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 서울 송파구청이 주변 건축물의 높이 제한을 풀어주는 현상변경안을 추진하려다 논란을 빚은 석촌동고분군(국가사적)의 3호분 모습. 돌을 쌓아올린 고분 뒤켠에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서있다.
“시·도지정 문화재는, 국가지정 아니니까 국가가 지키고 관리할 책임이 없다는 겁니다. 이게 나라에서 할 말인지….”
고고학자들이 요즘 한목소리로 문화재청을 성토하고 나섰다. 문화재청이 지난달 8일 입법예고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 중 13조의 바뀐 내용이 문제가 됐다. 지자체가 시·도지정문화재의 보호, 관리 조례를 제정할 때 문화재청장과 사전 협의하도록 되어 있던 기존 조항을 빼고, 지자체장이 알아서 제정할 수 있도록 한 구절이 반발을 불렀다. 문화재청은 지자체의 도시계획과 정합성(어긋나지 않음)을 맞추려는 취지라고 했지만, 학계는 지자체 규제완화만 가속화하고 지방지정문화재 관리는 더욱 부실해질 것이라며 개정 반대운동을 본격화할 기세다.
한국고고학회와 영남고고학회, 고분문화연구회 등 고고학계 13개 학회는 14일 법 개정안의 문제를 지적하고 현행법 유지를 요구하는 공동의견서를 문화재청에 냈다. 학회들은 의견서에서 “국가지정과 시·도지정 문화재는 관리 주체의 차이만 있을 뿐 문화재 자체의 경중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재청장과의 협의 조항을 생략하겠다는 것은 시·도지정문화재에 대한 국가의 보호·관리 의무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한국고고학회는 7일 대책회의를 연 뒤 “시·도지정문화재의 보존환경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는 개정안은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입장문을 학회 누리집에 올리고, 회원이나 단체들이 개정안 철회나 반대를 주장하는 의견서를 문화재청에 보내줄 것을 촉구했다. 한국건축역사학회도 학회 누리집에 공고를 올려 회원들에게 반대의견서 발송을 요청한 상태다.
이처럼 학계 반발이 거센 건 지자체 문화재 행정에 대한 불신이 깊기 때문이다. 지자체 대다수가 문화재 전문인력이 전무하거나 극소수이고 보존 관리 체계도 부실해 개발 과정에서 유적을 갈아엎거나 지방 문화재 주위 환경을 무단훼손한 사례가 잦다. 택지개발, 관광수요 위주로 정책방향도 편중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재청장 협의를 배제한 개정안이 시행되면 ‘시·도지정문화재’ 주변 보존구역의 범위나 주변 건물 고도제한 같은 관리권한이 개발민원에 민감한 지자체에 전적으로 넘어가 되레 규제를 무분별하게 풀고 문화재 보호의 원칙이 훼손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한 중견 고고학자는 “공무원들도 지방지정문화재의 자율관리가 역부족임을 잘 안다. 그런데도 규제완화라는 현 정부 국정기조를 의식해 실적쌓기식 법안을 추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문화재청의 개정안 추진에는 지자체들의 집요한 규제완화 요구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경기도는 수년 전부터 수원 화성 등 문화재보존지역 규제완화를 도정 주요 목표로 정하고, 국가 및 시·도지정 문화재 보존구역 범위를 대폭 축소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서울도 풍납토성, 석촌동고분 등을 관할하는 송파구청 등이 유적 부근 건축물고도제한 완화안을 문화재청과 함께 추진해오다 정작 시로부터 경관 훼손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잠정중단한 상태다.
박영근 문화재청 차장은 이에 대해 “지방문화재는 지정한 지사가 책임지는 게 논리상 맞다. 하지만 학계의 반발과 우려가 계속 나오고 시급한 현안도 아니어서, 일단 기존법을 존치하는 쪽으로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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