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명작 세한도. 북한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했으나, 99년 증보판으로 나온 <조선력대미술가편람>에 이례적으로 삽화가 실려 추사의 복권을 알리는 징표가 됐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북한 당국이 1990년대 이후 이전까지 소수 봉건지배층의 그림으로 배척해왔던 추사 김정희, 표암 강세황 등의 문인화를 재평가하고 대대적으로 복권시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북한이 특유의 미술장르인 ‘조선화’에 대해 과거 조선 민화 등의 채색화 전통을 계승한 민족적 양식이라고 강조해온 반면, 조선시대 사대부 문인들의 관념적인 수묵화(문인화)는 배척해왔다는 국내 미술계의 기존 통설과는
다른 연구성과여서 눈길을 끈다. 조선화는 사실적인 선묘에 울긋불긋한 색을 입힌 산악풍경화나 인민들의 유복한 삶을 담은 선전화들이다.
미술사연구자 박계리씨는 최근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의 학술지 <한국문화연구>에 실은 논고에서 최근 20여년 사이 북한의 전통미술사 인식이 김일성 시대의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추사로 대표되는 사대부 문인화까지 민족미술유산으로 복권시키는 양상으로 크게 바뀌었다고 밝혔다.
90년대 이후 추사, 표암 등
봉건계급 그림으로 배척당한
문인화 재평가… 대대적 복권
채색화만 내세웠던 북 인식 변화
‘북한의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를 통해 본 전통 인식의 변화’라는 논문에서 박씨는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1999년 북한에서 증보판이 발간된 <조선력대미술가편람>의 내용을 든다. 과거 실학자, 금석학자 정도로만 다뤘던 추사 김정희를 한국 회화사의 주요 화가로 소개했을 뿐 아니라 대표작 <세한도>를 삽화로까지 실어 그의 미술가적 위상을 강조하는 파격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척결해야 할 봉건착취계급의 예술가로 간주해 미술사 서술에서 배제해온 표암, 능호관 같은 18세기 문인화가들이 내용 전면에 등장했고, 19세기 흥선대원군까지 난초그림을 잘 그린 대표 화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씨는 “꼬리표처럼 붙었던 문인화가들의 계급적 제한성에 대한 언급조차 사라졌다는 점에서 북한 미술계의 변화된 전통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미술사가 근원 김용준(1904~1967)의 초상화. 러시아에서 활동한 변월룡 작가가 그린 것이다. 근원은 북한 미술계에서 문인화 등의 전통계승론을 역설하다 60년대초 사실상 숙청된다.
논문에서는 2000년 이후 북한 미술사 연구성과에서 동양화, 문인화 같은 용어가 부활된 점도 주목한다. 북한 미술인 정창모가 2000년 잡지 <조선예술>에 실은 ‘동양화의 전통적인 채색법과 용묵법’이란 논문은 오방색의 이념적 기초로 음양오행설을 소개한 뒤 채색화에서 백묘화, 수묵화, 수묵채색혼용으로 발전한 회화기법 진화론을 다뤘다. 이는 마음의 뜻을 중시하는 수묵화를 회화발전의 최고단계로 보는 회화발전사관을 전개했다가 60년대초 북한에서 채색화 계승론자들과의 논쟁에서 패해 숙청된 월북 미술사가 근원 김용준의 사관이 부활했음을 보여준다고 박씨는 짚었다. 또 리재현, 조인규, 하경호 같은 비평가들이 2002년 엮은 <조선화의 전면적 개화>라는 문건에는 봉건착취계급의 퇴폐사상을 반영하는 미술사 용어라고 해서 배척해온 문인화의 ‘사의’(마음의 뜻을 옮겨 그림에 표현하는 것) 개념에 대한 최고 지도자 김정일의 긍정적인 교시도 소개돼 있다고 전했다.
김정일은 이 교시에서 “조선화는 사의라는 뜻을 그린다는 것인데, 뜻을 그리는 것이 나쁘지 않다. 문제는 어떤 뜻을 어떻게 그리는가 하는 것”이라고 밝혀 사의 개념까지 복권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미술에서 사의 개념은 주체사상, 선군주의 등 현실 정치 활용 맥락에서 호출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하지만, 당대성의 관점들에 대해 좀더 포용적인 자세로 나가는 흐름은 주목할 만하다는 논지다. 박씨는 “김정일의 교시와 지도에 힘입어 사군자화, 문인화 대가들이 작품이 우수한 민족전통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라며 “경직된 사회주의 미술관에서 벗어나 시대적 변화에 맞춰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