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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내부 소통 시급한 국립중앙박물관

등록 2016-04-13 21:45

울림과 스밈
“한마디로 ‘모르겠어’라고 할 수밖에요. 우리와 전혀 다른 세상 일인데…”

10일 관객수 15만여명을 기록하고 끝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서양명품전 ‘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에 대해 박물관 사람들은 무관심 일색이었다. 지난 연말 개막한 이 전시는 유럽 소국 리히텐슈타인의 왕실 컬렉션을 직수입해 꾸려졌다. 루벤스, 반다이크 등 바로크시대 북구 거장들의 그림과 고가구, 직물 등 120여점을 서구 일류미술관 같은 고급한 전시공간에 선보였지만, 내부에서는 뒷담화조차 듣기 어려웠다.

사실 지난해 중앙박물관이 대표전시로 선보였던 기획전들은 모두 고만고만했다. 앞서 치러진 ‘고대불교조각대전’(지난해 9~11월)은 학예실 인력이 총동원되어 아시아권 고대불상 명품들을 한자리에 끌어모으는 유례없는 작전을 펼쳤지만, 관객은 7주간 3만을 넘는 정도에 그쳤다. 비엔날레급 운영 비용인 10억여원의 세금이 들어갔지만 외형상 성과는 미미했다. 폴란드와의 수교 25주년을 맞아 열린 ‘폴란드, 천년의 예술’(지난해 6~8월)전도 내부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끝났다.

고대불교조각전은 학계, 언론 등에서 지적을 받았다. 한국, 중국, 인도 등의 불상 명품들이 많았는데도 극적인 이야기가 없고 보고문 같은 건조한 설명과 구성으로 맥을 못살렸다는 비판이었지만, 학예사들 생각은 달랐다. 연구 역량을 쏟아 구하기 힘든 컬렉션들을 갈무리했는데, 맥락 없는 서구 명품전이 여름·겨울방학 성수기를 잠식해 그 사이에 끼이면서 전시를 제대로 소개할 여건이 안됐다는 말이다. 자체 기획한 전시는 대중들이 외면하고, 외국에서 들여온 전시는 내부 전문가들이 고개를 돌린 격이다.

따져보면,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김영나 전 관장이 2011년 취임 이래 의욕과 취향을 앞세워 숱하게 내놓은 서구명품전들은 내부 학예직들과 괴리가 컸다. ‘미국미술 300년’전(2012), ‘터키 문명’전(2012), ‘오르세미술관’(2014)전, ‘폼페이’전(2014) 등을 유치하면서 관객동원 면에서 성과도 올렸지만, 기획사 수입 전시여서 학예사를 위한 학술교류는 빈약했다. 내부 전시역량 강화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반면, 상설관에서 열린 ‘사당리 고려청자’전(2015),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2014), ‘한국의 도교문화’전(2013) 등은 의미나 완성도에서 손색이 없는데도 서구명품전에 눌려 조명받지 못했다고 학예사들은 지적한다. 우아한 명품과 세련된 디자인 공간으로 박물관을 탈바꿈시키려던 김 전 관장의 시도는 결국 좌초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05년 용산 재개관 이래 중앙박물관에선 관장들의 전시정책이 실적주의로 기울어져, 스토리텔링 등의 전시담론 논의는 뒷전이고 상명하달식 기획전이나 학예직들의 전공 이론에 치중하는 권위적 관행이 이어져왔다. 서구 미술관들에서 ‘관계 미학’ 등 사회적인 전시담론과 시스템 개혁이 활발히 논의되어온 상황에 견줘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노형석 기자
노형석 기자
이영훈 신임 관장은 손꼽는 큐레이터다. 경주 관장 시절 수장고 발굴, 보존과학 등을 활용해 천마도의 회화적 가치를 새롭게 밝혀내 알렸고, 황남대총 출토품들을 진열장에 쏟아내는 등의 발상 전환으로 문화재 전시의 새 전형을 일궈냈다. 취임 뒤 직원 상견례에서 “전시는 여러분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나를 활용해달라”고 했던 그다. 초심대로 전시에 드리운 소통 장벽을 차근차근 허물기 바란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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