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메고 굿판에서 춤을 추고 있는 생전의 김수남 사진가.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유족 기증사진 1만7천점 추려 특별전
산자와 죽은자 비탄 뒤섞인
무혼굿·씻김굿·샘굿·수망굿…
굿판에서 살아 압도적 밀착감
아시아 무속사진 함께 전시
산자와 죽은자 비탄 뒤섞인
무혼굿·씻김굿·샘굿·수망굿…
굿판에서 살아 압도적 밀착감
아시아 무속사진 함께 전시
‘돌아오렴. 돌아오렴. 넋이라도 돌아오렴.’
저멀리 번득거리는 망망대해를 향해 심방무당이 목메어 부른다. 물살 들이치는 해변가 바위 앞에서 바다에 빠져 죽은 넋을 향해 이파리 가지를 흔들며 몸부림을 친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소리, 비릿한 바다내음, 무당의 뒤켠에는 분명 산자들의 곡소리와 비탄이 한가득 밀려오고 있을 터다.
1981년 제주섬 고산리에서 찍은 사진가 김수남(1949~2006)의 무혼굿 사진에는 산자와 죽은자의 감정이 하늘과 바다 앞에서 한덩어리로 마구 뒤섞여 흘러가고 있다. 굿판의 냄새, 무당의 숨결, 매서운 칼바람까지 현장의 강렬한 밀착감이 눈을 찌른다. 해변에서 서낭대를 흔들며 망자를 부르는 포항 수용포 수방굿판, 서울 ‘할매무당’들이 탐욕의 화신이 되어 생고기 살을 찢어먹으며 다투는 평안도 다리굿의 장면을 누가 이토록 가까이에서 필름에 담아낼 수 있을까. 80년대까지 김수남처럼 박수무당 바로 곁에서, 굿판의 한가운데서 무속의 박진감을, 거기 모인 이들의 희로애락을 절실하게 포착한 사진가는 없었다. 그의 작업 덕분에 90년대 이후 한국 사진판에는 민중의 신기운을 찾는 숱한 후배 사진가들이 나라 안 곳곳의 굿판과 만신들을 기록하고 교감하는 새 전통이 생겨났다. 70년대 사진기자 시절 관제 새마을운동으로 사라져가는 한국의 무속판을 기록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숱한 박수무당, 유족들과 삶을 나누며 셔터를 눌렀던 30여년 세월, 그는 어느새 사진으로 굿을 하는 무당이 되었다. 김수남 무속 사진들에서 보이는 압도적인 현장감은 이런 속깊은 열정과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93년 열화당에서 펴낸 20권짜리 사진책 시리즈 <한국의 굿>으로 전설이 되었고, 아시아 각지의 무속 현장을 찍다가 2006년 타이 치앙마이의 설축제 촬영도중 쓰러져 훌쩍 세상을 떠난 김수남의 굿판 사진들이 돌아왔다. 서울 경복궁 경내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지난 6일 개막한 ‘김수남을 말하다’ 특별전이다. 지난해 유족이 기증한 17만여점의 필름들 가운데 100여점을 추렸다. 죽음과 삶이란 큰 주제 아래 다시 프린트한 고인의 주요 굿판 사진들과 말년 심취한 아시아 각지의 무속기행 작업들을 한자리에 모아 김수남 작품세계의 본질을 되묻고 성찰하는 자리다.
전시장 들머리는 죽음의 이미지로 채워진다. 망자를 위무하는 상가의 굿판 사진들이다. “죽음이 곧 삶의 시작이고 삶의 끝이 죽음이며 무당과 굿은 그 경계의 선상에 있다”며 생전 인터뷰에서 털어놨던 고인의 생각들은 사진 속에서 망자를 기리는 산자들의 다기한 퍼포먼스로 표출된다. 저승에 간 망자를 이끌어내는 무당들의 초혼 의식과 그들이 망자의 혼을 대신 받아안고 산자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모습, 울고 웃고 절규하는 유족들의 군상이 전국 각지의 씻김굿, 무혼굿, 수망굿 등의 굿판 장면을 통해 다가온다. 이제 나라의 무당으로 불리는 김금화 만신의 80년대 푸닥거리 판과 그의 신딸 채희아가 신내림을 받는 장면, 걸출한 각지 무속대가들의 일거수 일투족과 인간의 가장 진실한 욕망, 소망을 담은 굿판 군중의 얼굴 등에서 김수남 사진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해안 지방의 남녀의 영혼 결혼식 장면을 담은 미공개 사진들과 마을사람들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며 벌인 떼굿판의 요지경들도 보인다. 90년대 이후 본격화한 일본, 대만,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여러 곳의 굿 기행 사진들을 국내 굿판의 사진들과 함께 전시한 영역은 신내림과 해원, 초혼 등 국내외 굿판의 여러 의례들이 보편적인 형식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된다. 특히 82년 부천에서 찍은 우물가의 샘굿이나 바위 앞에서의 마을 굿 장면 등은 이제 영원히 실연할 없는 영적인 공간의 기록물이다. 고인과 여정을 같이 했던 김인회 전 연세대 교수 등이 찍어 함께 내놓은 80년대 굿판의 희귀 동영상들또한 눈맛을 다시게 하는 전시의 중요 자료들이다. 11일부터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작품 200점을 별도로 선보이는 온라인 전시가 펼쳐지며 5월6일엔 그의 사진 인생을 돌아보는 강연회도 열린다. 6월6일까지. (02)3704-3248.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81년 찍은 제주도 무혼굿 광경. 고산리 앞 바닷가에서 몸짓하며 망자의 넋을 부르는 심방 무당의 뒷모습을 담았다.
82년 인천 연수구에서 찍은 동막 도당굿 장면. 무당 조한춘 산이가 굿판에서 화살을 쏘며 부정을 물리치는 몸짓을 펼치고 있다.
경북 포항 수용포 수방굿의 한장면. 81년 무당인 김석출 양중이 해변에서 서낭대를 흔들며 망자의 혼을 부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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