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여림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쓸쓸하고 비감어린 시들 많아
쓸쓸하고 비감어린 시들 많아
등단 3년만에 요절한 시인 여림(본명 여영진, 1967∼2002)의 모든 시가 한 권의 유고전집으로 묶여 출간됐다.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뒤 제대로 된 시집 한 권 내지 않은 그는 생전에 크게 주목받을 기회가 없었지만, 고인의 1주기에 지인들이 그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시 110여 편을 담은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라는 시집을 펴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대부분의 시집이 그렇듯 초판 출간 후 금세 절판됐으나, 입소문을 타고 그의 대표적인 시들이 문학 팬들 사이에 전해지면서 이 유고집은 전설 속의 책으로 남았다. 출판사 ‘최측의농간’은 지난해부터 절판된 유고집 복간 작업에 들어갔다가 이 책에 실리지 못한 미발표 원고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시인이 남긴 글을 모두 모아놓은 유고전집을 기획,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이란 제목으로 최근 출간했다.
이 유고전집에는 시인이 남긴 시 외에 메모, 수필, 편지 등 산문도 여러 편 실렸다. 스승이었던 최하림 시인과 박형준 시인이 고인을 그리워 하며 쓴 글도 담았다. 서울예술전문대학을 다닌 여림 시인은 스승 최하림 시인의 이름 끝자를 따 필명을 여림으로 지었다고 한다.
서늘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도 있지만, 이른 죽음을 예고하듯 끊임 없는 외로움, 침묵과 싸우는 쓸쓸하고 비감 어린 시들이 많다.
“즐거운 나날이었다 가끔 공원에서 비둘기 떼와/낮술을 마시기도 하고 정오 무렵 비둘기 떼가 역으로/교회로 가방을 챙겨 떠나고 나면 나는 오후 내내/순환선 열차에 앉아 고개를 꾸벅이며 제자리걸음을 했다/(…)//이력서를 쓰기에도 이력이 난 나이/출근길마다 나는 호출기에 메시지를 남긴다/‘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실업’ 중) “종일,/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근데 손뼉을 칠만한 이유는 좀체/떠오르지 않았어요.//소포를 부치고,/빈 마음 한 줄 같이 동봉하고/돌아서 뜻모르게 뚝,/떨구어지던 누운물.//(…)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중)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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