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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가상물에선 배꼽 아래 훔쳐본다’더니…바야흐로 VR시대

등록 2016-06-27 10:52수정 2016-06-27 10:57

360도 영상에서 사람들은 어디를 볼까? 자몽 앱에서 보이는 시선 집중 지점에 대한 통계들.
360도 영상에서 사람들은 어디를 볼까? 자몽 앱에서 보이는 시선 집중 지점에 대한 통계들.
VR 엔터테인먼트 시대 점화
콘텐츠 360도 돌리는 가상현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등 뒤에서
눈이 돌아간다. 고개도 돌아간다. 사방에서 소리와 영상이 우리를 덮친다.

지난 2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선 헤드셋을 끼고 보는 31편의 가상현실(VR) 영화들이 소개됐다. 미국 음악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는 눈앞을 가상현실 보드로 가린 채 연주하는 음악인들, 공연장 대신 가상현실 체험장을 찾는 관객들로 넘쳐났다.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도 가상현실 부스가 붐볐다. 주요 축제에서 작품들이 쏟아지는 상황은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알리는 듯 보인다. 이제는 앞만 보고 살 수가 없다. 전자산업계·엔터테인먼트 업계는 현실 체험에서 3차원 영상으로 이동이 시작된 올해를 ‘가상현실 원년’이라 부른다.

360도 화면과 컴퓨터 그래픽이 합쳐진 영상물은 기록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경기도 안성 청룡사 대웅전 건축 과정 복구 영상. 에트리 제공
360도 화면과 컴퓨터 그래픽이 합쳐진 영상물은 기록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경기도 안성 청룡사 대웅전 건축 과정 복구 영상. 에트리 제공

한국도 360도 회전 시작 7월21일 시작되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가상현실 체험관이 열린다. 영화제 시작에 맞춰 부천역 앞 광장엔 100㎡ 넓이의 돔이 들어선다. 영화제 기간 동안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이곳에선 우주, 화산, 바다를 무대로 한 가상현실 영상이 펼쳐진다.

부천영화제는 또 영화제 기간 동안 스마트폰 앱에서도 가상현실 영화제를 연다. 눔이라는 앱에 부천영화제 섹션을 마련하고 장편영화제 상영작 190편 중 150편의 예고편을 360도 영상으로 보여주고, 가상현실로 제작된 단편영화 9편을 상영한다. 단편영화 중 박진순 감독의 <공포의 도로>, 이수성 감독의 <외도>, 최민혁 감독의 <나이트 윈도우>, 최지용 감독의 <어디 봐> 같은 국내 작품 외에도 외국 제작사들이 보내온 <진입금지>, <밍키>, <수행자 되기>, <카타토닉> 등 해외 영화제에서 소개된 가상현실 작품들도 있다. 영화제에 가상현실 섹션을 들여온 국내 첫 사례인데다 영화제 트레일러를 360도 영상으로 제작한 경우는 해외 영화제에서도 없었다.

한국에서 제작한 첫번째 가상현실 드라마도 나왔다. 27일 가상현실 영상물 공유 앱 자몽에 공개되는 드라마 <사월애>(감독 박정훈·김현수·유재환, 제작 토마토 프로덕션)는 5분짜리 짧은 드라마 3편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엮은 옴니버스 드라마다. ‘360도’라는 새로운 매체는 콘텐츠를 어떻게 바꿀까? 제작사가 <한겨레>에 미리 공개한 영상을 보면 엇갈리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원’ 편에선, 드라마에선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엇갈릴 때도 시청자는 고개를 돌리면 남자가 그토록 찾던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장면이 바뀌거나 교차편집을 통해서 보여줘야 할 이야기를 시청자는 같은 시간대에 보는 방향만 달리하면 여러 장면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이야기의 동시 진행, 그중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사용자의 시청 자율성, 대상이 눈앞에 있는 듯 가까운 느낌 등은 가상현실 콘텐츠만이 지닌 특징이다.

