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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눈과 귀 점령…10년만에 본 서울 더 험악해져”

등록 2016-03-06 18:47수정 2016-03-06 20:38

 ‘낱말의 우주’ 저자 우석영씨
‘낱말의 우주’ 저자 우석영씨
[짬] 그림으로 한국사회 비평 시도
‘낱말의 우주’ 저자 우석영씨
우석영(44)씨가 건넨 명함을 보니 그의 이름 밑에 연구자, 저술가란 두 낱말이 단출하게 박혀 있다. 그는 2004년부터 10년 동안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물며 연구하고 글을 썼다. 이 기간 석사 논문 한 편을 썼고, <낱말의 우주>(2011) <녹색당 선언>(2012, 공저) <수목인간>(2013)과 같은 저서와 몇 권의 번역서를 출판했다. 한자의 조형적 아름다움에 이끌려 그 어원과 의미를 놀이하듯 탐색한다(<낱말의 우주>)든가 철학과 인류학, 문학 지식을 섞어 나무의 시학 혹은 생태학을 구축하려는(<수목인간>) 시도는 평단의 호응을 제법 끌어냈다.

2년 전 귀국한 그가 이 땅에서 첫 저서를 냈다. <철학이 있는 도시>(궁리)다. 10년 만에 돌아온 서울에서 느낀 ‘얼떨떨한 감정’을 동서양과 동시대 국내 작가를 가로지르는 미술 작품 50여편을 통해 설명한다. 그림 읽기를 매개로 한 사회비평인 셈이다. 우씨를 지난 2일 그가 거주하는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서른살때 “다 바꾸자” 유학 결심
호주 캐나다서 10년 연구 저술
한자 어원 등 고찰 첫 저서 호평

귀국 뒤 첫 책 ‘철학이 있는 도시’
그림 50편 매개로 한국 문제 짚어
“우리 사회, 자본주의 시험장 같아”

그는 7살 때부터 시작한 일기를 지금도 쓰고 있다고 했다. <낱말의 우주> 역시 그 출발은 일기다. 2009년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대학에서 연구석사를 마친 뒤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시기다. 우연히 이전 일기를 들춰봤다. 한자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를 표로 만들고 새벽마다 한 단어씩 글을 완성해가니 한 권의 책이 됐다. 책에 실린 한자어 서예 작품의 70%는 자신이 직접 찾았다. 愛(애), 戱(희), 文(문) 세 글씨는 그가 특히 좋아하는 중국 북송시대 서예가 미불의 작품이다. “유학 시절 시간이 생기면 혼자서 서예 공부를 했어요. 글씨 위주였고 가끔 그림도 시도했지요.”

그는 연세대 사회학과 91학번이다. 세부전공은 예술사회학이다. 청년 시절 빠져들었던 문학에 대한 흥미는 줄었지만 미술에 대한 애착은 지금도 여전하다. <철학이 있는 도시>도 그 미술사랑에서 출발했다. “2009년부터 살기 시작한 브리즈번의 퀸즐랜드 주립도서관과 갤러리에서 미술 도판이나 그림을 보면서 자료를 모았죠. 처음엔 영어로 미술 에세이를 썼는데, 한국에 돌아온 뒤 생각을 바꿔 사회비평 성격으로 출판했어요.”

여유와 풍요란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두 나라에서 10년을 보낸 뒤 대면한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더 험악한 사회가 되었다는 느낌이에요. ‘보복운전’이나 ‘대박’, 이런 말은 전에는 없었죠. 처음 1년은 얼떨떨했습니다. 버스 타면 창밖에서 수시로 경적이 울리고 누군가 거침없이 어깨를 밀치고 갑니다. 내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그는 한국 사회를 두고 극자본주의, 극소비사회란 표현을 썼다. “우리 사회를 보면, 자본주의가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곳 같아요. ‘귀의 점령, 눈의 점령’이라고 제가 표현했는데요. 방송 채널 사이사이를 홈쇼핑이 점령하고 있죠. 휴대폰에도 광고 메시지가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그는 청년들 이야기도 했다. “청년들이 너무 비청년스러워요. 너무 늙었죠. 고3과 대학 신입생의 차이가 뭐죠. 대학을 가면 학문의 자유, 연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세계 보편인데도 여기 대학 신입생들은 자기 살길 찾으려고 분주합니다.”

우씨는 자신의 학문적 지향점인 환경철학과 생명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애초 1년 거주를 생각하고 귀국했지만 이 책을 내면서 “한국에 살자는 생각이 커졌다”고 했다. 한국 사회와 서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동포’란 낱말의 실감이 그에게 더 묵직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제 정체성의 반은 한국, 반은 코즈모폴리턴이었죠. 시드니 유학 시절에도 백인이 95%인 글리브 지역에서 살았어요. 코리아타운에도 안 갔어요. 보통 유학파는 자리를 잡기 위해 귀국합니다. 전 그런 케이스도 아니에요. 잠시 거주라고 생각했죠.”

그는 직장을 다니던 2002년 유학을 결심했다. 학창 시절부터 품고 있던 ‘위대한 작가’의 꿈을 내려놓고 ‘정말 중요한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담배도 끊고 모든 걸 바꾸자고 생각했다. 2004년 찾은 캐나다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유학을 결심하고 이듬해 시드니로 떠났다. 시드니대 대학원을 거쳐 뉴사우스웨일스대 대학원까지 모두 4년 동안 사회학과 문학, 철학을 공부했다. 논문을 마친 뒤 귀국 때까지 그는 따로 대학에 적을 두지 않고 개인적 연구와 저술, 번역 작업에 몰두했다. 그의 표현대로 “글쓰기가 자동적으로 흘러”간 것이다.

이 험악한 시대에 그림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알랭 드 보통이 쓴 <영혼의 미술관>을 보면 미술의 7가지 기능이 잘 정리되어 있지요. 직장에서 퇴출된 분이 그림을 보고 상실감이 사라지는 그런 경험을 할 수도 있죠. 정서적, 도덕적 균형회복 기능입니다. 미술은 또 우리가 과거사를 더 잘 기억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지요.” 예컨대 ‘북한산과 서울 모습을 전체로서 보여주는 그림은 개인이 보기 힘든 전체 실경을 보여주면서 집단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전후 한국인이 보여준 성장, 개발에 대한 집착을 두고 광기란 표현을 써가며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성장은 했지만 빈부격차는 늘어나고 다수는 황폐해졌어요. 예컨대 삼성 컴퓨터가 많이 팔리면 화석연료를 더 씁니다. 이는 더 많은 생물종의 멸종으로 이어지지요.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길을 찾자는 것입니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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