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계리 가마터에 확인된 고려청자 장인들의 작업장터 모습. 5호 공방지를 찍은 사진이다. 도자기를 구을 때 덮는 용기인 갑발을 줄지워 놓고 작업공정별로 공간을 구획한 흔적이 보인다.
고려청자를 빚어냈던 10~11세기 고려장인들의 작업장 터가 전북 고창군에서 처음 발견됐다.
발굴조사기관인 대한문화재연구원(원장 이영철)과 고창군은 최근 군내 용계리 청자 가마터(요지)를 발굴조사한 결과 초기 청자를 제작한 공방터를 처음 찾아냈으며, 감독시설 추정 건물터도 확인했다고 20일 발표했다. 용계리 가마터는 고려청자의 역사에서 10~11세기 ‘초기 청자’를 생산했던 시기에 활용한 유적으로 80년대부터 발굴조사가 이어져왔다. 가마와 도자기를 구울 때 쓰는 갑발(고급 도자기를 구울 때 재 등을 묻히지 않기 위해 씌우는 용기)과 가마벽체, 청자편 등이 쌓인 구릉이 남아있어 학계가 주목해왔던 유적이다.
청자장인들의 작업장터 유적들 가운데 하나인 시유공. 청자 몸체에 유약을 발랐던 곳이다.
이번에 처음 나온 공방터는 기존 가마터와 퇴적구릉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청자의 재료 흙을 저장하고 반죽하는 ‘연토장’, 유약을 바르는 곳인 ‘시유공’, 그릇을 말리는 장소인 ‘건조장’ 등 제작을 위한 다양한 공방 구역이 확인된다. 특히 갑발을 칸막이로 써서 각 작업 공간을 나눈 흔적이 보여 초기 청자 제작 과정이 각 공정에 따라 분업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 아래의 감독시설 추정 건물터는 ‘?’자 모양의 배치 구도를 띤 것이 특징이다. 내부에서 초기 청자의 전형인 햇무리굽 그릇 조각이 나와 제작공방과 비슷한 시기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1983년 1차 발굴조사 당시 고려 조정에서 썼던 거란의 연호인 ‘태평임술’(太平壬戌:1022년) 명문을 새긴 기와도 나온 바 있어 국가의 감독시설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원 쪽은 “국내 최초의 청자 공방터 발견으로 초기 청자의 제작공정과 운영 양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연구원은 21일 오후 2시 용계리 유적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어 발굴성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대한문화재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