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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돌아온 김정헌의 ‘작난질’

등록 2016-03-17 20:52수정 2016-03-18 17:11

12년만에 ‘참여미술’ 개인전

지난 10여년 문화행정에 몰두
작년부터 그림작업 다시 시작
세월호 등 시사적 현장 담고
70~90년대 구작도 한자리에
김정헌 작가가 2015년 그린 신작 ‘희망도 슬프다’. 도판 아트 스페이스 풀 제공
김정헌 작가가 2015년 그린 신작 ‘희망도 슬프다’. 도판 아트 스페이스 풀 제공

“맞아. 원래 그림 그리는 화가였지!”

국내 진보 예술진영의 원로인 작가 김정헌(70)씨가 12년만에 개인전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문화판 지인들 가운데 새삼 이런 반응을 내놓는 이들이 적지않다. 까닭이 있다. 2000년대 이후로 김씨는 유별난 문화행정가로 훨씬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세인의 기억에는 그가 한국문화예술위원장 거취를 놓고 벌인 2010년 2월의 출근퍼포먼스가 선하게 남아있다. 그는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자신을 해임하고 오광수 위원장을 임명하자 이에 맞서 법적 소송을 벌였다. 2년만에 해임처분효력정지 결정을 법원에서 받아내자 곧장 출근 투쟁에 들어가 사상 초유의 ‘한지붕 두위원장’ 사태를 연출했다(김 작가는 이 사건을 행정 미술이라고 부른다). 그 뒤로도 서울문화재단이사장으로 일했고, 서울 대림동 철공소 동네와 제천 등지를 돌며 예술마을 꾸리기 운동을 이어갔으며 ‘유신의 소리’란 박정희 풍자극의 배우로도 출연했다. 1980년대 현실참여미술인 모임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90년대까지 팝아트와 키치, 농민화, 역사화가 결합된 이야기 그림을 그렸던 화가의 이력은 어느덧 희미한 추억으로 바래어져 갔던 게 사실이다.

17일부터 서울 구기동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은 최근 다시 시작한 작가의 그림작업들과 70~90년대 민중미술 혹은 참여미술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시도했던 구작들이 특유의 잡글들과 어우러졌다. 앞서 김씨는 지난해부터 10년여 작파했던 그림 작업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예술은 인간의 망상에서 비롯된다는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의 말을 즐겨 인용하는 그는 “나이 70 들어 혼란한 세상에서 내 여지껏 생각을 풀어 잡다하게 벌여온 행적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한다. ‘생각의 그림·그림의 생각: 불편한, 불온한, 불후의, 불륜의, … 그냥 명작전’이란 번다한 제목이 그런 생각들의 편린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출품작들은 세월호, 남북대치, 일제징용 등 시사적인 현장과 소시민적인 일상풍경들을 거칠게 혹은 흐릿하게 묘사하면서 그가 찍은 생각의 방점들을 노란 원을 덧칠하거나 소근거리는 의성어 단어들을 적는 식으로 표현한다. 사소한 일상풍경이나 시사적 풍경을 화폭에 옮기되 그 과정에서 느꼈던 생각이나 이야기들을 살붙이고 풀어내는 ‘작난(作亂)질’의 흔적들이 근작 곳곳에 보인다. 여의도가 보이는 한강변 옥상 위에 말풍선 같은 빈 구름이 떠가는 풍경(‘아몰랑 구름이 떠있는 수상한 옥상’)은 예측불가능성이 확장되는 한국 사회의 불길한 현실을 암시하며, 시커먼 바다 위에 밝은 창이 잠겨 떠내려가는 장면(‘희망도 슬프다’)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작가 나름의 쓰라린 단상을 훑어내리게도 한다. 70년대 손바닥이나 달동네를 격자형식으로 표현한 초창기 작업들도 내걸려 모더니즘 맥락에서 현실참여의 흐름으로 옮겨가던 젊은 시절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내면에 깊이 가라앉은 분노와 한탄의 정서, 이리저리 꼬이는 생각들이다. 몇몇 그림들에 콕콕 박힌 노란 점과 수상한 독백 같은 제목 글귀들은 그런 심사의 단적인 표출일 터다. 답답한 지금 시국과 세태가 그 배경이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 그림들 기저에는 또다른 회한이 깔려있다. 혁명과 변혁을 좇기엔 너무나 정체된 참여미술의 현상을 관조하는 노작가의 심경록 같은 느낌이 전해져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이 전시가 지닌 속깊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전시에 맞춰 작가의 작은 화집과 그림이야기 책도 출판사 헥사곤에서 함께 나왔다. 4월10일까지. (02)396-480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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