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어린 현장 스태프들은 ‘드레수애’가 뭔지도 모르던데요.”
배우 수애는 웃으며 말했지만 ‘세월이 벌써 이만큼 흘렀나’ 하는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드레수애’는 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그에게 우아한 드레스가 잘 어울린다며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1999년 데뷔, 왈가닥 노처녀(드라마 <9회말 2아웃>)나 특수요원 배역(드라마 <아테나>)도 했지만 대중들에겐 여전히 단아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그런 그가 ‘하키수애’로 변신했다. 8월10일 개봉하는 영화 <국가대표2>(감독 김종현)에서 탈북자 출신 아이스하키 선수 ‘이지원’ 역을 맡은 것.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한국 첫 여성 아이스하키팀 분투기에다 분단의 아픔을 더해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잡았다. 수애에겐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2005)에 이은 두 번째 탈북자 연기다. 스포츠 영화 첫 도전이기도 하다.
“여배우들과 꼭 한번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국가대표2>를 위해 수애 이외에 오연서, 하재숙, 김예원, 김슬기, 진지희 등 캐릭터, 연령대가 다른 배우들이 모였다. 충무로에선 흔치 않은 시도다. 주로 남자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온 수애에겐 더욱 “욕심나는 시나리오”였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스포츠 영화를 한번 해보고 싶기도 했단다. 한겨울에 진행된 야외훈련신, 바깥보다 더 추운 아이스링크장 촬영 등 워낙 현장이 힘들다 보니 배우들은 금세 끈끈한 사이가 됐다. 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고 물어보니 ‘남자 이야기, 뒷담화’라고 털어놓았다.
어깨 탈골(김예원), 무릎 인대파열(하재숙)…. 거친 운동이다 보니 부상이 속출했다. 수애 역시 촬영 도중 오른쪽 새끼발톱이 빠졌다. “신인 때부터 인라인스케이트를 탔다. 몸으로 하는 도전도 좋아한다. 그런데도 내가 너무 쉽게 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배우들은 촬영 전부터 매일 2시간씩 석 달간 연습에 매진했고 촬영 때도 슛동작, 가까운 앵글에서의 보디체킹(몸을 부딪히는 수비 방법) 등을 직접 소화했다. 대신 원거리에서 잡히는 경기 장면은 실제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수고했다. 고통 속에서 디테일이 완성됐다. “걷는 모습, 달리는 모습, 상대를 바라볼 때의 우직함까지, 국가대표에 걸맞은 모습을 차근차근 쌓아올렸다.”
아이스하키 선수로서의 변신만큼 ‘탈북자 출신 국가대표’의 복잡한 심내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했다. 국제대회에서 마주친 북한팀을 바라보는 지원의 눈빛 속에 분단의 아픔을 담아내야 했다. 수애는 “특정 장면뿐 아니라 첫 등장부터 분단 현실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고 연기했다. 두 번이나 탈북자 역할을 맡다 보니 운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에 두고 온 동생을 잊지 못한 지원이 여전히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먼저 감독에게 북한 사투리를 쓰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단다.
그는 “이제 연기나 삶에서도 여유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연기를 전공하지 않은 자신이 주변에 ‘민폐’가 될까봐 더욱 치열하게 연기했다는 그는 이제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고 했다. 데뷔 17년 만의 고백이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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