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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문화정책 ‘WTO 시장독재’ 탈출구 마련

등록 2005-10-24 18:52수정 2005-10-25 11:03

문화정책 ‘WTO 시장독재’ 탈출구 마련-전문가 좌담
문화정책 ‘WTO 시장독재’ 탈출구 마련-전문가 좌담
깃발 올린 문화다양성협약 - 전문가 대담

지난 20일 유네스코 총회에서 회원국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채택된 ‘문화다양성협약’은 신자유주의의 깃발 아래 가속화돼온 문화의 획일화, 미국화 현상에 제동을 걸기 위해 전세계가 힘을 합쳐 출범시킨 국제규범이다. 시장 논리 아래 비관세장벽으로 간주되던 각국의 문화지원정책을 국제법적으로 보장하는 이 협약의 의미와 실효성, 전망을 짚어보는 대담을 마련했다. 국제정치학자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박덕영 숙명여대 교수, 문화다양성협약 통과를 위한 세계 문화시민단체 연대활동에 적극 나섰던 세계문화기구를위한연대회의(세문연) 양기환 집행위원장이 대담자로 참석했다.

‘획일적 미국화’ 저지 법적보장 의미
한류에 부정적 영향 준다는 건 기우
미국이 반대표 던져 무용지물 우려?
한쪽만 비준해도 효력…결국 의지 문제

양기환=국제 사회가 주권국가의 문화정책 수립 자주권을 국제법으로 보장했다는 게 문화다양성협약의 가장 큰 의미다. 두번째로는 문화상품과 문화서비스가 다른 상품과 달리 갖는 특수성을 인정하는 온전한 협약이 마련됐다는 의미도 크다. 더불어 세계무역기구(WTO)라는 무소불위의 권력 아래 삶의 모든 영역이 시장화 돼가는 추세에서 문화 영역이 처음으로 떨어져나오면서 교육이나 의료, 공공서비스가 시장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박덕영=문화다양성 협약의 방점은 ‘문화’에 있다. 통상에서 세계무역기구와 같은 국제 규범이 문화에는 부재했다. 그래서 무역과 문화가 충돌하면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었는데 그것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 규범을 통해서 자국 내에서 다양한 문화 지원 정책이나 재정적 지원을 세울 법적 근거도 확보됐다.

미국, 국제정치적으로 완패

이해영=70년대 이후 국제정치에서 글로벌 거버넌스, 즉 국가보다 상위에 있는 범세계적 통제망을 세우는 문제가 중요한 화두였다. 특히 문화분야에서 국제적인 규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는 시점에서 문화다양성협약이 글로벌 거버넌스를 마련하는 기초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또 2차 대전 직후 여러 국제협약에서 이견을 보여온 미국과 유럽의 대결구도에서 처음으로 미국이 완패한 사건이기도 하다. 물론 이번 승리가 경제구도의 재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협약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되지만 과대평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문화정책 ‘WTO 시장독재’ 탈출구 마련-전문가 좌담 참석자
문화정책 ‘WTO 시장독재’ 탈출구 마련-전문가 좌담 참석자
=문화다양성협약이 한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거라는 의견이 있다. 이건 협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미국이 이 협약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지배를 염두에 둔 것이다. 과연 한류가 할리우드 영화처럼 다른 나라의 문화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로 아시아 방송이나 영화시장을 독식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의 문화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처럼 우리가 다른 나라의 문화다양성을 훼손하는 것 역시 반성해야 할 문제다.


=문화다양성협약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에 대해 아직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협약의 2조8항은 개방과 균형의 원칙을 명시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류를 얄팍한 상술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상업적 이익을 얻는 만큼 균형있게 우리 역시 다른 아시아 문화와 의식 등을 균형있게 받아들이도록 개선해야 한다. 혐한류의 공세를 받으면서 단기적인 이득을 노리는 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한류가 안착 되게끔 하려면 문화다양성협약은 더욱 긴요한 것이다.

