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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신물나는 ‘첨성대 붕괴론’의 망령

등록 2016-09-21 16:48수정 2016-09-21 20:51

울림과 스밈

일제 주장 반복하는 첨성대 해체 논란보다
문화재에 대한 실효적 지진 대응책 마련 시급
경상북도 경주에서 지난 19일 오후 규모 4.5의 여진이 발생한 뒤 문화재돌봄지원센터 관계자들이 첨성대에서 여진에 따른 피해 유무를 점검하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경상북도 경주에서 지난 19일 오후 규모 4.5의 여진이 발생한 뒤 문화재돌봄지원센터 관계자들이 첨성대에서 여진에 따른 피해 유무를 점검하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이달 12일과 19일, 근대기 들어 가장 강력한 지진이 내습한 천년고도 경주의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러간다. 석재 난간이 내려앉은 다보탑 등 문화재 피해가 상당수 보고됐고, 경주 유산들의 장기적인 지진 대비책과 유사시 안전 매뉴얼 등의 논의가 당연히 진행되어야 할 상황에서 첨성대 해체복원론이 다른 논의들을 제쳐놓고 부각되고 있다.

동양 최고의 천문대로 알려진 첨성대가 지진으로 기울어짐이 커지고 상단 부재가 조금씩 움직였다는 문화재청 조사 결과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붕괴우려론이 언론에 의해 증폭되면서 해체보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2년 전에도 감사원이 첨성대가 20㎝ 기울었고, 침강이 지속중이라고 발표해 논란이 빚어졌다가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문화재청 해명으로 가라앉은 바 있는데, 판박이 논란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첨성대 해체수리론의 원조는 1910년대 경주에 정착해 사업, 가게 등을 하면서 도굴을 자행했던 일본의 모리배들이었다. 고도 경주의 유물을 빼돌리면서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장까지 맡았던 모로가 히데오를 비롯한 일본인 유지들은 첨성대 구조가 허술하니 해체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논란은 해방 뒤에도 이어져 2000년대까지 학계와 관에서 붕괴위기론 등이 계속 제기되곤 했다. 나름의 과학적 근거들을 덧붙였다는 것 외엔 20세기 초 경주 일본인들의 흑백논리식 주장과 별로 다를 바 없다. 2000년대 이후엔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까지 끌어들여 한국판 ‘피사의 사탑’으로 부르는 이들도 생겨났다.

첨성대는 여전히 건재하다. 12단까지 내부가 흙으로 차 있고, 지반도 튼실하며 구조물 하부가 상부보다 직경이 큰 구조적 강점을 지녀 해체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고 국립문화재연구소 쪽은 지진 직후 단언한 바 있다. 일각에서 지적하는 부재 흔들림, 침강 현상은 1400여년 버틴 세월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변모에 가깝다. 이번 지진은 첨성대 보존 연구에 소중한 현장 정보도 제공했다. 규모 5.8 강진을 겪은 12일 첨성대는 중심축이 흔들렸지만, 19일 규모 4.5 여진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뛰어난 내진성이 실증됐고, 지진이 미치는 구조적 영향을 보여주는 물리적 자료들이 다수 확보됐다는 분석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는 첨성대 해체 여부를 둘러싼 여론몰이가 아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지진에 대비해 사방에 널린 경주 유산들의 안전성을 보장할 응급대처 방안과 긴급 보수반의 동선 등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첨성대의 경우 지진 당시 내구 상태 등을 집중분석해 항구적 보존 관리를 위한 연구역량을 키우고 합리적 보존 방안의 판단 근거들을 쌓는 노력도 절실하다. 지진이 날 때마다 피해 사례부터 정밀분석해 대처 매뉴얼을 업그레이드하고 꾸준히 방재 방법론을 개발해온 문화재 대국 일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 크다.

불요불급한 월성 속도전 발굴과 황룡사 복원에는 거액을 쏟아부으면서 자연재해 대비를 위한 종합정보망 구축은 예산 문제로 지연시키고, 붕괴와 거리가 먼 첨성대 해체복원 논란만 요란한 지금 문화재판의 상황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경주 사정에 밝은 한 문화재 전문가는 “첨성대 해체 이벤트의 주목 효과와 막대한 예산 지원 등에 대한 오랜 욕망과 역사적 통찰의 부재가 소모적 논란을 되풀이하는 온상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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