에 짓고 있는 황룡사역사문화관. 사진 노형석 기자
황룡사터 서쪽 외곽에 짓고 있는 황룡사역사문화관. 사진 노형석 기자
[친절히 풀어쓴 뉴스] 역사문화관 건설의 진실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거찰 황룡사터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신라시대의 대표 문화유산입니다. 진흥왕이 566년 창건해 13세기 몽골 침략으로 불타 사라지기 전까지 9층 목탑과 3금당 등이 2400여평의 면적에 들어섰던 이 절은 수백년간 한반도에서 가장 큰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요즘 경주를 가보면, 도심에서 신라의 핵심 유산인 황룡사터로 이어지는 벌판에 낯선 콘크리트 기와 건물이 우뚝 솟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가 130억원을 들여 짓는 황룡사역사문화관인데, 들어선 경위를 놓고 경주가 시끄럽습니다. 5년여 전 문화재청이 발굴조사를 벌여 건물터 아래에서 희귀한 신라시대 연못터와 정원흔적을 찾아냈는데도, 쉬쉬하며 덮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린 사실이 최근 세상에 알려진 겁니다.(<한겨레>4일치 26면) 이 건물은 원래 언제든 걷어낼 수 있는 가건물로 문화재위원회 승인을 받았는데, 문화재청과 시는 슬그머니 영구적인 콘크리트 건물로 바꿔 공사해온 것도 뒤이어 드러났습니다. 황룡사를 위해 지었다는 건물이 어쩌다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흉물이라며 세간의 눈총을 받게 된 걸까요?

발굴조사는 대충 하고 건축 강행

황룡사역사문화관 건립은 2009년 경주시와 문화재청이 역사문화도시 사업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절터 서쪽 외곽에 연구센터를 짓기로 하고 앞서 터를 조사했는데, 면적이 244평이나 되는 장방형 연못터가 드러난 겁니다. 신라의 장방형 연못은 처음 나타난 사례로, 신라 귀족 저택 정원의 일부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발견이었습니다. 문화재청은 연못터 바로 위에 건물을 올릴 수는 없다는 발굴 자문위원 들의 의견에 따라 불과 2m 북쪽으로 틀어 건립터를 옮겼습니다. 새 건립터는 연못 바로 옆이어서 지하에 집터나 정원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학계는 추정했지만, 문화재청은 발굴조사도 없이 간접적인 물리탐사 결과만 갖고 새 건립터에는 별 유적이 없다고 단정하며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게다가 지중에 전파를 쏘아 유적 여부를 가려내는 물리탐사 결과는 유적 유무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발굴 때 파낸 흙이 켜켜이 쌓인 탓에 지하에 어떤 유적이 있는지 확실치 않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지요.

황룡사목탑 모형과 전시관, 연구실 등이 들어설 역사문화관은 완공시점인 올해부터 2035년까지 운영하는 한시적인 연구·전시시설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문화재위 사적분과 위원들은 2010년, 2011년 잇따라 회의를 열고 지하 유적과 경관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 건립터에 들어설 역사문화관을 경량철골조 가건물로 지으라고 주문했습니다. 실제로 2011년 6월8일 사적분과 회의록을 보면 국립경주박물관의 이미지 등을 참고해 한옥식 가건물로 짓는다는 조건부 검토 결정을 내리고 논의를 마무리한 사실이 확인됩니다.

가건물 승인받고 콘크리트 건축

그런데 그뒤 이상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경주시는 다음해 3월12일 설계자문위원들과 논의를 거쳤다며 사실상 영구적인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건물을 신축하는 내용의 변경설계도면을 문화재청에 제출하고 일주일 뒤 청의 승인을 받습니다. 문화재위원회에는 변경안을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절터에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을 올리면 경관을 훼손한다는 논란을 부를 것이 뻔한데도 문화재위의 추가 심의 없이 청과 시 관계자들 끼리만 문서연락을 주고받으며 건립안을 바꾼 겁니다. 문화재위원들을 따돌리고 자기들 뜻대로 설계안을 확정한 셈입니다. 시 안팎을 취재해보니 돈들여 가건물을 짓느니 제대로 된 건물을 지어 황룡사터에 관람객들을 위한 볼거리를 만들어 주는 게 더욱 낫다는 최양식 시장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말들이 나오더군요. 어쨌든 이런 곡절 끝에 시는 2013년 10월 연못터와 정원터 위에 콘크리트 건물을 착공했고, 오는 5월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문화재청 쪽은 이렇게 해명합니다. “임시시설이지만 장기 운영되므로 내구성, 안전성이 더 중요하다고 자체 판단해 콘크리트 구조 변경을 승인했다. 설계자문위원들의 논의를 거쳤고 지하 유적 손상도 없어 콘크리트 구조 변경안은 타당하다고 본다. 건립과 관련된 사항을 일일이 다 문화재위에 물어볼 수는 없지 않으냐”고요.

기자가 물어본 전·현직 문화재위원들은 대부분 “말도 안된다”“황당하다”는 반응입니다. 한 원로학자는 “대표 문화유산인 황룡사터에 경관 훼손은 물론 지하 유적 파괴까지 우려되는 막중한 중량의 콘크리트 덩이를 올리는데,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할 사항이 아니라는 건 위원들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리더군요.

문화재청·경주시 짬짜미 작품

노형석 기자
노형석 기자
황룡사는 원래 늪지에 지은 절입니다. 건립 설화를 보면 진흥왕이 용궁 남쪽에 궁궐을 지으려다 황룡이 나타나자 절로 고쳐짓고 황룡사라고 칭했다고 전합니다. 열악한 자연환경 앞에서 무리한 과시성 건축을 고집하지 않고 나라를 위한 불사의 터전으로 활용한 신라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500년 뒤 후대인들은 이런 선인들의 지혜에 눈감고, 볼거리와 복원지상주의를 내세워 상식적 절차를 뒤엎고 무지막지한 건축물을 올리는 중입니다. 건축을 강행하는 경주시와 문화재청 뒤에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 경주 문화유산의 대대적인 발굴 복원을 독려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뒷말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문화재학계 곳곳에서 “무분별한 복원 광풍으로 경주 문화유산들이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는 한탄이 들려옵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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