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바르토메우 리바스 관장. 사진 노형석 기자
“회의할 때 ‘공식언어’는 한국어지만, 영어도 공용어로 씁니다.”
“그분께 보고할 때는 두사람이 들어가야 합니다. 한 사람이 말을 잘못 전하면 다른 사람이 바로잡아줘야 하니까요.”
요즘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은 ‘외국어 의전’을 익히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으로 마리 바르토메우 리바스(50·사진) 관장이 취임한 뒤로 생겨난 진풍경이다. 스페인 출신의 국제 전시기획자인 그는 영어, 불어 등 8개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국어를 못해 임기동안 영어로 기본소통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취임 두달째에 접어든 마리 관장에게는 업무시간 내내 국제교류 담당 신참 학예사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직제상 신설된 통번역 전담자는 다음달에야 채용될 예정이라 대신 임시 통역을 맡은 것이다. 학예사들과 회의할 때는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전시 기획과 작품 수집 방향 등에 대한 세부 설명이나 의견 교환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일일이 통역하기 번거로와 학예사들과 아예 영어로 이야기하거나, 영어, 한국어를 뒤섞어 대화하는 상황이 생기기 일쑤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도 관장에게 필수적인 지식이지만, 맞춤한 영어 개설서가 드물어 미술관 전시도록 영문해설과 직원들의 약식 브리핑으로 보충하는 식이다.
관장의 영어의전을 전담하는 미술관 기획총괄과·행정시설관리과 직원들도 관장과의 소통 오류, 문화적 차이 등에서 생길 수 있는 상황 등을 가상해 별도로 의전 매뉴얼을 만들고 관장이 볼 관련 법규, 조문 등의 영문번역까지 하고있다. 외국어에 밝은 몇몇 학예사, 직원들도 십시일반으로 통·번역을 품앗이해주고 있다. 한 학예사는 “국가기관이어서 공식 대화는 한국어로 하는 게 원칙이다. 우리말로 용건을 말한 뒤 일일이 통역하는 탓에 이전보다 업무에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바르셀로나미술관장 시절 검열 의혹 전력으로 취임 당시 논란을 빚은 마리 관장은 강한 업무 의욕을 보이고 있다는 평이다. 주말에도 미술인 면담과 전시관람을 쉬지않고, 틈틈이 우리말 과외도 받는다.
그가 새 전략으로 내세운 것은 ‘원 뮤지엄(하나의 미술관)’. 올해 건립 30돌을 맞는 과천 본관을 비롯해 덕수궁관, 서울관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공동기획과 인력교류 활성화에 주력하고 전시기획의 혁신, 소장품 관리, 미술출판 강화도 주문한 상태다. 올해는 과천관 30주년 기념 전, 이중섭 서거 60주년 전 등 굵직한 행사들도 많아 미술관 사람들은 의욕 넘치는 마리 관장과의 영어소통에 더욱 신경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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