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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풍경은 바뀌었는데 근심은 여전

등록 2016-03-18 10:31수정 2016-03-18 17:21

서울 문학기행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82년 전 구보씨가 걷던 경성 도심 길을 걷다
한국문학의 고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문학과지성사)은 고현학(근대의 세태풍속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학문)을 방법적으로 응용한 소설이다. 1934년 발표된 소설은 1930년대 경성이 배경이다. 소설가 구보씨는 어머니에게는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근심거리이고, 구보씨에게 경성은 노동과 생활의 터전이기보다 산책과 관찰의 대상이다.

여행작가 장태동씨가 82년 전 구보씨가 걸었던 서울 도심길을 따라 걸으며 작품 속 경성과 현재 서울의 모습을 비교하며 오늘의 의미를 되새겼다. 장씨는 작품 속 구보씨를 소환해 이번 도보길에 동행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장씨는 여가면에 문학작품 속 나타난 서울을 찾아가는 기행문을 3주에 한번꼴로 게재한다.

“구보씨, 어디 가세요?”

“서울 산책 갑니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 구보씨를 따라 1934년 어느 날 서울 도심을 걷는다.

“구보씨, 출발합시다.”

청계천 광통교

구보는 오전 11시 혹은 정오가 되어야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정오가 다 돼서 일어나 집을 나선다. 그의 집은 현재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주변이다. 집을 나서서 청계천을 따라 광통교(현 광교)까지 걷는다.

“구보씨, 광통교가 1410년(태종10)에 조선 최초의 퍼스트레이디인 신덕왕후(태조 이성계의 계비)의 옛 무덤에 있던 돌로 만들었다는 거 아세요? 1959년에 청계천 복개공사 때 도로에 묻혔던 것을 2005년에 다시 세운 거죠. 그런데 다리가 있던 원래 자리에 짓지 못하고 조금 옆에 지었어요. 옛 광통교가 있었던 곳에 있는 지금의 다리 이름은 광교랍니다.”

화신백화점(현 종로타워)

일본 도쿄 호세이대학에서 유학했지만 일정한 직업 없이 글을 쓰는 소설가 구보는 삶의 무게에 눌려 사는 26살 청년이다. 그의 발걸음은 산책처럼 상쾌하지 못하고 어눌한 말씨처럼 늘어진다. 그런 그가 처음 들른 곳은 화신백화점이다.

광통교에서 종로사거리 쪽으로 걷는다. 화신백화점에 들어선 구보는 아이들 손을 잡고 백화점을 찾은 가족의 행복한 일상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풀이 죽는다. 구보의 손에는 지팡이와 공책 한 권이 전부다. 백화점을 나온 구보는 종로사거리에서 전차를 타고 동대문으로 향한다.

“구보씨 지금 서울에는 전차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종로2가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종로6가에서 내릴 겁니다. 거기서 조금만 가면 동대문이 나오거든요.”

전철, 동대문에서 조선은행(지금은 옛 한국은행 건물)까지

구보는 전차 안에서 전에 맞선 자리에서 만났던 여인을 발견하고 전차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그리고 그 여인이 자신을 보았을까 걱정한다. 구보는 청량리 쪽으로 가는 그 여인을 뒤로하고 한강교 방면으로 가는 전차를 타고 을지로를 지나 조선은행에서 내린다.

“구보씨, 당신이 탔던 전차의 동대문 종점 자리에 지금은 작은 표지석을 세웠어요. 지하철 동대문역 8번 출구 뒤에 있습니다. 저는 청계천 오간수교를 지나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을지로를 지나 롯데백화점에서 내릴 겁니다. 거기서 조금만 걸으면 조선은행 건물입니다.”

조선은행

“조선은행 건물이 1912년에 완공됐으니까 구보씨 당신은 이 건물이 완공되는 걸 보았겠군요? 지금은 은행이 아니라 박물관입니다. 화폐금융박물관이요. 건물 자체는 사적 제280호로 지정됐습니다.”

경성부청 앞

구보는 장곡천정(현 소공로)을 지나다 다방에 들러 차 한 잔을 마시고 담배도 한 대 피운다. 다시 나와서 경성부청(현 서울시청 앞 광장) 앞에 선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장곡천정에 있는 골동품점에 잠깐 들렀다가 나와서 남대문으로 향한다.

남대문 그리고 경성역

남대문 옆 남대문시장 지게꾼들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경성역(지금은 옛 서울역 건물)으로 옮긴다. 경성역에서 구보는 여러 군상을 본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도 있고 빈둥거리는 젊은이들도 있다. ‘황금광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어쨌든 그 사람들은 그런 목적이라도 갖지 않았는가? 구보는 또다시 자신의 불행한 삶에 대한 생각으로 빠져든다.

“그런데 구보씨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당신도 글을 쓰기 위해 금광을 하는 문우를 찾아가려고 했지 않나요? 그 문우가 혹시 춘천 사는 김유정 작가 아니었나요? <동백꽃>을 쓴 그 김유정이요.”

종로경찰서

구보는 경성역에서 남대문을 지나 다시 조선은행 앞에 선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다방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신문사 기자이자 시인인 친구를 잠깐 만나고 헤어진다. 친구는 가고 다시 혼자다. 해 기우는 황혼에 변변한 직업 없는 26살 청년 구보는 더없이 쓸쓸해진다. 종로사거리 종로경찰서(현 SC은행 건물) 앞을 지나 황토마루(현 광화문역 부근 세종로)로 향하다가 다방에 들른다.

“구보씨, 그 다방이 친구 이상이 하는 ‘제비’다방 아닌가요?”

황토마루

구보는 황토마루에 도착했다. 지금의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부근이 황토마루였다. 황토로 된 야트막한 고개가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 정오쯤 집에서 나온 구보가 시내를 배회하듯 산책하며 황토마루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7시간이다. 햇빛이 사라지는 자리에 어둠이 들어차고 있었다.

“구보씨 광화문역에서 서대문 쪽으로 가다 보면 서울역사박물관이 있어요. 거기 가면 당신이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타고 다녔던 전차를 볼 수 있답니다. 박물관 3층 전시실에 가면 당신의 안경(사진)과 필통, 그리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지금의 이 소설을 발표하고 나서 당신은 <천변풍경>이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하게 되는데요, 그 책도 진열돼 있어요. 당신은 불행하지 않아요, 무기력하지도 않구요, 당신이 있어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서울을 산책하고 있잖아요.”

황금정을 지나 낙원동, 그리고 새벽 2시 종로사거리

황토마루에서 황금정(현 을지로1가)을 지나던 구보는 눈여겨보았던 여급이 있는 술집을 찾아가지만 그 여급은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난 뒤였다. 그래서 구보가 찾아간 곳은 낙원정(현 탑골공원 부근) 어느 카페였다. 그곳에서 구보는 친구와 새벽까지 술을 마신다. 그리고 새벽 두시에 종로사거리에 선다. 친구와 헤어지면서 구보는 내일부터 창작에 몰두하겠다고 다짐한다.

“구보씨 그날 창작에 몰두하겠다고 다짐한 뒤에 발표한 작품이 혹시 <천변풍경> 아닌가요?"

글ㆍ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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