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개막된 18일 밤(한국시각 19일 새벽) 현지 알테 오퍼 대극장에서 주빈국 한국의 개막공연행사인 ‘책을 위한 진연’이 펼쳐지고 있다. <한중록>을 쓴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도서전에 맞춰 재구성한 이 공연은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가보니
“그렇지만 당신은 쓰셨습니다, 밤을 다하여. 눈물로 녹으면서 스스로 빛나는 촛불 앞에 한 자 한 자 생을 밝혀 놓으셨습니다. 아아, 작가들이여, 이 사람을 보라. 씀으로써 삶을 끝내 이긴, 그리고 가슴에 잿더미만 남은, 책의 어머니를! 어머니, 당신은 배로는 국왕을 낳으셨지만 재의 가슴으로는 불멸의 자식, 책을 낳으셨습니다. 이에 경하하는 마음 누릴 길 없어 삼가 만세를 기원하는 술잔을 올리나이다.” 정보기술·출판 접목 눈길끌어
한국작가 인터뷰 요청도 쇄도 비극적 죽음을 맞은 남편 왕세자의 비명을 평생 잊지 못하며 산 정조의 어머니이자 <한중록>을 쓴 여류문학가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 바쳐진 극중 치사낭독이다. 18일 밤 8시(한국시각 19일 새벽 3시)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개막 공연 행사로 알테 오퍼 대극장에서 3천석 가까운 객석이 거의 가득 찬 가운데 펼쳐진 홍씨 회갑연의 재현극 ‘책을 위한 진연’은 성황리에 첫 무대를 열었다. 1시간 공연이 끝나고 50여명 연기자들이 무대 인사를 하는 5분 동안 열띤 갈채가 극장 안을 가득 메웠다. 책의 고통스런 탄생에 바치는 은유적 헌사로 마련된 이날 공연은, 조선 후기 문예부흥을 일으킨 임금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성대하게 베푼 1795년 회갑연을 재현한 작품을 도서전에 맞춰 재구성한 것이다. 국립국악원 예악당이 공연했다. 공연은 남편인 왕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궁중에서 세살 짜리 아들을 데리고 쫓겨난 홍씨의 “모질고 잔인한 운명”과 “가증스런 운명의 한가운데에서 피로써 쓴” <한중록>의 배경을 전하는 프롤로그 자막이 흐른 뒤에, 회갑연에 어우러진 삶의 한과 기쁨 그리고 책의 탄생에 대한 감격을 우아한 여백미 넘치는 연기자들의 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했다. 공연 직후 위르겐 보스 도서전조직위원장은 “내가 알고 있던 한국은 늘 현대적인 한국이었는데, 오늘밤 한국 전통의 놀랍고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주빈국관 공식 개막을 하루 앞둔 이날 유럽과 한국 언론인 150여명에게 주빈국관의 내부가 처음 공개됐다. 황지우 주빈국조직위원회 총감독은 “목판인쇄의 극치”인 팔만대장경, “조선 500년의 통치연대기로 동아시아 유교국가에서 전무후무하게 이토록 세밀한 기록을 남긴” <조선왕조실록>을 일일이 설명하며 외국 취재진들의 관심을 끌고자 애를 썼다. 특히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직지’가 “모래 위에 정밀하게 글자를 새기고 그 위에 쇳물을 부어 한 자 한 자 식자한 다음 밀랍으로 고정한” 그 제조방식을 설명할 때엔 독일 언론인들 사이에서 신기해하는 탄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황 총감독은 “직지는 구텐베르크의 발명보다 78년이나 앞섰지만 독일은 기술혁신을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으나 한국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주빈국관의 주요 이벤트인 ‘유북’(유비쿼터스-북)의 시연 행사도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연애시와 선시를 휴대전화로 받아보고 다른 사람한테 보내는 시연 행사 직후 독일 언론인들이 몰려 ‘정보기술과 출판’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으나 일부는 ‘이북’(전자책)과 무엇이 다르냐며 조목조목 되묻기도 했다. ‘유북’을 활용한 ‘주문출판’(POD) 시연장도 마련됐다. 유북 시연 시스템을 개발한 이민석(36·디지웨이브테크놀러지 대표)씨는 “전시 중인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권’의 책 정보를 검색하다가 필요한 책을 주문하면 서점에서 사는 책과 똑같은 종이책을 20~30분 안에 만들어주는 주문 출판을 시연하고 있는데 좋은 반응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작가들에 대한 외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도서전 기간에 고은·황석영·이문열·조경란 등 작가들을 인터뷰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40~50건이나 밀려들어와 일정 조정에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에는 60여명의 한국작가들이 한국 문학의 이해를 넓히는 낭독회와 강연, 독자대화 등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앞서 18일 개막식에서 한국의 문화와 문학에 관해 연설한 시인 고은씨는 최근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데 대해서는 말을 애써 피하면서 “세계인의 관심과 시선이 모이는 곳에서 한국 문학을 드러낸다는 게 그들이 한국 문학을 이해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우창 주빈국조직위원회 위원장은 19일 “도서전에 참가 중인 한국과 독일 작가들이 도서전 마지막날인 23일 오전 10시 프랑크푸르트 메세 광장에서 친선 축구대회를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랑크푸르트/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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