가상현실 드라마도 나왔다. 드라마 <사월애>는 360도 영상을 이용해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을 동시에 전개하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토마토 프로덕션 제공
가상현실 드라마도 나왔다. 드라마 <사월애>는 360도 영상을 이용해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을 동시에 전개하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토마토 프로덕션 제공

■ 곁눈질에서 폭풍몰입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에 시선이 멎는 360도 화면에서 사용자들은 무엇을 볼까? 지난해부터 유튜브 등 공유 사이트를 중심으로 등장한 가상현실 동영상 중 단연 인기있는 영상물은 성인물이나 아슬아슬한 의상만 걸친 걸그룹들의 뮤직비디오다. 가상현실 공유 앱 자몽은 시청자들이 시선을 멈췄던 부분을 백분율로 보여준다. 이곳에 올라온 ‘핏 걸’이라는 4명의 여자들이 춤추는 동영상을 보면 처음 시작화면에서 중심에 있었던 여자를 나중까지도 가장 많이 봤으며 다리 쪽에 시선이 몰리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야한 가상현실물에선 배꼽 아래를 훔쳐본다”는 업계의 통설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옆이나 뒤쪽에 있던 여자들도 육감적인 몸짓을 하면 갑자기 백분율이 올라간다.

매크로그래프 조성호 브이아르 본부장은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티브이는 시청 시간을 재지만 가상현실 영상물은 우리의 시선을 잰다”며 “예를 들면 여러 명의 걸그룹 중에서 시선을 받는 가수, 눈을 끄는 부위는 정해져 있어서 결국 그 대상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시선을 취합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데 예를 들면 한류 관광이나 체험 영상에서 사용자가 선호하는 대상을 편집해서 누구나 좋아할 만한 새로운 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전망한다.

초기 가상현실 시청자들이 주로 위아래를 훑어봤다면 앞으론 점점 뒤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지난 9일부터 지니 앱에서 브이아르 전용관을 연 케이티(KT)뮤직 시너지사업본부 이상협 본부장은 “360도 동영상에선 공간 활용이 관건이다. 밴드가 사방으로 흩어져서 연주해야 하는데, 계속 댄스 위주로만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앞으론 걸그룹보다는 다양한 개성과 연주 실력을 지닌 음악밴드가 각광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가상현실이 뮤직비디오의 형식을 바꿔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한다. 지금까지 지니 브이아르 전용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공연 비디오는 걸그룹 트와이스의 ‘우-아하게’였지만, 가상현실 뮤직비디오가 본격화되는 9월부터 십센치 등 다양한 밴드들의 비디오가 상영될 예정이며 그중 중심은 록밴드가 될 것이라고 한다.

가상현실물의 강력한 몰입 느낌은 영상물의 어법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매크로그래프 제공
가상현실물의 강력한 몰입 느낌은 영상물의 어법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매크로그래프 제공

■ ‘사이버 멀미’ 주의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360도 배틀! 비디오빌리지 vs. 웃음코뿔소’를 보면 360도의 어법이 보인다. 코미디 콘텐츠와 일상 블로그를 공유해 인기를 모으고 있는 창작자들이 한공간에 모여 단어 맞히기 게임을 하는 모습을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이 영상물에서 시청자들은 마치 게임에 참여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참가자들이 볼 수 없는 건너편 정답을 볼 수도 있다. 바로 그 시선 차이 때문에 360도 영상은 대부분 반복 재생된다. 시청자들은 방향을 바꿔가며 여러 번 보고 또 본다.

360도로 시작한 가상현실은 지금 막 출발선에 서 있다. 문화재 복원을 위한 가상현실물을 만들어온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지형 책임연구원은 “경주마처럼 앞만 봐야 했던 관객들의 시선을 자유롭게 풀어준 360도 영상의 번성은 그 자체로 의미있지만 기술적으론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도 많다”며 “영상만이 아니라 콘텐츠 기술 개발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브이아르 전용 헤드셋을 쓰고 가상현실 영상에 빠져들다 보면 금세 어지러워지는 ‘사이버 멀미’를 겪게 되는데 아직까지 양쪽 시력 차이나 개인들의 눈의 차이가 고려되지 않은 탓이다. 대부분의 가상현실물이 5분을 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조성호 본부장은 “지금은 돌이킬 수 없다. 국내 삼성, 엘지뿐 아니라 페이스북, 구글 등 주요 회사들이 모두 브이아르 산업에 뛰어들었다. 브이아르 기기 개발은 엄청난 초기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 산업이라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지금 모두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보듯 곧 모두가 가상현실물만 보게 되는 변화의 초입에 와 있다”고 했다. 가상현실은 360도로 질주 중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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