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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사대부 규수들 ‘왕의 여인’ 되기 꺼렸다”

등록 2005-10-27 17:40수정 2005-10-27 17:40

대비나 왕비의 무병장수를 비는 왕가 의례. 화려한 왕가 행사에 동원된 천민 여성들은 답례로 신분 상승을 약속받기도 했다.
대비나 왕비의 무병장수를 비는 왕가 의례. 화려한 왕가 행사에 동원된 천민 여성들은 답례로 신분 상승을 약속받기도 했다.
‘조선왕실의 여성’ 특별전 평생 구중궁궐에 갖힌 여인네들 삶 엿보기
조선 왕실의 ‘뒷방 마님’으로 평생 구중궁궐에 갇혀 산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정사에 비해 홀대받던 여성 생활사에 대한 전시가 인기를 끄는 요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2005 장서각 특별전: 조선왕실의 여성’을 11월18일까지 연다. 전시에서는 왕가와 혼인·혈연관계로 살았던 옛 여성들의 생애와 문화를 다룬 자료 12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물품은 왕가 여인의 삶을 둘러싼 각종 의례에 대한 기록과 복식 등이 대부분이다. 주제는 왕가의 여성이 되는 절차인 책봉과 가례, 출산과 안태(탯줄보관), 의례와 행사, 교육과 여가, 장례의식까지 모두 다섯 갈래다.

특히 장서각에서 보관해온 왕가의 출산 기록 <호산청 일기>를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해 눈길을 끈다. 이 일기는 영조의 친모인 숙빈 최씨가 희빈 장씨와 권력 다툼을 하면서 영조를 포함한 세 아들을 출산한 한문 기록이다. 호산청은 후궁의 출산을 한달여 앞두고 왕가에 설치한 관청. 왕비가 잉태했을 때 꾸리는 산실청에 비해 한단계 낮다. 왕실 여성의 출산은 왕가의 대를 잇는 의례였을 뿐 아니라 미래 국가의 안위까지 결정짓는 중대사로 다뤘다.

출산과 산후조리에 대한 한글 지침서 <림산예지법>도 선보인다. 이 기록을 보면 예전 왕가의 출산 전통은 오늘날과 차이가 있다. 진통을 시작한 산모는 천천히 걸어다니며 골반을 이완시키고 너무 일찍부터 배에 힘을 주지 않도록 주의했다. 산모의 자리엔 짚으로 된 깔개를 덮고 붉은 부적을 준비해 액운을 쫓았다. 신생아는 놋대야에 매화, 오얏뿌리, 호랑이 머리 삶은 물로 목욕시켰다. 갓 태어난 아이가 울지 않을 때는 황련감초탕이나 꿀물 등 탕제로 입안을 적셔 태독을 제거했다고 한다.

산후조리 때는 산모의 몸을 너무 덥거나 춥지 않게 했다. 미역국은 산모의 출산 뒤가 아니라 출산 전 한달께부터 먹였고, 물도 함부로 마시지 못하게 했다. 출산을 앞두고 목이 마를 땐 물 대신 묽은 미음을 진상했다. 산모의 소화에 도움이 되도록 기름진 음식, 마른 음식 등도 삼갔다. 출산을 돕는 여성에 대한 규정도 있어 산파는 어리고 경박한 여성 대신, 나이 많고 유식하고 순한 사람을 골랐다.

일상사에서 궁중 여성들은 다소 답답한 생활을 했다고 짐작된다. 놀이, 독서 등은 각 거처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칠교 놀이와 한글소설 읽기 등이 유행하기도 했다. 평생 운세를 점치고 풀이한 <사주편년>에서는 궁중 여성들의 무속 생활을 엿볼 수 있다. 택일의 방법을 설명한 <션택요람>, 궁합법을 나타낸 <상사주초궁합법> 등 전시된 무속 자료는 대부분 한글 기록이다.

궁중 여성은 민중 여성의 생활에 비해 유난히 호사를 누린 듯하지만, 각종 규제와 관습 때문에 사대부가 규수들이 간택단자에 오르길 꺼렸다는 기록도 있다. 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왕비를 이르는 ‘중전마마’라는 말도 실은 건물의 호칭에서 따온 것”이라며 “‘중전’은 왕비의 처소인 ‘중궁전’을 줄인 말”이라고 설명했다. 왕실 내명부를 책임지던 왕비의 권세에도 불구하고, 거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한 궁중 생활을 에둘러 보여주는 셈이다. (031)707-5880.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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