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탈리아관(주제관)과 아르세날레관의 들머리에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총감독이 꾸린 재활용 공간들. 지난해 비엔날레에 쓰인 석고보드 폐자재를 외벽에 쌓아올리고, 아르세날레관의 경우 천장에서 100톤 가까운 금속새시 폐자재 다발들을 커튼처럼 늘어뜨렸다.
2016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에 스페인관
금융위기 때 짓다 만 건축물 조명
독일·그리스관은 난민 가옥 설계
폐자재 100톤 활용한 이탈리아관
척박한 사회적 환경 건축에 반영
서울 다가구주택 전시한 한국관
수상엔 실패했지만 호평 줄이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에 스페인관
금융위기 때 짓다 만 건축물 조명
독일·그리스관은 난민 가옥 설계
폐자재 100톤 활용한 이탈리아관
척박한 사회적 환경 건축에 반영
서울 다가구주택 전시한 한국관
수상엔 실패했지만 호평 줄이어
이제야 말문이 터진 듯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건축과 건축가들은 낮은 자리에서 대중에게 속내를 탈탈 털어놓았다. 재활용 쓰레기로 엮은 인도의 빈민가옥, 테라스·계단까지 방처럼 돌변시킨 서울의 다가구주택, 무인공격기 폭격을 맞은 파키스탄 민가의 폐허가 된 거실 등이 세계 건축의 전당에 속속 입장했다.
2년마다 전세계 동시대 건축의 흐름을 거두어 보여주는 잔치인 ‘2016 베네치아비엔날레’ 건축전은 놀랍고도 반가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28일 공식개막한 전시들은 디자인의 그늘 아래 묻혔던 건축 이면의 사회적 진실들이 모처럼 메아리를 울려내는 자리였다. 사람들이 선망했던 첨단·명품 건축은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건축물을 구성하는 날것 그대로의 부재들과, 건물을 몸소 지어온 장인, 서민들의 인간적인 사연이 전시장을 메웠다. 여기에 난민·전쟁· 경제위기 등 지금 세계 건축가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정치 사회적 조건들을 토로하는 각 나라 현장 건축가들의 ‘보고’가 함께 올라왔다.
자르디니 공원, 시내 수로변 곳곳에 흩어진 수십여개 나라의 국가관 전시들과 옛 조선소인 아르세날레의 본전시는 대개 공통점이 보였다. 바로 건축 구상과 설계, 건립, 입주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람, 공동체의 교감, 소통, 연대를 구체적인 팩트(사실)들로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전시총감독인 칠레의 사회적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제안한 ‘전선(前線)에서의 보고’(Reporting from the Front)란 총주제는 그만큼 흡입력이 컸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언제나 새로운 관점으로 최전선에서 건축의 지평을 넓히도록 분투해야한다는 그의 구호에 국가관과 본전시 작가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특히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가 총감독을 맡은 한국관의 전시는 ‘용적률 게임’을 주제로 우리 도시 건축의 왜곡된 흔적인 변두리 증개축 건물들을 국제무대에 당당히 내놓아 세계 건축계에 강한 인상을 심었다. 김 교수와 5명의 보조기획자들은 대지면적에 대한 연면적(건물바닥면적의 합)의 비율인 용적률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건축주, 업자, 건축가들의 벌이는 욕망의 게임을 실제 서울 변두리의 다가구, 다세대, 주상복합 상가건물들의 모형과 실제 주택가 사진들을 통해 그대로 보여주고, 용적률 신드롬의 사회적 배경을 통계적인 분석과 정연두, 백승우 작가의 영상과 사진 이미지들로 풀어냈다. 2014년 건축전 당시 ‘한반도 오감도’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국관은 올해 연속수상에 실패했지만, 역대 건축전 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성과를 올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건축가 최문규씨는 “한국 건축공간의 실질적 기반이면서도 건축계에서 외면했던 증개축 건물들을 건축담론으로 처음 끌어들여 성공적으로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획기적 의미를 지니는 전시”라고 했다. <뉴욕타임스>가 비엔날레에서 놓치지 않아야할 6개 전시 가운데 하나로 지면에 소개했고, <르몽드>를 비롯한 20여개 해외언론의 심층취재가 이어질 정도로 전시에 대한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다른 나라 국가관 전시들도 대체로 자기 나라의 건축이 놓여있는 제각기 다른 사회적 환경과 현상들을 특색있게 보여주었다. 28일 개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스페인관은 ‘끝나지 않은(Unfinished)’이란 주제 아래 2000년대 금융위기 당시 짓다가 방치된 건축물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이 미완성된 건물들에서 새로운 역동성, 생성의 가능성을 읽어내 절찬을 받았다. 