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인 디즈니 뮤지컬 <뉴시즈>. <한겨레> 자료사진
미 신문팔이 소년 파업실화 ‘뉴시즈’
브로드웨이 흥행비해 국내 반응 저조
미생·카트 이후 노동다룬 작품 안보여
브로드웨이 흥행비해 국내 반응 저조
미생·카트 이후 노동다룬 작품 안보여
“노조 가입하러 가야겠다.” 이 뮤지컬 후기는 이런 식이다. 팬들끼리는 서로 ‘노조원’이라 부른다. 지난 4월 무대에 오른 뮤지컬 <뉴시즈>는 19세기 말 미국 뉴욕 신문팔이 소년들의 파업 실화를 다룬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지만 이들은 거대 신문사를 상대로 2주간 파업을 벌여, 이겼다. “근로자의 권리를 존중하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 맞서 싸워라” 같은 날선 대사와 ‘파업’ 두 글자를 커다랗게 박은 피켓들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애초 디즈니 뮤지컬로 많이 홍보됐지만 뮤지컬은 생각보다 묵직하게 미 근대노동사의 한 순간을 다룬다. 브로드웨이에서 학생용 역사교육 콘텐츠로도 활용됐던 이유다.
국내 반응은 예상에 못 미친다. 제작사 쪽은 “브로드웨이 반응과는 확실히 다르다.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의 차이가 한몫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스타 캐스팅의 부재, 역사적 맥락의 차이, 파업에 대한 인식 부재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파업을 소재로 한 대형 상업 뮤지컬이 한국에서 ‘대박’을 치기에는 벽이 여전히 높다는 분석이다.
잇단 구조조정과 고공농성,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한국의 현실은 ‘노동자 잔혹시대’다. 그런데 정작 노동 현실을 다룬 대중문화 작품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마트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영화 <카트>(2014)나 웹툰에서 드라마로 옮겨진 <미생> <송곳> 정도가 떠오른다. 문화비평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 등을 대중들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게 된 시점이 오면서 대중문화도 이를 다루기 시작했다”면서도 “<미생>도 결국 화이트칼라 이야기고, 다른 드라마들도 대기업 비정규직 문제만 다루면서 하청에 하청을 거친 가장 열악한 노동 현장은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노동자 의식’을 부담스러워하는 한국적 정서에서 “리얼리즘이 강할수록 문화적 소비는 줄어든다”고 진단했다. 사실 <미생>의 큰 반향 또한 100% 날것의 현실은 아니었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옅게나마 깔린 판타지의 색채 덕에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 마음 편히 몰입할 수 있었으리라는 얘기다.
연극판은 어떨까.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반도체 소녀> <노란봉투> 등이 무대에 올랐다. 파업을 빌미로 회사가 던진 손배·가압류 ‘폭탄’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린 <노란봉투>의 이양구 연출은 “공연 준비할 때 배우들조차 노동자 역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돌이켰다. 대학 시간강사인 자신도 스스로 ‘비정규직 노동자’라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깨달았다. 이 연출은 “앞으로는 일상생활 자체를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민도 있다. 1946년 화순탄광사건을 다룬 뮤지컬 <화순>의 류성 연출은 “노동 주제 대본 쓰기가 쉽지 않다. 노동 환경이 너무나 달라졌다. 사장과의 싸움에서 지금은 누가 나를 착취하는지 애매한 상황 아닌가”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눈길은 이제 구의역을 뒤덮은 무명씨들의 포스트잇 메시지를 향한다. 이양구 연출은 “구의역 사고야말로 앞으로 연극이 포착해야 할 장면”이라고 했다. 이택광 교수는 “특히 20~30대가 나와 관련된 문제임을 발견하고 있다”며, ‘구의역’ 현장이야말로 대중문화가 대중의 공감을 바탕으로 긴급하게 담아내야 할 지점이라고 바라봤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회사가 던진 손배·가압류 ‘폭탄’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린 연극 <노란봉투>.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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