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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부여 능산리 고분군서 백제 왕릉급 추정 무덤 발굴

등록 2016-09-20 12:28수정 2016-09-20 21:37

기록만 있던 고분 4기와 새 고분 3기 확인
6~7세기 백제 왕릉고분 축조법 등 보여줘
노출된 8호분의 석실부분과 봉분 모습. 돌방인 석실부분과 입구를 막은 연문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 보인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노출된 8호분의 석실부분과 봉분 모습. 돌방인 석실부분과 입구를 막은 연문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 보인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백제 고도인 충남 부여의 능산리 고분군(사적 14호) 서쪽 언덕에서 일제강점기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백제시대 왕릉급 고분들의 실체가 무더기로 드러났다.

문화재청과 부여군은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조사팀이 부여읍 능산리 산 36-14번지 일대의 서고분군을 시굴 및 발굴조사한 결과 일제강점기 기록으로 전해져온 백제후기 왕릉급 고분 4기의 실체를 확인했으며 존재를 몰랐던 새 고분 3기도 추가발굴했다고 20일 발표했다. 능산리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일본학자들에 의해 세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됐으나 해방 뒤 국내 학자들이 학술발굴조사를 벌인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8호분의 석실 입구를 막은 연문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 아쉽게도 내부는 도굴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8호분의 석실 입구를 막은 연문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 아쉽게도 내부는 도굴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확인된 4기의 왕릉급 고분은 학계에서 능산리 서고분군의 7호분, 8호분, 9호분, 10호분으로 불리워온 무덤들이다. 그동안 정확한 무덤 자리들이 파악되지 않았으나, 시굴조사를 통해 각 무덤마다 왕릉급의 봉분 둘레를 보호하기 위해 두른 호석(護石)렬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명확한 위치를 알 수 있게 됐다. 이 무덤들은 일제강점기 약식 조사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7년 일본 학자들의 발굴조사 결과보고서인 <대정6년도고적조사보고(大正6年度古蹟調査報告·1920)>를 보면, 능산리 왕릉군 서쪽에 왕릉에 버금가는 고분 4기가 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 봉분 안을 파고 제대로 된 굴착조사가 진행된 것은 석실 평단면도가 남아있는 9호분과 인골과 목관편이 나온 10호분에 그쳤으며, 이 두기를 포함한 서고분군 무덤들의 정확한 위치나 분포 상황은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10호분의 무덤길 부분(묘도부)과 석실 내부를 막은 연문시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10호분의 무덤길 부분(묘도부)과 석실 내부를 막은 연문시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조사내용을 보면, 가장 주목되는 성과는 조사단이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벌인 8호분과 10호분이다. 두 고분은 지름이 15~20m 정도 길이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 얼개다. 이번 발굴로 석실의 외부 모습과 입구를 닫은 연문, 연도 등의 얼개와 봉분 내부의 쌓은 단면들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내부 유물들은 도굴과 일제강점기 발굴 등에 의해 대부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무덤의 연도(羨道:고분 입구에서 주검을 안치한 묘실로 이르는 길)를 막은 돌문(연문) 바깥 바닥에 옻칠과 함께 금으로 도금된 목관 조각과 금동 못 등의 유물들이 소량 발견됐다. 특히 목관으로 쓰인 나무가 고급목재인 금송으로 확인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금송으로 목관을 짠 사례는 공주 무령왕릉 등 백제 왕릉에서 종종 발견된다. 이번에 조사된 고분 2기가 백제 왕릉급 고분일 것으로 판단하는 주된 근거가 됐다는 게 조사단 쪽의 설명이다.

하늘에서 본 능산리 고분군. 아래 쪽으로 돌출된 숲 한가운데 누런 땅 드러난 부분이 8, 10호분 발굴지점이다. 숲 오른쪽의 잔디밭 봉분들이 사적 지정된 기존 능산리 고분군이다. 숲 왼쪽의 허옇고 큰 건물터는 1993년 금동대향로가 나온 능사 터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하늘에서 본 능산리 고분군. 아래 쪽으로 돌출된 숲 한가운데 누런 땅 드러난 부분이 8, 10호분 발굴지점이다. 숲 오른쪽의 잔디밭 봉분들이 사적 지정된 기존 능산리 고분군이다. 숲 왼쪽의 허옇고 큰 건물터는 1993년 금동대향로가 나온 능사 터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또하나 특기할만한 것은 두 무덤에서 봉분의 모양과 호석, 묘광과 석실 등 조성 당시의 원형이 가장 온전하게 남은 채로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조사단장인 서현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유물은 적지만, 6~7세기 백제 시대 왕릉급 고분의 규모와 축조·조성기법 등을 단면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유적이어서 고고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내시경으로 확인한 8호분 현실 내부의 모습. 유물들은 거의 사라졌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내시경으로 확인한 8호분 현실 내부의 모습. 유물들은 거의 사라졌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백제 후기 왕가의 전용 묘역으로 추정되어온 능산리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3차례(1915년, 1917년, 1937년) 조사가 이뤄져 고분 15기가 확인됐다. 그뒤 60년대에 봉분을 정비하면서 고분 2기가 추가로 드러나 현재까지 모두 17기의 고분이 있는 것으로 파악돼 왔다. 이번 조사를 통해 새 고분 3기가 추가로 확인됐고, 위치가 불명확하던 왕릉급 고분들의 실체까지 파악되면서 능산리 고분군의 영역과 성격 등을 놓고 학계에서 활발한 논의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능산리 고분군은 지난해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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