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적 사진가 이상엽씨. 사진 노형석 기자
‘일우사진상’ 다큐부문 수상 기념전 열고 있는 이상엽씨
“변경은 흔히 외진 변두리를 일컫지만, 고정된 곳이 아니라 중심을 뒤흔드는 힘이 되고 아예 중심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변경을 주목해온 제 사진 작업이 강화도 옛 방어진지인 돈대를 주목한 것도 그런 역사의 복잡한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무대였기 때문이죠.”
20여년간 글쓰기와 사진 작업을 함께 해온 인문적 사진가 이상엽(49)씨는 특유의 달변으로 강화 돈대들을 포착한 자신의 신작들에 얽힌 담론을 풀어냈다.
최근 ‘제6회 일우사진상-올해의 특별한 작가’ 다큐멘터리 부문상을 방는 그는 서울 서소문 사진공간 일우스페이스에서 기념사진전 <변경의 역사>을 차렸다. 24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30여점의 작품들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방어 시설이었으나 결국 무용지물로 팽개쳐진 돈대의 쓰라린 과거에서 얻은 깨달음을 들려줬다.
“54곳이나 되는 강화 돈대를 수년간 주목한 건 단순히 역사유산을 기억하자는 차원은 아니었습니다. 돈대는 17세기말 숙종 연간에 선으로서의 국경 개념이 형성되면서 무더기로 만들어진 방어유산입니다. 그러나 쌓은 뒤 200년도 지나지 않아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일으킨 미국, 프랑스 세력의 외침에 힘없이 무너졌고, 1875년 일본 운요호 침입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무력화됩니다. 한국전쟁 때 돈대 부근에 해병대가 주둔하면서, 유적의 돌벽마저 강화도 북쪽의 북한군 도강을 막기 위한 제방의 축대로 빼돌리는 바람에 막 허물어졌지요. 그뒤엔 우익세력들의 연병장으로 쓰이면서 유적 주변에 기괴한 기념물들이 들어서기도 했어요. ”
작가는 “돈대 너머로 보이는 서해의 끝간 데 없는 개펄과 지평선처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변화의 요소들이 이 유적의 역사와 함께 했다는 사실을 사진에 담으려 했다”고 했다. 역사의 속성은 파동과 입자의 두 속성을 지닌 빛처럼, 계속 중심과 주변이 뒤바뀌고 얽히는데 이런 변화의 속성들이 돈대의 파란만장한 변천사로 나타났다는 통찰이다. 그래서 신작 사진 속에는 시대별로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 돈대와 부근의 역사적 자취들이 다기하게 아롱져있다.
“91년 <사회평론 길>에서 글을 쓰며 사진작업을 시작한 이래 사회적 다큐 사진만 찍는 전업작가로 활동해왔어요. 숱한 매체에 기고하고 사진집을 내고 실크로드와 중국 등지로 기행도 많이 다녔죠. 하지만 쉰살을 바라보는 이즈음, 생생한 현장만 주목하는 다큐사진 자체의 빤한 형식에 너무 안주해왔다는 한계가 절박하게 느껴졌어요. 좀더 멀리 시간과 역사를 바라보면서 작업의 심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번 전시는 다큐사진가로서 저의 진부했던 작업 형식과 내용을 가다듬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작품 시장에 눈돌리지 않고 생각하는 글쓰기와 사진 작업을 틀을 바꿔 계속하리라 다짐했다. 전시는 3월30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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