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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만화방에서 ‘서점인듯 도서관인듯’ 편안한 공간 착안”

등록 2016-03-16 18:51수정 2016-03-16 18:51

최원석 ‘토끼의 지혜’ 대표. 사진 김명진 기자 <A href="mailto:littleprince@hani.co.kr">littleprince@hani.co.kr</A>
최원석 ‘토끼의 지혜’ 대표.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짬] 북카페 ‘토끼의 지혜’ 대표 최원석씨
서울 강남 논현역 인근 대로변에는 낯선 공간이 하나 있다. 도서관 같기도 하고 서점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책을 보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수천권의 잘 분류된 책들이 이들을 에워싸고 있다. 도서관처럼 책에 질식되는 느낌이나 대형서점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멀다. 북카페 ‘토끼의 지혜’ 풍경이다. 2007년 홍대점에서 출발했으니 올해로 10년의 역사다. ‘책과 책읽기’가 중심이 되는 북카페의 원조 격인 ‘토끼의 지혜’ 최원석(41) 대표를 지난 11일 만났다.

사학 전공·검색엔진업체 경험 살려
2007년 홍대 앞에서 첫 북카페 열어
‘무지막지한 소음 속 오아시스’ 호평

홍대2호·강남점, 임대료 급등에 밀려
2년전 논현역 출판사 사옥에 ‘정착’
“세부 분류 200개로 독자에 다가갈 것”

“들어서는 순간, 소음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나는 안도했다. … 어디 도서관에라도 온 듯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씨가 3년 전 한 매체에 기고한, ‘토끼의 지혜’ 홍대점 체험기의 일부다. 정씨는 북카페라 이름 붙인 몇 군데를 둘러보았으나 대부분 수선스럽고, 책다운 책이 있는 곳도 드물었다면서 최씨의 북카페에 들러서야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논현역 매장은 내부 공간만 80평이다. 외부 카페테리아까지 120평이다. 내부 좌석도 120개나 된다. 커피값 6천원으로 강남 대로변에서 이런 비즈니스를 한다는 게 신기해 보였다. “2010년 열었던 강남역점을 2013년 닫고 이쪽으로 옮겼죠. 임대료를 세배나 올려달라고 하니 옮길 수밖에요. 교과서나 참고서 위주인 미래엔 출판사의 사옥인데, 임대료나 임대기간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해 옮겼어요.” 출판사 처지에서도 사옥 입구에 문자향이 진한 북카페가 있는 게 이미지나 영업 면에서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최 대표는 경희대에서 사학을 전공했다. 졸업 뒤 2002년 검색엔진회사인 엠파스에 취업했다. 세상에 알고 싶은 게 많았던 그의 성격도 회사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엠파스에서 이용자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이디어를 검색 툴에 연결시키려고 시도를 했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사표를 내고 2007년 홍익대 주변에 첫 북카페를 열었다. “대형서점에선 편하게 책읽기가 힘들어요. 화장실을 다녀오면 자리가 없어지죠. 도서관은 적막해 연필 하나 굴리기도 힘들고 커피 반입도 안 되죠.” 그는 대형서점과 도서관이 주는 편익을 함께 누리는 공간을 상상했다. “당시 그런 곳은 만화방밖에 없었죠. 거기서 가능성을 찾았어요.”

상호도 유지하고 매장 규모도 늘렸으니 비즈니스 측면에서 지난 10년은 그리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엔 쉽게 가늠하기 힘든 설움과 고통이 자리한다. 홍대 1호점이 ‘무지막지한 소음 속의 청각 오아시스’란 평가를 받으며 제법 단골을 확보했다. 이를 기반으로 이듬해 홍대 2호점을 열었다. 2010년 홍대 1호점을 정리하고 그 권리금에 기반해 강남역 쪽으로 옮겼다. 그 뒤, 최씨는 두 차례나 밀려서 가게를 접어야 했다. 홍대 2호점은 나가달라는 주인의 일방 통보에 소송까지 불사했으나 결국 권리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지난해 매장을 접었다. 강남역점까지 두 차례나 거대한 책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

그는 지금 2만권 가까운 책을 가지고 있다. 가게 두 개를 합친 결과다. 5천권은 60평대 아파트인 경기 남양주 자택에 보관하고 있다. 매장엔 8천권 정도 진열하고 나머지는 매장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하루 150~300명이 찾습니다. 주말엔 손님이 더 많죠. 마치 공원에 놀러 오듯 부부가 꼬마들을 데리고 옵니다. 많을 때는 한 달 200만원까지 책을 샀지만, 너무 많이 쌓여 요즘은 한 달에 50만~100만원 정도 책을 삽니다.”

그의 매장은 대화공간과 독서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음악이 나지막하게 흐른다. “음악은 대화 소리를 녹여 없애주는 기능을 합니다. 비트가 빠르면 안 되고 한국말이 들어가도 안 되죠. 음악이 아예 없으면 공간이 적막하고 지루해지죠.”

손님 절반은 구비된 책을 읽고, 나머지는 자기 공부를 한다. 그는 자신이 정성껏 마련한 책을 더 많은 고객들이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분류 방식도 남다르다. ‘스타일과 트렌드’ ‘교양과 예술’ ‘휴식과 여유’란 큰 분류 아래, ‘남자 대 여자’ ‘폼나게 살기’ ‘지식의 대중화’ ‘인간과 진리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과 같은 작은 주제로 세분해 책을 모은다. “세부 분류 200개가 목표입니다. 지금 제 컴퓨터 파일에서 이 목록을 작성하고 있지요.” 철학과 사회과학과 같은 도서관식 분류는 “너무 엄숙하고 재미없어 눈길을 끌기 힘들어”서다. “연애란 테마는 중요한데 심리학으로 분류돼 눈길을 끌지 못하지요. ‘남과 여’로 분류하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지요.”

그는 <어메이징 그래비티 - 만화로 읽는 중력의 원리와 역사>(조진호, 궁리) <뉴로코믹 - 뇌신경 그래픽 탐험기>(하나 로스, 푸른지식) 등 몇 권을 서가에서 뽑았다. “내용이 좋은 만화책이지만, 크게 소개되지도 않았고 많이 팔리지도 않았죠. 이런 책을 모아 ‘만화나 카툰으로 접하는 고급 지식’으로 세분할 생각입니다.”

얼마 전부터 80년대 출판본을 중심으로 헌책도 모으고 있다. 매장에서 판매도 한다. “책은 10년 정도 지나면 진부해 보이지만 30~40년 된 것은 신간처럼 새롭게 보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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