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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조영남 ‘대작’ 사건이 말하는 것

등록 2016-05-18 18:59수정 2016-05-18 20:26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울림과 스밈
“예술품이란 단지 선택만 할 수도 있다.”

20세기 미술의 혁명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이 변기를 자기 작품으로 내세우며 던진 말이다. 어떤 세상사물이든 ‘저거 예술이야’라고 짚기만 하면 손하나 까닥 안해도 예술이 된다는, 궤변에 가까운 말이다. 그는 1917년 미국 뉴욕 독립예술가협회 전시에 남성변기를 출품했다. 그가 선택한 변기가 예술품이 맞는가를 놓고 협회 내부에서 논란 끝에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변기는 전시장에서 쫓겨났지만, 뒤샹의 기행은 20세기 현대미술의 바다로 가는 물꼬가 되어 후대 작가들의 의식과 작업을 바꿨다. 손이나 몸을 놀려 작업하지 않아도 무언가 독창적인 개념, 아이디어만 꺼내들면 다 예술이 된다는 담론은 작가들의 활동영역을 무한대로 넓혀준 자유정신의 복음이 된다. 역사와 인물, 풍경 재현에 급급하던 미술은 뒤샹이 열어놓은 개념과 인식의 혁신 덕분에 훨씬 풍성하고, 강력한 모더니즘으로 발전했다.

화투짝, 바둑판을 그린 자기 그림을 팝아트로 주장해온 가수 조영남씨는 뒤샹의 팬을 자처해온 연예인이다. 그가 무명화가한테 수백여점을 대신 그리게하고 자기 작품으로 시장에 팔아왔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특히 “조수가 대신 그리게 하는 것은 오랜 미술계 관행”이라는 그의 발언이 공분을 샀다. 뒤샹의 변기 이래로 여러 전위작가들의 ‘인정투쟁’을 거쳐 오늘날 미술가들이 그리거나 깎거나 만들고 조립하는 작업들을 조수나 보조작가들에게 맡기는 건 불법, 편법, 위법이 아니다. 백남준, 앤디 워홀, 애니쉬 카푸어, 제프 쿤스, 데이미언 허스트 등 많은 대가들은 작업 동기나 발상의 파격성, 창의성 등으로 승부하고 평가받으며, 작업 세부는 보조작가나 도제들에게 맡기는 것이 관행이다. 국내 원로, 중견, 소장작가들도 그런 이들이 꽤 많다. 내 작업에 다른 도제, 보조작가들이 협업했다고 고지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조씨 그림 속 캐릭터·아이디어들이 색깔, 구성 따위의 전통적인 세부를 따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가 하는 문제다. 조영남표 팝아트 이미지들이 미술계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영향을 주느냐는 이야기다. 조씨는 73년 첫 전시 이래 수십차례의 개인전·단체전을 하며 돈을 벌었다. 화투짝 그림이라는 고유의 도상도 갖고 있지만, 그의 작가적 명성은 방송물에 숱하게 나가고 툭하면 스캔들을 일으키는 연예인 위상에서 나온다. 미술판에서 화가 혹은 크리에이티브(창의적 제작자)로서 그의 역량을 인정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물론 평론가 일부는 그림 내공이 상당하다는 평가도 한다).

노형석 기자
노형석 기자
사건이 커진 건 검찰은 ‘대작(代作)’사건이라며 사기혐의를 걸었기 때문이다. 뒤샹의 변기 이래 20세기 현대미술사는 시각예술이 모든 속박을 털고 개념과 정신의 자유를 확대하가는 과정으로서 인식되어 왔다. ‘작품이 별로다’, ‘작업 대신 사업을 한다’ 등의 비난과 질타는 나올 수 있어도, ‘왜 속여 파느냐’, ‘조수에 저작권을 줄 수 있느냐’ 등의 논란이 검찰, 언론에서 부각될 성격은 아니다. 연예인 작가에 대한 수사로 뒤샹이 확장시킨 현대미술사의 지평을, 뒤틀린 방식으로 대중이 인식하게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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