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유혹’이 있어 우리 삶이 아름답고 윤택해지죠”

등록 2016-06-19 18:46수정 2016-06-19 19:16

[짬] 재미 에세이스트 이서희씨

서울법대 졸업 뒤 파리 ‘영화유학’
미 할리우드 살며 SNS 글쓰기
두번째 저서 ‘유혹의 학교’ 펴내
한겨레 토요판 연재물 등 모아

여자로 사는 삶의 ‘파란만장함’
달콤쌉싸름한 연애담 등 독자유혹
‘유혹’이란 열쇳말로 자기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이서희(43·사진)씨의 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가 높다. 이씨가 쓴 사랑과 매혹의 이야기는 호오를 떠나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았고, 책으로도 이어졌다. 최근 나온 <유혹의 학교>(한겨레출판)는 그의 두번째 에세이집이다. 미국 할리우드 지역에 살면서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했던 글 20편을 포함해 그동안 써두었던 글들을 가려 뽑고 다듬어 묶었다. 책 출간과 더불어 서울을 찾은 이씨를 지난 1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소신을 뚜렷이 얘기했지만, 쑥스러움도 많았다.

재미 에세이스트 이서희씨
재미 에세이스트 이서희씨

왜 ‘가정주부’ 이씨는 글쓰기의 세계로 자신을 던져야 했을까.

그는 “나의 말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3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소피 빌(Sophie Ville)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2013년 가을 첫 책을 냈다. ‘이서희’도 필명이다. 이름은 본명이되, 성씨만 다른 것으로 고쳤다. ‘다른 서희 아닌 (바로) 이 서희’란 뜻도 담고 있다.

유혹이라는 열쇳말을 잡은 것도 그의 삶이 반영된 선택이었다. 보수적인 아버지를 비롯해 ‘조신한 여자’를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여러 억압 속에 자란 그는 프랑스 유학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고 최대한 자유를 누리며 치유를 받았다”고 했다.

“여자가 상대를 유혹하면 불경스럽고 불행한 결과가 초래된다며 죄를 뒤집어씌우는 서사가 많잖아요? 예전부터 나도 모르게 내 행동을 제약하고 살았던 것과 달리 프랑스 유학을 가서 만난 한 친구가 ‘여기는 유혹에 기초를 둔 사회이며 서로를 유혹해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해주더군요.”

그는 ‘유혹’이 인간 기원부터 함께해온 활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는 것은 유혹 그 자체와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혹은 딱히 다른 사람을 성적으로 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건을 살 때, 계약할 때, 정치인이 대중에게 호소할 때도, 가수가 노래할 때도 모두 상대를 유혹하려는 일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개인사에 집중한 첫번째 책과 달리, 이번 책에는 유혹에 기반을 둔 소통과 배려가 얼마나 소중하고 매혹적인지 들려주는 에피소드가 많다. 사람 사이에 서로 매력을 드러내고 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우리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하는지 깨달은 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책은 에로틱하지만, 사실과 허구를 오가기 때문에 ‘위험한 경계’를 넘어서지는 않는다. 자신의 책을 ‘에세이’로 분류하는 것도 사실 부담스럽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고백 같은 자기 경험과 더불어 ‘팩션’ 같은 부분을 의도적으로 많이 배치한 까닭이다. 덕분에 흥미롭게 읽히긴 해도 소설인지 지은이의 실제 경험담인지 헷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유혹적인 글을 쓰려고 팩션 같은 느낌을 주려 했습니다. 기억은 항상 ‘내 식’으로 변형되고 굴절되잖아요. 상상이 덧붙으면 허구가 될 수도 있구요. 100%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도 없고, 제 기억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라고 읽어주시면 좋을 듯해요.”

어릴 때부터 “반골 기질에 강단 있는 성격”이었다. 남자아이들이 ‘아이스케키’라며 치마를 들추어 올리면, 남자아이들의 바지를 벗겨버리기도 했다. 어른들은 ‘관심의 표현’이라며 참으라고 했지만 납득하기 힘들었다. 점점 자라면서 자아가 생겼을 땐 ‘좋은 여자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칭찬하는 ‘좋은 여자’가 되는 건 너무 힘든 길인 듯 느껴졌다는 얘기다. “어렸을 때부터 절대 남자들로 인해 내 삶이 결정되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죠.”

남성을 유혹하고, 유혹당하는 달콤쌉싸름한 연애담뿐 아니라,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가 이번 책에 담긴 것도 필연이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해서가 아니라, “여자들의 목소리를 잃게 하는 사회” 속에서 여자라면 누구나 삶을 통해 여자로 사는 것의 파란만장함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남자들의 관점이라서 여자들은 이건 내 얘기가 아니야 하고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표현을 봐도, 아무것도 아닌 여자에게 알게 해주었다는 식이잖아요. 자기 삶을 자기 언어로 말하게 되면 달라지죠. 발화하는 순간 의미가 부여되고 자존감이 높아지거든요. 전, 발화의 힘을 믿는 편이에요. 모든 여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써보는 일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