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철씨. 도판 열화당 제공
이갑철씨 ‘타인의 땅’ 출간
이땅의 풍경에 스며든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포착해온 사진가 이갑철(57)씨가 28년 전 전시회의 작품들을 묶어 사진집을 냈다. 1988년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치렀던 개인전 <타인의 땅> 출품작들을 묶어 최근 같은 제목으로 열화당에서 펴낸 사진집이다.
‘타인의 땅’ 출품작들은 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보통사람들의 일그러진 일상과 풍경들을 포착해 보여준다. 청년기의 작가가 나름의 시선으로 당대의 진실을 보여주겠다는 열망으로 꾸렸던 전시다. 사실 작가는 훨씬 뒤인 2002년 신명 등 한국인만의 전통적 심상을 추적한 <충돌과 반동>(금호미술관) 전시로 사진계에서 본격적인 성가를 얻게 되지만, ‘타인의 땅’은 데뷔전인 <거리의 양키들>(1984)과 더불어 현실 이면을 드러내는 작가의 초창기 사진미학을 정립하는 기점이 된 전시로 평가된다.
이 사진집에는 85~88년 찍었던 당시 전시 출품작과 이후 90년까지 촬영한 것들을 합쳐 80여컷의 작품들이 실렸다. 구멍 두 개 뚫린 카세트 테이프로 얼굴을 가려 요상한 괴물처럼 비치는 아이와, 대학가에서 경찰이 마구잡이로 행인을 검문하는 장면, 골목 길 걷는 교복 소녀를 배경으로 병사들이 총부리를 들이댄 모습 등은 악몽 같은 초현실적 느낌으로 가득하다. 숨막힐 듯했던 독재시대의 일상 풍경이 부조리극 같은 상황으로 다가오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씨는 50년대 미국 사회의 속물성을 까발리는 사진들로 충격을 준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미국인들>(1958)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80년대 한국 현실에서도 ‘미국인들’ 같은 이면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가 전시의 동기가 되었노라고 책에 밝혀놓았다.
서울 관훈동 갤러리 나우에서 책의 수록작품 전시회도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