=결국 문화다양성협약이 한류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주장에는 패권주의적 냄새가 짙다. 이런 논리라면 아시아 시장을 대상으로 한류가 작은 패권을 쥘 수는 있겠지만 결국 막강한 대자본을 동반한 미국의 패권주의에 방송이나 게임 등의 더 큰 시장을 모두 내어주는, 소탐대실의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스크린쿼터를 중심으로 문화다양성협약이 해석되면서 세부 조항들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묻히는 경향이 있다. 협약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게 2조의 주권 원칙이다. ‘자국 영토 내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 증진하려는 정책을 채택하는 주권적 권리를 가진다’인데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시장의 독재에 국가가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영화 뿐 아니라 음악, 미술 등 모든 장르의 예술을 포괄하고 이것의 창작과 배포, 나아가 소비자의 향유까지 모두 문화적 표현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보조금등 ‘주권적 권리’ 인정

=문화다양성 보호에 있어 시민사회의 참여를 명시한 11조를 주목했으면 한다. 또 개발도상국의 문화상품과 예술가들에게 우선적 대우를 보장하는 16조도 원안에서는 없었다가 추가된 부분이다. 국제 문화다양성 기금 설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18조는 문화다양성협약이 선언적 의미를 뛰어넘는 것임을 보여준다.

=협약 초안 작성 때 가장 많은 논쟁을 유발했던 20조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해석의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조약과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이 조항에는 ‘상호지원성’ ‘보완성’ ‘비종속성’ 등의 단어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모순 되는 것들을 한 조 안에 구겨넣은 셈인데 20조의 핵심은 ‘비종속성’에 있다고 본다. 문화다양성협약이 다른 통상조약들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협약의 기본취지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까지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까지
=20조 1항은 다른 조약을 해석하거나 채택할 때 이 협약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해놓고 2항은 당사국이 가입한 다른 조약상의 권리와 의무를 수정하는 식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조화롭기 힘든 이야기인데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이렇게 모호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찬성표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문화와 통상이 충돌할 때 이 부문이 어떻게 해석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 진행돼온 무역과 환경 부문의 충돌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이런 사안에서 세계무역기구는 통상에 유리하도록 해석해왔지만 국제사회에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성장하면서 과거보다 환경친화적인 쪽으로 해석되고 있다. 따라서 문화다양성협약을 많은 나라에서 비준하고 그 중요성을 공유할수록 친문화적으로 해석할 여지는 높아진다.

=나는 전혀 다른 의견이다. 만약 모호했다면 오랫동안 논의 과정을 지켜보고 의견을 개진해온 문화단체들이 이 협약을 동의하거나 환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거세게 반발했던 이유도 이 협약이 기타 통상협상에 있어 문화의 독립성을 명시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통상조약들은 문화에 대한 명백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전범을 제시한 이 협약과 충돌할 여지가 없다. 또 그렇기 때문에 문화에 대해서는 이 협약이 우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의 문제는 협약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에 이 협약이 무용지물이다 라고 하는 식의 왜곡되고 패배주의적인 담론이 아닐까 싶다.

정부, 협약의 정신 존중을

=정관계, 학계에 미국만이 살길이다라는 식의 태도가 있다. 이건 전략이 아니라 일종의 신앙이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마저 미국 등을 돌린 문화다양성협약은 마치 ‘문화의 이라크전’처럼 미국에게 늪처럼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 기회에 한국 정부도 지금까지의 대미 지역 외교 편중에서 벗어나고, 분야도 군사 편중에서 문화나 환경쪽으로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새로운 외교적 실험을 모색해야 한다.

=일단 정부가 협약 채택에 찬성했으면 협약의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 또 이 협약을 통해 영화 뿐 아니라 방송이나 순수예술 등 다양한 문화 분야의 실익이 커질 텐데 그것이 골고루 향유 되기 위해서는 문화계 전반에서 이 협약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지해야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정리·김은형, 전정윤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김태형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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