영국관은 ‘가정경제’를 주제로, 영국 가정집의 집기, 시설 등을 일부 기능이 제거된 모습으로 옮겨와 일상의 휴식공간으로 고정된 가정집의 고정관념을 깨고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가정의 요소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독일과 그리스는 각기 자국 국가관에서 몰려드는 난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건축 적인 복안과 현실적인 난민가옥의 설계, 장기적인 공존 가능성 등에 대한 탐구를 펼쳐놓았다. 전시장을 관객석이 있는 극장으로 만들어놓고 난민문제와 관련한 퍼포먼스와 공연을 펼친 그리스관의 개막식은 인상적이었다. 또 벨기에관은 건축물에서 잊혀지게 마련인 내부 벽이나 금속접합부, 각종 환기 장치 등의 실제 부재들을 이 부재들이 들어간 건축물 전체 사진과 함께 배치해놓고 연필글씨로 설명을 적어 이 부재들이 독백하는 듯한 시적인 구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라베나가 기획한 이탈리아관의 주제전이나 아르세날레의 본전시는 명확한 개념으로 사회적 건축의 현상과 건축가들의 분투를 담아낸 수작들이 적지않았다. 우선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아라베나가 직접 작업한 두 전시장 들머리 공간이었다. 그는 지난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전에 쓰인 석고보드, 금속제 섀시 따위의 폐자재 100톤을 재활용해 두 공간의 외벽을 쌓아올렸다. 아르세날레관의 경우 이런 외벽 내부에 천장에서 휘장 같은 금속부재들을 늘어뜨리는 공간까지 연출하면서, 미학보다 사회적 관계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신의 방향성을 명쾌하게 드러냈다. 중국 지방도시에 옛 주택들을 보전하는 조건으로 미술관을 설계해주고 주민과 함께 주택 보존을 위한 건축적 노력을 기울여온 건축가 왕슈는 프로젝트에 쓴 벽돌 등의 전통 건축재들을 차분하고 소탈한 분위기로 전시했다. 태양광을 연상케하는 조명 작업을 건축적 구도에 연결시킨 트랜솔라 그룹의 빛건축 구조물이나 쇠똥이나 흙으로 표면을 마감한 인도뭄바이의 생태건축 프로젝트도 관객의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었다. 아르세날레 전시장의 핵심부에는 한반도의 미래 건축 구상도 담론의 일부로 자리를 잡았다. 건축거장 페터 춤토르의 패브릭(섬유) 건축과 같은 공간에 자리잡은 설치작가 최재은씨와 일본 건축가 반시게루의 한반도 비무장지대 ‘꿈의 정원’이 화제의 작품으로, 아라베나를 비롯한 다수의 국외 건축거장들로부터 ‘환상적’이란 찬사를 받았다. 어둔 공간에 새소리가 울리는 대나무 숲길이 펼쳐지고, 숲 너머 안쪽에 공들여 찾아낸 한반도 분단사의 미공개 필름들과 철조망 조각과 분단 과정에 대한 아카이브 진열장이 함께 보여지는 이 작품은 한반도의 현실을 아련하면서도 아프게 상기시켰다. 이밖에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서미군 무인폭격기 드론의 공격으로 무고한 현지 주민들 가옥이 입은 건축적 피해상과 폭탄의 투하 각도, 파괴 범위를 건축적 차원에서 샅샅이 분석한 ‘포렌식아키텍처’ 프로젝트와 빈민노점상의 영업 보장을 위한 남아프리카 건축가들의 고가 도시계획안 등이 주제와 맞춤하는 신선한 콘텐츠로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이번 비엔날레 포스터와 안내 책자엔 60년대 페루의 나스카 평원의 거대한 조류가 그려진 그림을 탐사한 독일의 여성학자 마리아 라이체의 작업사진이 나온다. 은제사다리를 올라타고 땡볕아래 드넓고 삭막한 평원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모습이 찍힌 이 사진은 유명한 여행작가 브루스 채트윈이 찍은 것이다. 어떤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의식하기보다 현실 자체에서 변화와 비약의 가능성을 보고 사회, 인간과 교감하며 끊임없이 건축적 가능성을 실험하자는 아라베나와 비엔날레 기획진의 의지를 담은 상징이기도 하다. 나중에 결국 나스카에서 거대한 조류 그림들의 흔적을 찾아내 잉카제국의 불가사의를 확인한 마리아처럼 지금 세계 공간에 새겨진 복잡다단한 건축적 현상과 사건의 단면들을 전시는 두루 조망하는데 성공했다. 현장을 돌아본 건축이론가 황지은 서울시립대 교수는 “건축이 계몽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하는 문화이자 삶이란 것을 역대 어느 전시보다 적절하게, 절실하게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베네치아/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2. 이탈리아관(주제관)과 아르세날레관의 들머리에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총감독이 꾸린 재활용 공간들. 지난해 비엔날레에 쓰인 석고보드 폐자재를 외벽에 쌓아올리고, 아르세날레관의 경우 천장에서 100톤 가까운 금속새시 폐자재 다발들을 커튼처럼 늘어뜨렸다.
3. 국가관상을 받은 스페인관 전시장. 경제위기 이후 미완성으로 남은 건축물들의 재생 가능성을 탐구해 눈길을 모았다.
4. 대나무 정원과 최재은 작가가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와 협업해 본전시에 선보인 설치영상 작업 ‘꿈의 정원’.
5. 화제를 모은 벨기에관. 특정 건축물들의 사진과 주목받지 못했던 이 건물들의 벽돌, 벽, 환기시설 등 실물이 함께 전시돼 건물의 조각들이 독백을 하는 듯한 구성으로 호평받았다.
6. 아르세날레 전시장 안으로 빛살들이 비처럼 내리꽂히는 ‘트랜솔라’의 설치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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